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
어떤 선물은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건네받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건넨 것들 중 가장 무거운 마음이 담긴 것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카메라를 고릅니다. 10년 전, 우리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보면 그 기계의 값은 지나치게 높고도 부담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며칠을 고민하다 중고 카메라를 사기로 했고, 우리는 사당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낯선 이와 마주 앉았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이는 이민을 앞두고 살림을 정리하던 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가 건넨 카메라는 자신의 신혼을 기록하던 물건이었고요. 남편이 곧 호주로 떠날 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의 수줍던 얼굴에 환한 빛이 돌았습니다. 저에게도, 그녀에게도 첫 중고거래였던 그날은 처음치고는 꽤 괜찮은 기억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시작을 담았던 렌즈가 다시 다른 누군가의 시작을 담게 된 일.
우리는 서로의 여정을 축복하며, 이름도 모른 채 손을 흔들었습니다. 다정한 기원은 그렇게 중고 카메라의 틈새마다 촘촘히 박혔고요.
보급형의 가벼운 몸체는 그 후로 저의 모든 여정을 함께 했습니다. 신림천의 둔치부터 남반구의 붉은 사막까지. 뷰파인더에 눈을 맞추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온도를 공평하게 나누어 담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사진에는 오직 과거만이 존재합니다. 렌즈를 통과하는 순간, 빛은 이미 지나간 것이 된다는 사실이 사진을 더없이 애틋하게 만듭니다. 베트남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도 저는 여전히 혼자 걷곤 합니다. 혼자인 시간은 누군가의 찰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일을 너그럽게 허락하니까요.
길 위의 사람들, 창가에 앉아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얼굴들, 햇빛이 내려앉은 사이공 오후의 공기.
그들의 시간을 잠시 빌려 사진 속에 담아 옵니다.
타인의 삶이 남긴 잔상을 가득 담아 돌아올 때면,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하루가 작은 화면에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사진을 찍습니다.
지나간 시간의 안부를 다시 묻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