좋은 사람, 만나고 있나요?

감정일기 #사랑

by Jessie


연애라는 것은 어쩌면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이 연애를 할 수 없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지만 흔들리는 나의 자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없을거라 으레 짐작해버린 나의 마음이 그 무엇보다 큰 장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맡게 된 큰 프로젝트의 매니저 자리는 그 동안 내가 꿈꿔오던 진정한 일의 모습을 띄고 있었고 잠시 지쳐있던 열정에 불을 지핀 계기가 되었다. 한 달 동안 쉼없이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잘하는 일'을 찾게 되었고 하루 5시간의 짧은 수면에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나 홀로 여자였지만 11명의 남자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 일에 대한 열정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감 그리고 내가 소개하는 서호주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 이었을 것이다. 나에게서 나는 땀냄새 조차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던 건 아마 나 뿐만은 아니었나보다. 한 달 동안 고된 생활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 서로를 가까이서 지켜 보던 중 나에게도 어느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나는 운명을 믿는 편이다.


적어도 내가 걸어온 인생의 길에서 나에게는 운명과 같은 순간들이 끊임없이 찾아왔으니 그 존재를 믿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거짓말처럼 빠져들기 시작한 관계 속에서 내가 그와 가까워 질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어려운 환경이었다. 배경이나 가진 것이 아닌 온전히 그 사람만을 바라보는 상황 속에서 싹튼 믿음은 쉽게 깨어지지 않는 것처럼 8000km나 되는 거리를 뛰어 넘은 그 온전한 마음과 그 속에서 서로의 도전과 성장을 지켜보는 애정어린 시선이 조금씩 그렇게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태어나 처음 서울 살이를 시작한 그가 살고 있는 고시텔 앞에서 몇 번이고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서울대 입구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들어가 숨이 헐떡여지는 언덕 길을 그렇게 몇 분을 더 걸어올라야 나왔던 고시텔 앞에서 나는 잠시 흔들렸던 기억이 난다. 주변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나를 더욱 쥐고 흔들었다. 평생 그렇게 힘들게 살거냐는 그 말 들 속에서 나는 정말 부끄럽게도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말았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모두 잃고 완전히 벌거벗은 내가 되어 돌아온 서울은 유난히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의 낯선 고시텔에 나흘 남짓을 머물며 그가 미처 이야기하지 않았던 배고픈 시간을 회상하고 있노라니 눈물이 흘렀다. 처음 시작한 서울 생활이 녹록치 않아 라면 하나를 네 등분 해 끼니를 때운 시간을 살아낸 이야기, 나조차도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홀연단신 넘어간 호주에서 하루 한끼 1.35달러짜리 컵라면으로 배고픔을 이겨낸 시간들이 있었으니 그와 나는 어쩌면 하루 한끼 라면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많지 않지만 '꿈' 하나 만큼은 끝까지 포기 하지 않은 나의 소소한 이야기를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놓고 그런 불편함들을 내일의 방향을 위해 함께 의논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은, 우리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라는 같은 삶의 목적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은, 나의 그 모든 방황이 방랑이 아니라 결국은 그 어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고 나는 곧 그렇게 될 거라고 말해주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사랑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한 사람의 인간을 만났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내 스스로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그 오랜 외로움을 달리기로 이겨낸 나의 지난 시간들은, 그 시간들을 통해 비로소 쓸 수 있었던 마음이 담긴 글들은 그리고 그 글로 인해 쌓여가고 있는 나의 깊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많은 사람들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나고서 나는 비로소 잃어버렸던 나의 자존감을 찾아가고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함께 성장해가고 있는 나를 만나는 하루하루에 감사하게 되었다. 넉넉하진 않지만 매일 나아지고 있는 오늘에 감사하다보니 내일 다시 성장해 있을 그와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고 조금씩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더 많은 사랑을 해보라는 사람들의 조언보단 내 스스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면, 나의 일을 열심히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열정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말을 믿는다. 오늘만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내일이 기다려지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비로소 함께 성장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혹시 나처럼 주위의 숱한 이야기에 흔들려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갈 나와 그의 모습을 통해 당신도 '내일'을 꿈꾸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사랑을 정의할 수도, 점수를 매길 수도 없지만 적어도 '그 사람을 만남으로써 내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우리는 내일이 기대되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된 서호주의 넓은 아웃백을 다시 달리는 꿈을 꾼다.



이전 09화'리틀 포레스트'를 열 두번째 본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