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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제스 Nov 12. 2018

나는 혼자 있는 걸 잘 못해서

나는 혼자 있는 걸 잘 못해서 혼자서 잘 지내지 못했나 보다.   
혼자 잘 지내지 못해서 누군가의 관심이라도 필요했나 보다.   
누군가의 관심이라도 받으려고 그렇게 시끄러웠나 보다.  
빈수레가 요란하듯, 마음이 텅 비어있던 나는 어느덧 그렇게 요란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걸 잘 못해서



나로서는 애써 그렇게라도 웃어서 잘 지내보려 했던 것 같다. 그렇게라도 떠들어야 외로움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요란함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요란함의 끝은 항상 같은 모습이었다. 웃고 떠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혼자 남겨진 내가 있었다. 밤 길은 어둡고 적막했다. 비틀 거리는 길 위로 멀어져 가는 타인의 발걸음 소리만이 적막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나의 어두운 세계는 바깥 세계의 화려함과 대조되었다. 온라인 세계는 더욱 심했다. 온통 화려한 웃음만이 넘쳐 났다. 그 속에 나의 어둠이 낄 곳은 없었다. 외롭다고 우울하다고 털어놓을 수 있는 틈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내면과 외면의 대조는 점점 더 극명해져 갔다.
빛이 어둠의 깊이를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나 혼자 해저 탐사 잠수정처럼 심연(深淵)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했다. 
   

‘나의 어둠은 어디서 왔을까. 나는 왜 외로울까..’



밑바닥으로 내려가 자문해봐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어둠이 상실에서 온 것인지, 결핍에서 온 것인지, 과거의 상처에서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존재 자체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이면 누구나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존재적 상실.  


‘어차피 사라질 너, 어차피 사라질 나.’


잠깐 스치고 사라질 거라면 만나지도 말고 어차피 없어질 감정이라면 시작도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누군가를 잡을 힘도, 누군가를 끌어 단길  능력도 내겐 없었다. 소개팅도 하지 않았다. 그런 피상적인 만남은 오히려 메마른 내면을 더 고갈시킬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생활이었다. 선택이지만, 선택적이지 않은 혼자로 지내야 했다.

야근하고 돌아와 텅 빈 원룸 방바닥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셨다.   
중국 출장 호텔방 침대에 걸터앉아 칭다오를 마셨다.  
강바람이 부는 마포대교를 건너며 맥주를 마셨다.  
혼자 여행 간 유럽에서, 독일에서 오스트리아에서, 피렌체에서, 체코에서 그리고 호주에서, 미국에서 혼자 맥주를 마셨다. 누군가 옆에서 잔을 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혼자 있을 땐 누구도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를 수 없었다. 선택이었지만 선택이지 않은 혼자가 되어 있었다. 외로움은 깊어 가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내 옆을 스쳐갔다.  
나는 어떤 계절에도 머물지 못했고 어떤 계절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나마 가을이 좀 편했다. 가을에 태어나서 그런지, 가을에는 사라지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가을에 동질감이 더 많이 갔다. 지독하게 고독했던 작년 가을, 더 이상 떨어질 것도 없던 그해 겨울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꼬박 1년 만이었다. 처음 알게 된 것은 1년 반 전이었지만 그동안 왕래는 없었다. 온라인 상 지인 정도였다.
  
그녀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내게 왔다. 천천히 그리고 진하게 내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어느새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자리 잡았다.

‘아.. 이 사람인가.. 내가 찾던 사람이..’

크리스마스 때 나는 용기 내어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 현실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가 좋았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 후 나에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나로서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찾지 않아도, SNS에 고주알미주알 올리지 않아도, 지난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지금 현재로 충분히 행복했다. 그녀 앞에서는 내가 현재에 있었다.

그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무엇을 덧붙이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었다. 나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녀가 무척이나 좋았다. 마음이 놓였다. 나는 점점 그녀 옆에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져 갔다. 혼자 있는 자유로운 고독보다 같이 있는 안정감에 익숙해져 갔다. 그녀와의 대화는 그 어떤 놀이보다 즐거웠고 우리는 대화하느라 영화 보는 시간조차 아까워했다. 며칠은 밤새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한 주제로 2박 3일 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녀 곁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매번 만날 때마다 나는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의 내면의 어둠이 조금씩 그녀의 빛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완전히 어둠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불안함을 안고 살았고 방 안에 혼자 있으면 걱정이 많아지고 이내 우울해졌다. 이런 걸 모두 그녀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때론 밝음과 어둠의 격차가 너무 커서 그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고 가진다 해도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혼자서는 늘 나약했고 여전히 가진 게 없는 나였다.

그녀와의 만남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지만 몇 년 간 내면에 존재했던 어둠이 한 번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종종 시간 속에 소멸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만 먹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노화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생명은 탄생 이후 소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 수록 그 소멸의 가속도는 빨라졌다.


다만 갈수록 분명 해지는 것 하나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나는 그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 그녀와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디에도, 어떤 시간에도, 누구에게도 머무를 수 없었던 내가 그녀 옆에서는 온전히 머무를 수 있었다. 몇 시간이 가도, 어디를 가도 나는 분명 그곳이 ‘존재’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나는 그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들었다. 그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용기’에 가까웠다. 그녀는 항상 날 응원해 주었고 언제, 어떤 순간에도 날 향한 존중은 잊지 않았다. 서로를 존중하고 또 응원했다. 내가 어디서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존중받고 사랑받았다. 내가 뭐라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또한 그녀는 내게 좋은 거울이었다. 우리는 자주 내면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더 잘 보게 해 주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내 안에 덮여 헝클어져 있던 파편들은 점점 제 자리를 찾아갔다. 굳었던 부분은 풀어지고 약했던 부분은 단단해지고 어두웠던 부분은 밝아지고 지나치게 밝았던 부분은 약간 어둡게 조절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안에서 재 정립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살아오면서 느껴 본 가장 큰 안정감이었다.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었던 그 상태였다.

언젠가 한 번 나는 나의 내면의 우울과 어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의 외로움에 대해, 나의 무기력함에 대해, 어둠에 대해, 결핍에 대해.. 이미지, 꾸민 것, 포장 따위는 버리고 내면에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용기를 낼 수는 없었다. 누구나 나약하고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지만 외부에 보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외부에 보이는 것을 보여주기는 쉬운 반면 내부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는 어렵다. 그래서 생각은 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다. 나의 외로움에 대해, 나약함에 대해, 불안함에 대해, 어둠에 대해.. 왜냐면 그것이 이제는 더 이상 현재의 것이 아니므로, 적어도 전과 같지 않으므로, 남들에게도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작은 크기가 되었으므로..
이런 나의 어두운 면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감싸주고 다독여주는 그녀가 있으므로..
그녀와 함께라면, 혼자서는 하지 못했던 일,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일까지 겪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 언제나 용기와 사랑을 주는 사람, 그대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한다.
이런 나의 나약한 모습까지 감싸주고 안아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 곁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함께 해주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당신이라는 사람이 함께 해줘서,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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