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 #그리움
커피를 마시다 보면 유난히도 뜨거웠던 사막에서의 시간들이 이따금 떠오르곤 한다. 호주의 사막을 건너는 동안 눈으로 담았던 끝이 없는 지평선과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색의 하늘, 의자에 앉아 올려다보면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밤하늘이 말이다. 호주에서 보낸 4년이란 시간 중 아웃백에서 지낸 시간들이 반년은 된 까닭이다. 언젠가 책 속에서 '사람은 가장 소중했던 장면 하나를 가슴에 품고 평생 그곳을 꿈꾸며 살아간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습관처럼 호주의 석양을 떠올리고 만다.
사막에서의 아침은 뼛속을 에는 추위에서부터 시작된다. 낮이면 40도를 훨씬 웃도는 온도로 녹아내릴 만큼 고통스럽지만 해가 지고 나면 몇 시간 전의 뜨거움은 온데간데없이 지면이 급격하게 식기 시작하고 차 어딘가에 걸려있는 후리스를 목 끝까지 올리고서야 몸을 움직일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텐트 속 침낭에서도 쉬이 가시지 않는 추위는 수면 양말에 발을 욱여넣고서야 비로소 조금 잠잠해진다. 텐트 위에 가득 흩뿌려진 은하수를 상상하며 잠이 드는 것이 사막에서의 일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나면 가장 먼저 화장실을 해결해야 하는데 허허벌판에서 내 흔적을 남기는 일은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야생 동물들의 널브러진 그것을 마주하고 나면 그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밤의 시간은 모기와의 전쟁이지만 사막의 낮은 어마어마한 파리떼와 개미들이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보이는 시간이다. 흔적을 남기기 무섭게 그것들(?)에 집착하는 녀석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사막에서는 작은 삽 하나 정도는 들고 다니는 것이 좋다. 그것이 혹여 그곳을 지나는 다른 이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말이다.
볼 일을 끝내고 나면 제일 먼저 일어난 내가 하는 것은 바로 물을 끓이는 일이다. 침낭 속에서 굳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서는 이 것 한 잔이 유난히도 간절해진다. 사막을 여행하면서 샀던 알루미늄 컵에 커피 알갱이를 두 스푼 넣고 뜨거운 물을 가득 붓고 나면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 뜨겁디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고 우리가 지난밤 머물렀던 사막의 일부를 산책한다. 누구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시간, 아침이 오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은 꽤나 경이롭고 또 신비롭기까지 하다.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시간에 오롯이 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눈이 떠지곤 했다. 이내 모두가 깨어나면 다시 다음 장소로 움직이기 위해 분주히 텐트를 걷고 짐을 싸야 할 테니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는 그 아침이 나에게는 유난히 소중했던 것이었다.
매일 해가 뜨는 풍경과 해가 저물어가는 풍경을 마주하지만 몇십 번을 보아도 나는 그 시간이 되면 처음 그것을 마주한 날처럼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보고 있으면서도 그리운 풍경이었다. 그것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를 살게 해 줄 장면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최소한 몇 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땅 언저리에서 잠시 머물다가는 것에 대한 경험이 나에게 겸손을 가르친 것 같기도, 환경을 탓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준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부쩍 외롭고도 아름다운 호주의 사막에서 추위를 쫓으며 마셨던 커피의 맛이 떠오른다. 어쩌면 커피를 마시는 동안 마음에 담았던 풍경들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상 계정 @fightingsz
그림일기 @jessie_evenfolio
아직 철들지 않은 30대. 걷고 마시고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들은 모두 따뜻한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여전히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