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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킴라일락 Apr 02. 2019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요양병원에 가겠습니다.

 "선생님, 저 도저히 오늘 힘들 것 같아요."

터미널에서 버스 출발 10분 전이었다. 새벽에 겨우 눈을 떴지만 컨디션이 심상치 않음을 느껴 시간을 뒤로 조정해서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며 겨우 터미널까지 왔건만. 포기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며 임상담당간호사에게 못가겠다고 칭얼거렸다.


곧 항암 100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100번은 했다고 해야 어디 가서 명함 내밀지 하는 귀여운 생각에만 빠져있느라 정작 내 컨디션이 망가지고 있는 건 몰랐던 걸까. 사실 이번 겨울이 작년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어디 컨디션 널뛰기 놀이가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애써 밀어내긴 했다.

 요 며칠 많이 힘들더니 몇 년 만에 침대에서 엉엉 울어버린 날이었다. 창밖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꽤 긴 시간 내 귀를 괴롭혔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쉽게 정신이 들지 않는 것도, 밤새 속이 울렁거리더니 여전히 그런 상태인 것도, 겨우 사과를 입에 물고 씹어 삼키며 기운을 차려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도 모든 것이 웬일인지 너무 측은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닌가. 분명 이것은 나의 평소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어쨌든 병원에 갈 힘이 없어 울음이 터짐과 동시에 가여움이 폭발해 더 울었던 것 같다. 2년 가까이 거의 매주 항암을 하며 병원에 못 가겠다는 말을 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터미널까지 갔다가 말이다.


 그러나 내 전화를 받은 임상담당 간호사는 나처럼 칭얼대는 환자가 익숙한지 아주 침착한 어투였고 조율에 조율을 거듭해 결국 내가 한발 물러나 병원행을 결정했다. 다시 택시를 돌려 터미널로 오는 사이 몸은 더 무거워져 오고 있었으며 간신히 올라 탄 고속버스 안에서 내내 잠들어버렸다.

 

 터미널에 내려 혼신의 힘을 다해 길거리에서 쓰러지지 않고 겨우 병원까지 도착했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엉망진창인 컨디션. 그리고 그런 내 상태에 대한 '치료법'이 아니라 '응급실 입원 및 밤새 이어지는 검사, 검사, 검사'였다. 진료실에 들어가 보기좋게 주치의 앞에서 반 기절 퍼포먼스를 펼쳤더랬다.

덕분에 항암 치료 중단이 결정났다 . 항암 100회 맞이 축하파티는 날아갔다.

 그러나 값비싼 검사들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속 터지는 한 마디 듣고 화장도 머리도 엉망이 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건 식중독이 아니라구. 산소포화도는 100이었을지 몰라도 나는 분명 병원 복도에서 쓰러져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공포를 체험했다구. 어제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이게 평소의 내 모습은 아니라구.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이번이 좀 강력했을 뿐 이런 게 처음인가. 항암 치료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하는 거지. 하지만 자꾸 억울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는 것도,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을 하는 것도 모든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가끔 혼자 터지는 눈물은 또 무엔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집중해서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좋아하는 시인의 시 구절만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그러나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결국 이렇게 바보 멍텅구리같이 집에 있을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입소를 결심했으나 문제는 환경이었다. 잠깐 입원해서 퇴원하는 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장기간 생활을 함께 하는 공간이라 차이가 있었다. 예전에도 항암치료 중 요양병원에 입원하려고 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었기에 단체생활 부적응자인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역시나 이번에도 '왜 보호자가 입원했나' 하는 눈빛이 쏟아지지 않을지, 과연 건강이 호전될 수 있을지 각종으로 걱정이었다.

 

조심스레 인근 1등급 요양병원에 입원 문의를 했다.

"안녕하세요. 입원 상담을 좀 하고 싶은데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 서른 후반이요."

"죄송합니다. 입원 가능한 나이가 아니세요."

"암 투병 중인데 불가능한가요?"

"네. 죄송합니다. "


 알고 보니 암병동이 없는 요양병원이라 입원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요양병원에 대해 사전 지식이 너무 없었다. 다시 암 요양병원으로 검색을 했다. 원하는 조건은 3개. 공기 좋을 것. 산책 가능한 공간이 있을 것. 깨끗할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있는 곳 주변에는 암병동이 있는 요양병원은 단 하나뿐. 고르고 말고 고민하고 할 것도 없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 있는 게 어디야. 가보자.


그리고 1주일 후 그 병원으로 입원하게 됐다. 혼자 쓰게 된 원룸형 방이 낯설면서도 왠지 모르게 편안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아직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요양병원 입원을 하다니. 어쩌다가. 에휴.

 그렇게 나는 꽃피는 따스한 봄에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의 조용한 요양병원으로 입원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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