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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Feb 25. 2016

태국 고산족 마을에서의 하룻밤

빠이 트래킹만의 색다른 1박 2일 (1)

트래킹은 빠이의 관문도시인 치앙마이에서 더 유명한 아이템이지만, 치앙마이 트래킹은 유명한만큼 너무 상업적이라 수박 겉핥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치앙마이보다 훨씬 '고산지대'인 빠이에서는 비교적 리.얼.한 트래킹을 만날 수 있다.




정.말. 고산족 마을 출신인 가이드 아저씨를 포함해 고작 4명이 떠난 1박 2일 트래킹. 탈탈거리는 트럭 뒷자리에 타고 한시간여를 달려, 더는 길이 없는 곳에 내린다.

트래킹의 시작 - Pai, Thailand ⓒ제석천

새까만 산길 위에 우릴 떨군 트럭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작디 작은, 낮디 낮은 농촌 마을을 입구 삼아 깊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제부터는 빠이의 높고 푸른 하늘과는 작별이다.

여길 봐도 나무- 저길 봐도 나무- 어딜 봐도 나무- 사랑해마지 않는 망고가 여기저기서 툭툭 떨어지는 망고나무 숲.

아직은 사진 찍을 정신이 있을 때. 하지만 하늘이 심상치 않다 - Pai, Thailand ⓒ제석천

하지만 정오쯤이면 어김없이 내려붓는 스콜 때문에 축축해진 숲은 망고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스콜도 식히지 못한 더위와 습기 때문에 온몸에 치덕치덕 감기는 우비와 전쟁을 치르며 겨우 겨우 걸음을 쌓아나간다.


미끄러운 진흙길에 몇번을 넘어졌는지 모르겠다.

끝도 없을 것만 같은 숲 속, 길 따위 없는 진짜 숲.

겨우겨우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검고 깊은 숲에 사람이라곤 오로지 우리 넷 뿐인데 이상하게 무섭지는 않다.


가끔은 거머리가 출몰해 벌레 방지 스프레이를 황급히 꺼내들어야 하고, 때론 발 한쪽 겨우 올려놓을 수 있는 길을 더듬거린다.



너무 고되고 고되어 점심으로 싸온 카오팟이 한술도 넘어가지 않는다. 포기하겠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포기해봤자 이 깊은 숲 한가운데서 어디로 도망칠 수 있으랴...

푹 젖은 열대림을 헤쳐나간다는게, 산은 가는데가 아니라 보는거라고 주장하던 사람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여자친구와 35km 트래킹을 취미로(!!!) 한다던 아메리칸 액션 보이 J.T.도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는지 진흙 위에서 크게 슬라이딩하고야 말았다.


슬슬 말이 안 나오기 시작하고, 이 상태로 해가 지면 우리 아무도 모르게 여기서 죽는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다가, 결국은 정신이 약간 몽롱해질때 쯤-


거짓말처럼, 끝이 안 보이던 숲 사이에 작은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깊고 깊은 숲 한 가운데, 고산족 마을 - Pai, Thailand ⓒ제석천


우리가 숙소로 사용할 이 집은 가이드 아저씨가 직접 오크나무를 잘라 지었다고 한다. 자기들은 부자가 아니라 티크나무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둥- 티크나무로 만든 집은 벌레도 없고 비도 덜 샌다는 둥- 작은 푸념들을 늘어놓았지만 손수 지은 집이 자랑스러운게 분명한 눈빛이다.


마을의 모든 집은 열대기후를 견뎌낼수 있는 2층 구조이다. 집을 높게 지으면, 지열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태풍이 왔을 때 홍수 피해도 적다고- 하지만 티크나무가 아니라 아주 튼튼하진 않다고, 아저씨가 다시 한번 일러주었다.



외국인 여행자들의 방문이 드물지는 않은듯, 동네 어른들도 아이들도 우릴 반가워는 했지만 신기해하지는 않았다.

씨족을 이루고 사는 리수족 마을인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가이드 아저씨의 사촌과 조카들이라고 한다.

관광을 위한 마을이 아니라 실제 이들의 삶의 터전인만큼, 사진에서 보던 전통의상들은 전혀 볼 수 없었고 대부분 낡은 반팔과 반바지 차림이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 모습이 더 낯설었다. 비슷한 옷을 입었지만 우린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구나...


발이 날래 보이는 동네 꼬마 하나가 동굴을 보여주겠다며 우릴 일으켜세웠다.

영어는 한마디도 할줄 모르면서 'cave' 라는 단어는 아는걸 보니 그 동안 수많은 여행객들의 동굴 가이드를 자처했었나보다.



동네 누렁이까지 가세한 동굴 탐험길.

난 이제 다리가 말을 안 들을 지경에 달했는데, 액션보이 J.T는 저 동굴마저 정복하고 싶은가보다.

너의 맨몸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겨우 납득시킨 뒤에야 J.T와 함께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절벽을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두고 바라보는 두 동양인과,

그 절벽을 타고 넘어 정복하고 싶어하는 한 서양인.

참... 이렇게 자기 문화를 잘 대변하는 사람들끼리 만난 것도 인연이다 싶었다.


관광지에서 '일'하고 구걸하는 현지 아이들을 너무 많이 봐 온 탓에, 이 어린 가이드에게 돈이라도 쥐어 줘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꼬마는 수줍게 작별인사를 날리고 누렁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깊고 깊은 숲이 그나마 이 아이들을 아이답게 지켜주었구나... 싶어 오늘 처음으로 숲이 고마웠다.



드.디.어. 모험은 끝났다.


조그맣게 지어놓은 샤워용 움막에서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었다.

가끔 오는 우리같은 손님들을 위해 급히 마련해둔 곳인듯- 나무판자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것 같아 조마조마한 샤워실. 하지만 비 내리던 숲속에 비하면 천국 같다...


리수(Lisu)족 마을 산책의 시작 - Pai, Thailand ⓒ제석천


개운해진 몸과 마음 덕분에 동네 산책을 결심한 우리 일행.


이번엔 복실복실한 털을 가진 개 한마리가 따라붙었다. 우리가 어딜 가고싶어하는지 다 안다는듯- 가이드를 자처했다. 우리보다 열걸음쯤 앞서나가며 동네 한바퀴를 돈다.


동네라고 해봤자 이 끝에서 저 끝까지가 전부지만, 저녁식사를 앞둔 마을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빗속 강행군에 지옥같기만 했던 숲속이 마치 꿈이었었던 것처럼.


길 끝에 다다르자, 더는 갈 곳이 없다는듯 복실이가 왔던 길을 돌아간다.


오늘 하루 우리의 안내자였던 복실이와는

아마도 다음 생에나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똘똘하던 그 녀석, 아직 살아 있기는 할까.

아직도 꼬리를 흔들며 여행객과 함께 동네 마실을 다니고 있을까...


리수족 마을 1일 가이드, 복실이 - Pai, Thailand ⓒ제석천
산을 내려가는 아이들 -  Pai, Thailand ⓒ제석천

가이드 아저씨가 해주는 저녁밥을 기다리는 동안,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2층에서 빼꼼히 아래를 내려다보니 트랙터처럼 생긴 작은 트럭에 아이들 두명이 타 있고,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아이들을 배웅하고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방학이라 잠시 집에 와 있던 아이들이 도시의 학교로 돌아가는 날이라 한다. 매일 산을 내려갈 수 없어 학교에서 지어준 낡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방학때만 집에 돌아온다고 했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깊은 산 속 터전을 버리지 않는 것은 자의일까, 타의일까.

마을에 하나뿐인 전화. 이 마저도 가끔은 먹통이라 한다  - Pai, Thailand ⓒ제석천


남자의 솜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맛있는 태국식 볶음밥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슬슬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마을.


그제야 왜 '랜턴을 꼭 챙기라'고 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전기라곤 거의 들어오지 않는 산 속.

집집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저녁시간을 보낸다.


촛불의 밝기래봤자 일행들의 얼굴도 분간할 수 없는 정도. 왜 옛날엔 해만 지면 잠자리에 들었는지 온몸으로 이해가 되는 시간.


이 긴 긴 밤을 어찌 보내나 걱정하려던 찰나, 가이드 아저씨의 형이 저녁 술자리에 우리를 초대해주었다는 반가운 소식!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집을 벗어나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이웃집으로 건너갔다.


동네 어른들이 모여 직접 내린 곡주를 즐기는 자리.

역시 촛불 하나뿐이라 어두웠지만 다들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우리는 영어로, 동네 사람들은 현지어로 말하고, 통역이라곤 그나마도 영어가 서툰 가이드 아저씨뿐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모두가 함께 즐거이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들고 술잔을 기울였다.


살짝 취기가 오르자 피곤이 몰려왔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기분좋은 술자리도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이제는 숙소로 돌아갈 시간.


밖으로 나왔더니

진.짜. 어둠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이 진짜 '밤'이다. - Pai, Thailand ⓒ제석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탓에 이런 순도 100% 어둠은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농활로 갔던 시골 깡촌에도 점점이 가로등이 있어 물체 식별은 가능했건만.


어둠이 너무 깊어 휴대폰 불빛으로는 발끝만 겨우 밝힐 수 있었다. 3분 거리의 옆집에서 돌아오는데 십여분은 걸린것 같다.


외지인들의 '미개한' 눈을 비웃기라도 하듯- 동네 사람들은 랜턴도 없이 유유히 집으로 돌아갔다.


모기장까지... 완벽한 침상! - Pai, Thailand ⓒ제석천

성긴 계단에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2층으로 올라왔다. 낮에 미리 봐둔 잠자리에 몸을 끼워넣는다. 어둠 덕분에 청결함 따위는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어둠 속에선 일행과 같은 시간에 잠들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선 눈이 부실 지경인 휴대폰 불빛이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그렇다면 내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 휴대폰 없이 뭘 할수 있겠는가. 꿀잠 뿐이지.


내 시야를 되돌려줄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며.

맑은 아침 공기 속에 놓인 마을 정경을 궁금해 하며.


꿀잠.

행복하고 편안한 꿈을 꿀 것 같다.




(남은 이야기는 2편으로....)

https://brunch.co.kr/@jesuckchun/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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