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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Apr 09. 2019

마음껏 아플 수 있다는 편안함.

몸도 마음도 쉬어갈 시간

 아직 바람은 쌀쌀했고 조금 전 처음 받고 나온 고주파 온열치료의 여파로 몸은 너무 무거웠다. 하지만 항암기공체조는 무리한 운동이 아니라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머리를 비우고 몸을 가볍게 한 후 각자 자신의 진도에 맞게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이 시간은 이제 혼자다. 가만히 바람과 파란 하늘, 그리고 듬성듬성한 가로수 그늘과 함께 느릿느릿 조용히 걸었다. 바람이 꽤나 불어 손끝이 시린 점만 빼면 꽤나 마음에 드는 시간이다.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지날 즈음,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더니 순간, 다시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하루 중 한 두 번은 꼭 혼자서 눈물이 차 오르고 있었다. 벌써 2주째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나도 사실 당혹스러웠다.


 사실 한 달 전부터 내 심경의 변화를 살펴보자면 특이할 만한 사항이 하나 있었다. 전에 없이 속으로 자책이 자꾸 터지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난 안 될 거야. 네가 하긴 뭘 한다는 거야.'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씩 못마땅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모든 자신감은 다 사라졌다.

난 자신이 없었다. 무엇도 이루어낼 자신이. 그리고 모든 것이 심각하게 불안해져 오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책이 속으로 터지는 말이었다면 이 말은 입 밖으로 터지는 독백이었다.

"더 이상 못 하겠어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나도 모른다. 나는 병원 복도에서 쓰러져 심장이 폭발할 듯 헐떡거릴 때에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몸을 가누기 힘들어 일어나기를 포기하고 누워있을 때에도 그렇게 불쑥불쑥 내뱉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을 한 다음 날, 연배가 높으신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식사자리에 한번 초대를 하고 싶어 전부터 계속 연락하고 싶었는데 오늘 생각나서 연락을 하신단다. 죄송하지만 병원이라고 정중히 거절을 했더니 병원 위치를 물으시며 방문을 하겠다고 하신다. 처음 만날 때부터 내가 투병 중인걸 아시던 어른이고 자주 왕래하던 가까운 분이라 병문안 오시는 게 그리 부담될 일도 아니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 다시 문자를 드렸다.

'죄송하지만 이번 주는 힘들듯 합니다. 병원 치료 일정과 이곳에서 적응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방문을 거절했다. 친구처럼 편한 사이가 아니라, 평소 거절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렇게 거듭 거절하기가 한편으론 죄송했지만 현재 나의 상태는 외부의 어떤 자극도 피하고만 싶었다. 정말 혼자 편히 있고 싶었다. 나에게는 누군가의 위로나 관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휴식이 너무나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것이니.


그런 날이 있다. 너무 힘들고 아픈 날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를 보지 않았으면 싶은 날. 내가 평소와 달리 너무나 생기를 잃고 쳐져있어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눈빛들이 싫은 날. 그럴 땐 그저 이런 건 늘 봐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무심하게 대하거나 인사치레로 몇마디 건넬 생판 모르는 간호사들이 훨씬 편하다.


 병원 입원은 늘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 같았다. 처음 수술할 때도, 전이되어 다시 입원했을 때도 그랬고 어김없이 이곳도 그랬다. 방은 늘 따뜻하고 조용했으며 주변은 단정히 정리되어 있다. 이곳에서 내가 신경 쓸 일은 딱 정해져 있다. 때때마다 나오는 밥을 먹는 것(이게 제일 좋다), 병원의 안내를 따라 치료 일정을 따르는 것, 밤에 잘 자는 것. 그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오로지 '환자'이므로 사람들의 작지만 거절하고 싶은 요구를 받는 것도, 누군가의 눈에 내 모습이 너무 지쳐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다 내려놓을 수 있었다. 병원이라서 마음껏 아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편안했다.




 산책하는 동안 혼자 쉭쉭 눈물을 훔치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매주 항암제에 끊임없이 죽어나갔을 나의 세포들이 겪었을 트라우마 말이다. 물론 암세포의 활동을 막는다는 명분은 너무도 중요했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 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매주 엄청나게 무너져내려 갔을 세포들로 내 체내 시스템들은 얼마나 상실감이 컸을까. (항암제는 일반 세포들도 공격하니)

 그런데 나는 늘 '화이팅'을 지시했으니. 힘들다고 티를 낸다는 건 아무 필요도 없는 일 같았기에 스스로 약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아마 세포들은 힘들어도 티도 못 내며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힘을 내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어 터진 것인지도. 이제는 더 이상 못한다고 불쑥불쑥 튀어 오르던 내 안의 소리들은 정말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중요한 것은 지금 나는 정말 아기처럼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 대신 의료진들로부터 보살핌을 받으며 말이다.

 그래,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 이곳에서 당분간 푹 쉬어도 되니까 이제는 어디 한번 마음껏 쉬어 보자.

 그래도 존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글은 써야겠지만.




마음이 약해진다는 건


마음이 약해진다는 건
쓰디쓴 눈물이 난다는 것


마음이 약해진다는 건
내 아픔이 선연히 보인다는 것


마음이 약해진다는 건
옆에 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고양이에게도
기대고 싶어진다는 것


마음이 약해진다는 건
누군가에게 지금 내 모습을 감추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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