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인지, 얄팍하게 접하고 있는 것인지
0. 다시 신입이 되고 보니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작년 2월이었나 3월이었나, 찬호차장님 필대표님하고 차를 타고 가다가 필대표님은 제시는 노래하는거 좋아하니, 라고 물어보셨다.
듣는 건 좋아해요, 라고 하니까 필대표님은 다소 어이없어하며 웬만하면 사람들은 듣는 걸 좋아하잖아, 라고 했다.
0-1. 뮤지컬 쪽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다. 신입생때부터 뮤지컬 동아리에서 살다시피 했고 2학년을 마치더니 바로 예술극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좋아한다는 건 저런거구나, 자신의 색을 짙게 만드는 것.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난 정말 음악을 좋아하나? 얄팍하게 접하고 있는게 아닐까.
나름 음악회도 가고, 음악 듣는 시간도 만들고, 친구들의 공연을 빼놓지 않고 가지만,
이게 좋아하는 건가?
1. 광고를 하면서 상업예술계에 종사하다 보니
전시와 음악회, 영화 같은 화려한 분야를 찾아다니게 됬다.
원래도 그런걸 좋아하긴 했지만,
대표님이 말했던 웬만한 사람이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도 깊게 다시 찾아다녔다.
이 오페라의 역사는 뭐고, 이 공연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뭔지.
배우진이 바뀔때마다 그 공연 평은 어떻게 바뀌는지.
2. 사람들을 결국 움직이게 하는 것은 기술에서 비롯하든, 예술에서 비롯하든,
결국 끊없는 치열함과 고민에서 태어난 감동이었다.
그 감동을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도 다시 고민했다.
2-1. 올해 미디어제작워크숍 교수님은 계속해서 고민하라고 했다.
이건 어때요? 라고 하면 그건 몇년 전에 이미 지났잖아, 라고
냉정할 정도로 코멘트하셨고 그럼 난 또 말대답했다.
주위 학생들은 둘이서 다소 세게 말을 주고 받는걸 보며 뜨악해 했다.
2-2. 그럼 뭐 어떡해요? 라고 말대꾸는 했지만 사실 교수님 말씀이 맞다는 건 알고 있었다.
광고에서 그저 주위가 하니까 나도 깔짝깔짝 하면 딱 거기까지였다.
트렌드를 잘 타는 사람은 플러스 알파를 만들어내지,
조잡하게 변형하지 않는다.
2-3. 방송국에 가고, 기자분을 만나면서 내가 매료되었던 단면은
그들의 고민과 치열함이었던 것 같다.
아웃포커스가 들어간 듯한 장인정신.
진짜 좋아한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3. 영화 <The dreamers> (몽상가들, 2003)의 이자벨, 테오, 매튜를 사랑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이 꿈을 못 이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자며 뜨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각자의 이상향이 다르다는 걸 알고 매튜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테오와 이자벨은 계속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한다.
가족처럼 뜨거운 시간을 보냈던 친구를 잃고,
오빠인 테오는 이자벨과 매튜가 사랑을 나눌 때 소외감을 느끼고,
그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이유다.
4. 몰라야 연애를 시작할 수 있다고들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뭘 모르니까 근무가 재밌다고들 한다.
그런 얄팍한 설렘이나 재미보다는, 이제 좀더 진득한 정수에 매료되는 나이가 되려나 보다.
상대방의 단점을 인정하고, 맞춰가고,
업계에서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소화하고.
그런것들이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 아닌지.
당신이 모를 때의 재미에 안주하지 않고
그 재미의 색을 한 톤 한 톤 깊게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힘든 순간의 헛웃음도 웃음이고,
실패했을 때의 처절함과, 이뤘을 때 의외의 헛헛함도 결국 다 일상의 빛나는 편린이다.
꿈꾸는 것도 좋지만 언젠간 깨어나야 해.
난 니가 영원히 라고 말해주길 바래.
- The Dreamers,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