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마음이 계속 침울하고 우울했다.
울창할 (울)과 답답할 (울)이 같은 한자인 것을 실감하듯이,
울창한 우울 나무가지 안에서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1. Bia는 지친 게 아니냐고 했고 며칠 전 난 기어코 코피를 쏟았다.
배구선수 출신의 아빠에게 받은 몸은 며칠간 밤을 새도 끄떡없었는데,
25년간 내 몸을 어지간히도 혹사했나 보다.
1-1. 제멋대로인데다가 솔직한 성정은
내가 믿지 않고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잘해주거나,
싫은데도 괜찮다고 말해버리는 순간
기분을 울적하게 하거나 몸을 아프게 한다.
2. 피터팬하고 H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바빴고,
요 며칠 내 인생에 인사이트를 불어넣어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인지 답답했다.
UX 스터디에서 작년에 만들었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딱 작년 이맘 때 수제맥주 앱을 만들며 밤샜던
JP, 윤, 피터가 보고싶었다.
그리고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뺀질거렸을 나 자신도 다시 보고싶어서,
스터디가 끝나고도 계속 장표를 바라봤다.
3. 누군가는 첫 직장을 얻으면 기쁘겠다 하지만 늘 삐딱선을 타는 나는 차가워지는 것 같다.
산업군에서 이 포지션을 계속해서 필요로 할지,
내가 속한 곳이 emerging 되는 마켓인지, 여기서 내 자신을 어떻게 포지셔닝 해야할지
차갑게 기회를 엿보며 말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여긴 어찌 되었든 내 꿈의 터전이라던지
내 인생을 앞으로 탄탄 대로로 뻗어나가게 해줄 마법 지팡이가 아니라,
비즈니스이고 전쟁터이지 않은가.
4. 올해 8월 자소서 스터디를 하며 H는
지수 너 졸업 안하고 싶은거 같은데? 라고 했다.
내 가능성의 폭을 줄이고 현실로 한발짝 나아가고 싶지 않았나 보다.
작은 회사에 있든 아직 학생이든 꿈이 있다고 나아가던 나는
어찌 되었던 빛나고 있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지 않았던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놓을 것을 겸허히 놓아야 되는 시점에서 힘들다.
넘어지고 일어나며 여기까지 왔던 제시가 장하고,
과거의 내가 남겨준 유산으로 지금의 포지션을 사는 것이 맞는지,
이 포지션을 사서 잘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어쩐지 그냥 계속 눈물이 날 것 같다.
5. 3년 전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빈센트와 살바도르 달리같은 시대를 앞선 천재도
자신의 감정선에 취해 방황했음에 위로받았던 기억을 애써 꺼낸다.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는 데 따르는 외로움, 고독, 흔들림.
살아 생전 빈센트 반 고흐의 광기는 주위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고
그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그의 넘치는 감정은 세기를 건너 사람에게 울림을 준다.
호흡하며 이 순간을 잘 정리해 나갈 묘안을 찾지만 떠오르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