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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r 12. 2022

재활 그리고 제주

0. 여자농구 현대무용 요가 필라테스 수영 윈드서핑 패들요가 러닝 스케이트 보드 등등 다양한 운동을 한 나지만,

 그런 나로서도 운동 중 제일 힘든 운동은 재활운동이었다.


스포츠맨은 기본적으로 기록의 향상을 목표로 정진을 하는데, 내가 어느정도 잘하다가 갑자기 부상을 입으면

바닥에서 다시 원래 자리로 올라가기까지 좋은 컨디션의 훈련 때보다 몇배는 많은 여유와, 노력과, 끈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치고 올라가기도 바쁜데 원래 컨디션으로 올리느라 그 고생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고(애초에 본인이 의도치 않게 다쳤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해서 뭐하나 그런 생각을 해야 해서 그렇다. 예전보다 저조한 컨디션은 머릿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컨디션의 나 자신"과 계속해서 비교가 되어서 힘들기도 하고.


1. 작년 내내 본가, 내가 1인 가구 세대주로 있는 집 전세대란, 코로나 시대의 혼란한 시기에 이직, 인간관계 정리 등등을 거치면서 무기력해졌던 것도 사실이고 인생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16살부터 못자고 못쉬면서 지쳤던 신체는 못따라가는데 마음은 억지로 파이팅을 불어넣다가 결국 작년 가을 왼쪽 무릎 부상을 입었고 올해 1월에 재부상이 있었다.


드디어 재활을 시작하는데, Moving-on(나아감) 이란 역시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력감에 좌절하기도 하고, 난 정말 달라질거야, 마음을 먹다가도 이제까지 느슨해진 바이오 리듬에 다시 느슨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2. 언니들을 따라서 후다닥 연차를 쓰고 제주에 왔다. 눈 깜짝할 새 볼것만 보고 다시 돌아가는 일정이라서 사실 돌아가는 날을 앞두고도 내가 지금 제주에 있는 건지 서울에 있는 건지 싶었고 순간순간 걷다가도 사라진 백색소음, 사람들의 여유, 르 클레지오가 말했던 "섬의 우수" 같은 것이 갑자기 몰려올때면 멈춰서 아기처럼 주변을 돌아봤다.


늘 저녁 늦게까지 일했는데, 내가 지금 여기 있어도 되나?

여기가 제주가 맞나? 서울 근교 조용한 카페가 아니고? 이런 생각들.

물론.. 내가 어디에 있든 휴가든 아니든 상관없이 직장에서 전화는 계속 왔다고 한다


제주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한국에 있다. 모든 게  육지와 다르다. 주거, 관습, 몽골어와 섞였다는 더 투박하고 더 노래하는 듯한 언어마저도. 전설은 특히 다르다. 육지의 한국인들이  곰과 호랑이에게서 탄생했다면 제주사람들은 더 시적인 근원을 갖고 있다.

- 르 클레지오

J.M.G. Le Clézio


3. 제주는  묘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몇번을 실패해도 잠시 머무르고 호흡하다가 보다 차분하게 다시 일어날  있을  같은 .

어쩌면 그래서 코사이어티 빌리지나 오피스 제주같은 코워킹 공간이 제주에 속속들이 자리잡는지도 모르겠다.


지인들이 속속 제주에 자리잡아 내가 자주 왔다갔다하기 전에는 제주도 그냥 뭐 제주도지 하고 국외로 나돌기 바빴는데 조금씩 알게 되니 묘한 치유의 매력이 있었다.


제주에  이틀 정도만 머무르다 보면,

서울과는 공기부터 다른 분위기가,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날씨와, 그런 기후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행태가 서울과는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는다.



4. 작년 여름, 제주 리트릿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제주의 특별한 정서와 살기 편한 분위기에 반했다고 했고 그 분위기는 그저 즐기기만 하는 여유로움이 아니었다. 때로는 어려움도 불편함도 있지만 결국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안아내며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그런 무언가.

(제주에는 생각보다 감귤 따는 일을 하는 프랑스인, 호텔리어로 일하는 싱가포리안, 브루어로 일하는 미국 국적자 등의 다양한 English speaker가 많다.)


여기에서 살다 보면 인생의 자세가 바뀔 것 같아.

제주를 떠나는 오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창가에서 요거트와 커피를 먹다가 야쟈수와 샘나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 섬이라서 그런지, 물살과 바람에 밀려서 앞으로 부드럽게 나아가게끔 하는 그런 것이 있다고.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 <위대한 개츠비> 中


3월 초봄, 제주 배드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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