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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Sep 13. 2018

그냥 하면 되지 않아?

★주의/근데 광고대행사 AE 혹은 직장 후배한테는 이 말 하면 안됨


출처 = 카카오톡 이모티콘 A demanding client


0. H를 작년에 만났다. 눈치도 많이보고 피곤할 정도로 높은 기준을 맞추느라 불같이 사는 내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친구다. 아니 걔는 왜이렇게 힘들어하는 거래? 열심히 해서 될까, 다시 처절하게 실패하면 난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말들을 그냥 그렇게 듣고 자기 각도에서 한 마디씩 툭 던져주곤 했다. 


뭐 의도적으로 내가 걔를 찾아가 지혜를 빌리거나 이러지는 않았다. 이야기하다가, 카톡하다, 서로 어울리다가,  H는 나에게 예상치 못한 단초를 준다.



1. 늘 업되어 있는 나와 다르게 H는 항상 H 스스로의 페이스다. 

복잡하게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나와 다르게 H는 단순하게 생각한다.

대답도 행동도 "단순"하게 "한다."


1-1. 포인트는 두가지다. 단순, 그리고 행동(한다 는 것).


H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건데 나도 그렇고 우린 너무 복잡하게 말하고 포인트는 없다.

취업 스터디를 하면 어때? 공모전을 하면 어때?

그럼 대답은 둘 중 하나다. 그래, 하자, 라고 말하면 하는 거고 아니 안하고싶어, 라고 하면 안하는 거다.

그리고 하겠다고 말하면 시간 맞춰서 하고, 1인분을 한다. 



2. 난 요새 자소서를 쓰면서 마음이 소란하기도 했다가 잠잠하기도 하다. 사실 자소서 때문이 아니라 나는 변덕이 많아서 늘 그랬다.

제1지망 회사에 못붙으면 그냥 가야하나, 지금도 첫 커리어가 중요한데 여기 쓰는게 맞는건지, 서비스 기획으로 붙으면 비즈니스가 가고싶고 국내 비즈니스가 붙으면 해외가고싶은 갈망이 생길거 같고, 일단 내가 붙을수나 있을지 모르겠고. 


그냥 적당히 살려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게 아닌데. 있잖아. 내가 원하는 회사에서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든 그렇지 않든, 취업하고 나서 내가 지금처럼, 내가 원하는 삶을 계속해서 만들어갈 수 있을까? 멈추면 어떻게 하지? 



3. 그 모든 마음을 담아 H와 멘토 두 분과 저녁을 먹다가 말했다. 

"아 모르겠다. 자소서는 언제쓰고 인적성은 또 언제 다 보냐. 뭐 닥치면 또 하긴 하겠지만..."


H는 늘 그렇듯이 H답게 말했다.

"그냥 해. 해야지 어떡해 그럼?"



4. 듣고 웃었다. 우문 현답이었고, 너무 H다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멈추면 어떡하지? 안멈추면 된다.

나를 멈추지 않게 해줄 사람들을 내 삶 속에 계속해서 채우고, 당당하게 삶을 가꾸면 된다.

어렵지만 이제까지 나를 가장 나답게 해온 노력이었기 때문에.


지난 날 나는 어려운 상황을 어렵게 받아들였고 힘든 상황을 넘어짐으로 받아들였다.

H는 그냥 했다. 토스 그냥 하는 거고, 자전거 타고 다니고 싶어서 학원을 자전거 타고 가고, 놀고싶어서 그냥 동아리를 하고 그냥 하고싶어서 학회를 하고 공모전에 나갔다. 


아픔을 기껍게 받아들이고 다시 눈물로 일어났기에 내 자신이 더 넓어졌지만 인생이란 다면적인 여정을 살려면 여러가지 시각이 필요한 법이다. H의 시각 같은 것들.


사실 원하는 포지션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한번의 시도로 안될 수도 있다라는 걸 알기에 계속하면 된다. 이제껏 해 왔듯이.



5. 하면 된다, 라는 말은 If you do, you can get everything 라는 말이 아닐 거다.

외려 그 말은 If you want, just do 라는 뜻이 아닐까.


안되면 다시 하면 되고, 다른 걸 하고싶은면 다른걸 하거나. 

그렇게 그냥 하면 된다.


대신 할 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만 한다면,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가 나올 거고.

그렇게 솔직한 결과를 얻어낸 사람은 결국 계속 자신을 찾아갈 수 있을 터였다.



6. 자소서에서 제일 어려운 질문은 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라고들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살면서 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를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왜 이걸 하고자 하고, 이걸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얻고자 하는 건 뭔지.

외로운 작업이지만 자신의 스타일로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 물어야 한다.


6-1. 묻고 또 묻고, 그냥 이렇게 계속 하다 보면

난 더 현명해지고 결국 내가 원하는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아마 H는 또 이렇게 말할 거다.

"그냥 하면 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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