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단상
냉정과 열정 사이(冷静と情熱のあいだ)
로맨틱 장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이자 영화인 냉정과 열정 사이를 다시 읽었다. 쥰세이와 아오이가 1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라 간 이 곳, 피렌체의 두오모 쿠폴라. 학창 시절 냉정과 열정 사이는 로맨스 영화와 소설로 많이 읽히고 영화화까지 되었다. 이 곳 피렌체에 오기 전까지 나도 냉정과 열정 사이의 팬이자 가장 좋아하는 소설/영화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꼽곤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이 소설은 낭만도 로맨틱도 아니었다.
다시 읽어 보니 쥰세이와 아오이 두 인물의 '현재의 사랑'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10년 전 사랑만 중요하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사람은, 지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았던 걸까..?
아오이는 자신에게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하는 마빈을 끝내 거절했고 쥰세이는 자기를 따라 이탈리아에서 일본까지 따라온 여자 친구 매미를 끝끝내 버렸다. 그들에겐 지금의 사람은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사랑하지 않으면서 거짓으로 몇 년 동안이나 만났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동안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아오이와 쥰세이 곁에 있었던 마빈과 매미는.. 사랑도 하지 못한, 받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 되는 걸까.
연인 간의 싸움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싸움의 형태는 다를지라도 이견이 생기고 오해와 말다툼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다툼 그 자체가 아니라 왜 다투게 되었는지, 서로 다르게 혹 잘 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이해하고 이해받으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 역시 사랑하는 과정이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오이는 마빈과의 오해를 풀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쥰세이의 편지를 마빈에게 들켜 오해할 거리를 제공했음에도) 쥰세이는 칭얼대긴 하지만 쥰세이가 곁에 없으면 안 되는 매미에게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아오이을 잊을 수 없고 잊지 않을 테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야."라는 비수를 꽂는 말을 면전에 던진다. 현재의 사랑에게 너무나 잔인하다.
과거는 미화된다
우리의 기억은 편협하고 지금 생각하는 과거와 내일 생각하는 과거는 현재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아무리 나쁜 기억이라도 부정적인 면은 시간에 의해 마모되고 긍정적인 부분이 남게 된다.
반면, 연인 간의 싸움은 똑같은 부분에서 반복된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싫어하는 그 부분은 각자가 가지고 있고 한쪽에서 완전 없애거나, 절대적으로 이해하거나 하지 않으면 그 충돌은 계속된다. 즉, 헤어져서 다시 만나도 싫은 건 싫은 거고 좋은 거다. 부딪힌 부분은 또 부딪히게 되는 법이다.
여기 피렌체에 까지 와서 내가 좋아하던 영화에 대해 이런 말 하게 되어서 참 미안하지만.. 준세이와 아오이는 이 둘은 또 헤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이 두 사람은 오해가 생기면 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아오이는 처음 쥰세이와의 이별에서도 그랬고 현재의 마빈에게도 그렇고 남자가 소리를 지르면 아무런 화해의 노력도 하지 않고 집을 나가는 경향이 있다. 10년 전이나 10년 후나 똑같다.
관계를 이어가고 싶으면 대화해야 한다. 상대가 이해하게끔 말을 해야 하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상대를 이해시켜야 그다음 번에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 (실제로 연인 간에는 한 번 말한다고 해서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 두 번 세 번, 열 번은 더 말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해도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오이는 갈등을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침묵과 회피로 일관한다.
영화는 극적으로 로맨틱하게 그렸지만 연인 간 다투고 이해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한다. 때론 일보다 공부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기억은 그 순간의 감정보다 더 미화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다. 중요한 건 그 과거를 통해 현재를 어떻게 대하고,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가 더 중요하다. 과거의 사랑의 실패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의 사랑을 대하고 갈등을 풀어가야 더욱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직딩단상 in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