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직딩제스 Mar 16. 2017

왜 라는 질문에 답이 있을까..

사랑엔 답이 있을까

왜 라는 질문에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유가 없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왜 너는 나를 떠나갔는지

왜 너는 나를 좋아하게 됐느지.. 왜 싫어졌는지

왜 나는 그런 너를 계속 그리워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혼자 생각하고 추측하고 되짚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물어 볼 수도 없다.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해 이런 생각들을 사람들은 미련이라 하고 이런 미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미련하다고 한다.

그렇다. 미련 할지 모른다..

미련하니까 답도 못 찾고 며칠 몇 달을 그렇게 오답만 나오는 문제를 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고 아무리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혼자 끌어 안고 있다.


답답하기도 하다. 이런 쳇바퀴 속에서 매일 헤매고 있는 내 생각이, 내 감정이, 내 시간이, 이러고 있는 내가 안타깝다.


'왜'라는 알 수 없는 질문의 끝은 망각일 것이다.

너라는 존재의 망각.

너라는 존재를 잊게 되면 왜라는 질문조차 무의미해 진다. 왜 라는 질문이 닿을 곳 없이 공중에서 분해되고 만다. 그렇게 영영 답을 찾지 못하고 '왜'라는 질문도 사라진다.

물음도 답도 생각도 기억도 사라진다...


어차피 사라질 질문을 나는 왜 혼자 반복하고 있을까.. 이 또한 질문이다. 답을 찾지 못하는 질문에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어쩌면 삶이란 끊임없는 질문의 연속일지 모른다.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이자, 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 답은 돌아오기도 하지만 돌아오지 못하기도 한다. 왜냐는 질문에 답을 찾는 것까지 어쩌면 부메랑 같이 질문 한 사람의 몫이 아닐까..


특히, 사랑은.. 사랑에 대해서는 더욱 알 수 없다.

질문한 사람도 받은 사람도 알 수 없는.. 정답이 없는 무지의 세계.

정답이 없기에 풀 수 없고

정답이 없기에 어떻게든 풀 수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게 답이고 그 답을 정답이라 믿으면 그게 곧 이 된다. 생각하는 것이 답이다. 답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사랑에 묻는다..

당신은 나의 어떤 점이 좋아서 날 사랑하게 됐고

나는 당신의 어떤 점이 끌려거 사랑하게 됐는지

사랑했는데 왜 사랑하지 않게 됐는지

왜 떠나 갈 수 밖에 없었는지..


오늘도 문고 또 문고

사랑엔.. 답이 없지만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그랬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