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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Oct 01. 2018

내가 잃어버린 사람들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은 존재하는 법

0. 어떤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다시 만나도 예전같지 않다는 뜻이다.

예전처럼 공감대를 나누지도 않고, 친밀도도 낮아졌으며, 반갑기보다는 서먹함이 앞서는 사이.

이미 서로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처음 만났던 때의 포지션에 더이상 서 있지 않을 때.


지난 9년간 난 매년 변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또 잃었다. 스치듯 만난 사람 뿐만 아니라 정말 친했던 사람까지.



1.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그 유통기한을 갱신하는 방법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는 서로를 그대로 봐 주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때 우리 스스로가 정의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보지,

그 사람 자체를 안 보는 경우가 잦다.

그리고 그 사람을 제대로 보려면 서로 간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2. J는 너무 가까이 하려 해서 잃어버린 사람이다.


시선이 유쾌한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 모두를 좋아하는 척 하던 21살 이지수가 진짜로 좋아했던 사람.

꼬박 3년, 꼬꼬맹이 때부터 발전기를 함께했다. 친구였고,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가족이었고, 때론 조언자였다.


영원하길 바랬던 관계는 쉽게 바스라졌다.

난 부쩍부쩍 성장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14년도 신입생 나의 단면만 봤다.

일하고 싶은 분야가 생기고, 취향이 생기고,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싶은 말도 보여주고 싶은 감정도 셀수없이 많았다.

그렇게 글이 늘었고, 이따금씩 하고싶은 말을 손으로 적어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 글을 한번도 "제대로" 읽어주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나보다 사랑했던 사람은 나를 알아주지 않았고,

그렇게 2016년의 이지수는 다시 무너졌다.



3. 반대로 너무 멀리 해서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


 Y는 집단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리더십이 있었고,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챙겼다.

한창 함께 활동할 때, 난 Y의 편이었고 Y는 내 편이었다.


활동 기간이 종료되었고, 나는 새로운 소속단체가 생겼다.

그리고 바빴다. 할게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이따금씩 Y는 모임을 종종 주선했지만 피곤에 쩔어있는 개인은 이기적이 될 따름이다.

지금 나한테 주어져있는게 많아서 과거의 사람들까지 가져갈 여유가 없었다.


몇 해가 지나, 다시 Y를 포함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예전처럼 다시 환한 얼굴로 반겨주겠지? 오랜만에 만나니 재밌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문을 열었고,

안에 있던 이들은 건조한 목소리로 "어 왔어?"라고 했다.


아 이런. 이건 내 이기심이었다.

나도 변하고 상대방도 변했는데 나는 서로의 템포를 조율할 시간조차 보내지 않고,

예전처럼 귀여움 받기만을 원했구나.

언제 만나도 편한 사람이 진짜 친구지, 라는 말을 내가 변명으로 삼았었구나.


그래도 서로 잘 살고 있구나를 확인해서 되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건조한 모임은 나름대로 마무리를 맺었다.



4. 나는 당신을 잃었다.

제 1이유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난 당신을 잃었고, 당신과 어울리던 과거의 나를 잃었다.


가슴찡하게 돌아볼 수 있지만 다시는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래서 내가 잃어버린 당신들이 보고싶지 않다.

다만 이렇게 헛헛하게, 당신들과 그시절의 나를 반추하며 가만히 음미하는 시간을 가질 따름이다.


지금 당장 옆에 있는 인연만이 인연이 아님을 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제시라면 전혀 만나지 않을

과거의 이지수가 만들어놓은 인연이 지금의 나의 일부가 된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잃어버리고, 내 자신의 모습을 잃게 될까.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을 언젠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이 순간이 애틋하다.



5. (덧) 2016년 12월 4일의 글 - https://www.facebook.com/jisoolee.jessie/posts/699436243555022


너무 늦었지만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내 세상이고, 전체였으며, 때론 스승이었고, 친구였고, 멘토였고,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었으며, 때론 누구보다 서운하게 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옆의 3년을 지켜준 사람이었다는 걸. 그런 당신을 저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모든 시간 안에서 사랑했었다는 걸.


이별에는 여러 이별이 있습니다. 이번 이별은 더욱더 성숙한 성인으로서 다시 만남이 내포된 이별이기에 후련하네요. 추억이, 인연이, 사랑이 저를 앞으로 지켜줄 것이기에 든든합니다.


이 시간부터 저는 한결하우스의 알에이 근무를 마칩니다.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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