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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Feb 29. 2016

그 마을에 다시 가보고 싶다

빠이 트래킹만의 색다른 1박 2일 (2)

(이 글은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jesuckchun/20




깊은 산 속의 아침은 예상보다도 더 맑았다. 청량한 공기가 들어와 콧 속 깊은곳까지 시원해지니 자연스레 잠에서 깼다.


어제의 피로에 비해 제법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온 동네에서 우리가 가장 늦게 일어난 것 같았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동네 가축들까지 이미 다 일어나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잘 잤나, 닝겐? - Pai, Thailand ⓒ제석천
리수족 마을 진수성찬 - Pai, Thailand ⓒ제석천

가이드 아저씨는 우리가 일어나길 기다렸다는듯, 바로 아침밥을 내왔다.

상도 없이 바닥에 그릇 몇개 놓였을 뿐이지만, 태국에 온 이후로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직 이 마을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기 때문에, 수저가 있는 집은 이 집 뿐이라고 했다. J.T.는 자기도 손으로 먹어보겠노라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J.T.는 고산족마을 만큼이나, 우리를 신기해 했다.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다 외국어(=영어)를 잘 하는 거냐며 신기해 했다. (나나 친구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건 절대 아니다.) 여행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은 다 영어를 잘 하는데, 백이면 백 다 자기는 영어를 잘 못 한다고 말한다며, 한국에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거냐고 물었다.

북한이 무섭지 않냐고도 물었다. 전쟁 도발이 일어날 때마다 한국 사람들이 도망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한국을 거의 모르는 레알 미국인과 태국의 깊은 산 속에서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깊은 산 속, 리수족 마을의 뒷모습 - Pai, Thailand ⓒ제석천

아침식사 후, 차디찬 펌프 물로 고양이 세수를 마치고, 다시 모험복장으로 갈아 입었다. 어제 왔던 만큼의 길을 되돌아가야 했기에, 출발을 서둘러야 했다.


도착하던 날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정경을 눈에 담고 또 담으며 리수족 마을을 떠났다. 어제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복실이도, 어젯밤 우릴 초대해주었던 동네 어른들도, 아마- 이 생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이 마을도, 이 생에서 다시 오기는 힘들 것이다.


눈이 부실만큼 햇살이 떨어져내리는 마을 모습을 많이 많이 보면서 떠나 왔는데도, 지금은 많이 흐릿해져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제의 지옥을 다시 경험할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아저씨가 오늘은 다른 고산족 마을을 보기 위해 매우 Easy한 길로 가겠다고 했다. 액션보이 J.T.는 Easy한 루트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지만, '다른' 고산족 마을에 대한 호기심은 누를 수 없었나보다. 아니면, '약해 보이는' 동양 아이들을 배려해 준거였거나.


돌아가는 길에 들를 마을은 아저씨 장모님댁이 있는 곳인데, 카렌족 (Karen, 태국 산악민족 중 가장 대다수를 차지하며 비교적 낮은 지대에 거주. 대부분 농경생활을 하지만, 관광산업 등으로 돈을 버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마을이라고 했다. 자기 동네와는 달리 이 마을은 아주 부자라고 했다.


어제에 비하면 쉽디 쉬운 내리막을 한달음에 내려와 보니 의외의 넓은 평지가 펼쳐졌다.


여전히 고산지대라고는 하지만, 리수족 마을이 있던  깊은 산속에 비하면 넓은 광야같은 들판 위. 또 하나의 마을이 나타났다.

카렌족 마을 - Pai, Thailand ⓒ제석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스카이라인만 보던 우리 눈에는 비슷해보일 수 있는 풍경.

하지만 두 마을은 정말 확연히 달랐다.


비교적 넓은 평야 위, 마을도 넓고 길도 넓은 것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여긴 지붕이 모두 양철로 되어있다!


쇠붙이라면 숟가락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던 리수족 마을에 비하면, 강한 스콜로부터 집을 안전하게 지켜줄 양철 지붕은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산 위에 사는 리수족은 채집 위주로 살아가지만, 여기 카렌족 사람들은 넓은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부자라고- 아저씨가 다시 말해 주었다. 가이드 아저씨가 서울 도심의 스카이라인을 본다면- 아니, 콘크리트로 지어진 우리 집을 본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그런 튼튼한 집에 사는게 괜히 미안했다.


시장에 내다 팔 마늘들 - Pai, Thailand ⓒ제석천
집 지키는 돼지  - Pai, Thailand ⓒ제석천

모두가 농사 지으러 나간 시간이라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리수족 마을의 평화로움과는 다른- 알 수 없는 고요함이 텅 빈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아이 한명 보이지 않는 카렌족 마을은 가축들이 지키고 있었다. 크고 볏이 꼿꼿이 선 장닭들과,


개 대신 집을 지킨다는 돼지.


정말로, 이 동네에선 돼지가 집을 지킨댄다. 리수족 마을에 비해 개들이 안 보이는걸 보면- 진짜인 것 같기도 하고.... 낯선 사람이 오면 돼지도 짖나?;;;; 꿀꿀대는 소리로 침입자를 쫓아낼 돼지의 모습이 상상은 안 가지만, 괜히 화를 돋구지 않도록 가까이는 가지 않기로 한다.


더위를 먹지 않도록 모든 가축들은 높게 지은 집 아래에서 기르고 있다.

자유롭게, 마치 개처럼, 동네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던 리수족 마을 귀요미 돼지들에 비하면- 몸집은 훨씬 크지만 생기가 없어 보인다. 날씨 때문일까. 내 기분 탓일까.


훨씬 부자라는 카렌족 마을 사람들은
리수족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할까.
이들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만큼 부자일 나는
이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행복할까.


Pai, Thailand ⓒ제석천

끝이 없을 것처럼 넓은 화전 위에 있는 오두막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점심을 먹는다. 아침에 남은 밥을 볶아 바나나잎에 싼 간이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랬다.

어제의 축축한 산 속 개고생에 비하면 꿀 같았던 오늘의 쉬운 일정 덕에 거친 밥도 잘만 넘어갔다.


어젯밤 진한 곡주를 과음한 탓에, 일행 모두가 지쳐 널부러졌다. 게다가 비가 안 오니 햇볕이 뜨거워 시원한 물 한모금이 절실했다.

우리의 투덜거림을 듣고는 가이드 아저씨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십여분이 지나자, 누군가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는데-


뒷자리에서 얼기 직전의 시원~한 물과 콜라를 꺼내주는게 아닌가! ㅎㅎㅎㅎㅎㅎㅎㅎ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근처 밭에서 일하던 친척 동생이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 가지고 온 거였다......


반나절만 걸어 내려와도, 전화 한 통이면 냉장고에 있던 콜라를 바~로 마실 수 있는 곳이 나오는데...

전깃불 한알 볼 수 없었던 어젯밤이 꿈인가 싶다.


고요한 마을, 평화로운 일정 - Pai, Thailand ⓒ제석천

얼음물로 기력을 되찾고 조금 더 걸어 출발지와 비슷한 비포장 도로에 도착했다. 삼십여분을 길바닥에 앉아 기다리니 그제서야 탈탈거리며 낡디 낡은 버스가 도착했다.


영화에서나 본 장면처럼, 얼기설기 엮은 닭장에 들어 있는 닭 한마리와- 사람만한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탄 아줌마들 사이에 끼어- 유리도 없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빠이 타운에 도착하니 오지 탐험을 갔다가 메트로폴리스에라도 도착한 기분이었다.



이제 도시에 도착했으니

이틀간 나를 지탱해주었던 지팡이와는 안녕-

초면에 잠자리를 함께 한(?) J.T와도,

이틀동안 내 생명을 의지했던, 겨우 이틀만에 오랜 친구가 된 것 같았던 아저씨와도 안녕이다.


지팡이와도

J.T와도

가이드 아저씨와도

아마, 90%의 확률로, 이번 생에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50년이 지나도 그들을 기억할 것이고,

그들 역시 남은 생에 딱 한번쯤은, 나를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갈 수 있을까?

그 마을에, 그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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