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by 김해경

"엄마, 미국 아이들이 우리 한국 아이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왜? 무슨 일이 있었니?"

"한국 아이들과 미국 아이들이 함께 모이는 일이 있었어. 식사를 시키는데 미국 아이들은 다 제각각이야. 그런데 한국 아이들은 한 사람이 '이거' 하니까 모두 '나도, 나도' 했거든. 미국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어. '너희들 각자가 좋아하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똑같을 수 있느냐'라고 물었어. 엄마, 나도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를 때가 많거든. 그런데 걔들은 커피조차도 좋아하는 취향이 얼마나 다양한지 나도 놀랄 때가 있어. 그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우린 왜 그런 탐색과정을 가지지 못했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방학 때 들어온 둘째 아이가 한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초등(국민)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한 반에 70~80명의 학생들이 우글거렸다. 매로 다스리는 훈육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학생들의 개성을 살려주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무난한 사람, 그중 몇 프로는 세상의 지도자가 되는 그런 인재를 양산해내는 것이 교육의 큰 본질이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중학교의 한 학급에 보통 30명 안팎의 아이들이 배정되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옛날보다는 아이들의 개성도 눈에 띄게 뚜렷해졌다. 그런데 그 30명 안팎의 학생들 사이에서도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아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그 아이의 존재가 다른 아이들에게서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개성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데에는, 사회에, 사람들 간에 얼마만큼의 공감력이 존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천일염으로 절인 배추에 토하젓을 사용하고, 고춧가루는 반드시 무슨 지방의 고춧가루를 사용해야만 제대로 된 김치가 된다고 생각해요. 김치 사러 갔을 때 저는 이런 김치가 있는지를 물어요."


누가 이런 말을 김치가게에서 한다면 "웬 정신 나간 사람이야"고 핀잔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커피점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존재하고, 그것들은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켜 주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커피를 사는 것이 아니라 서구사회의 다양함에 대한 공감력을 사람들이 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약간은 평범하지 않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한 학생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던 나는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John Burningham(잔 버닝햄)의 "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 the boy who was always late(잔 패트릭 노먼 맥 헤너시, 언제나 지각하는 소년)"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 set off along the road to learn.(잔 패트릭 노먼 맥 헤너시는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난다)"이다. 이 구절이 이 그림책에서 5번이나 나온다. 우리 인생의 여정을 딱 이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무언가를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본인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교사 모임에서 한 분이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 필레머)"이란 책을 강력 추천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을 진작 배운다면 훨씬 더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잔 패트릭 노먼 맥 헤너시는 인생의 여정을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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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악어가 나타나 가방끈을 물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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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이 장갑을 던져 이 위기상황을 모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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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학교에 가지만, 악어 때문에 지각을 한다. 왜 지각했느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잔은 "학교에 오는 도중에 악어를 만났다"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이 주위에 악어는 없어. '나는 악어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겠고 내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를 300번 써"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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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이 쓴 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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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잔은 또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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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는 사자가 숲에서 나와 잔의 바지를 물어뜯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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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은 나무에 올라가 사자가 흥미를 잃고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둘러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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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각한 잔과, 사자 때문에 지각하게 되었다는 잔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생님.

"이 주위의 숲에는 그런 사자가 없어. 저 구석에 서서 400번 '사자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내 바지를 찢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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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 잔은 또다시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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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위 다리를 건너는데, 거대한 조류가 잔을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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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은 조류가 물러갈 때까지 다리 난간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가, 온몸에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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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각한 잔과, 조류 때문이라는 잔의 말에 노발대발하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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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은 갇혀서 "조류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옷을 젖게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을 500번 쓰는 벌을 받는다.

그다음 날, 또다시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나는 잔. (잔의 염려, 걱정이 반영되어서인지 배경이 굉장히 어두컴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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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이번에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번에는 선생님에게 사건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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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패트릭 노먼 맥 헤너시, 거대한 털북숭이 고릴라가 나를 붙잡고 있어. 나를 내려줘"

"선생님, 이곳에는 거대한 털북숭이 고릴라 같은 것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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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잔 패트릭 노먼 맥 헤너시는 배우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그 일들이 악어를 만난 것 같고, 사자에게 물어뜯기는 것 같고, 때로는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죽을뻔한 일이 되기도 한다. 그때 우리를 도와주어야 마땅한 사람, 여기서는 인생의 길을 인도하는 선생님으로 표현된 사람이 도무지 우리를 공감해주지 않을 때가 있다. 선생님의 개념 속에는 내가 만난 악어, 사자, 조류가 없다. 오히려 거짓말이라고 화를 내며 벌을 준다. 그러나 선생님도 황당한 일을 만나게 되고, 자신도 공감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남을 공감한다는 것은 내가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본 일에는 쉽게 공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긴다.


이 책을 읽은 후로 학생들이 내 잣대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나에게 할 때에도 나는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일지라도 그에게는 악어가, 사자가, 조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 문을 열고 그 아이를 바라보게 되니 "응,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그럴 때에 내 틀에 가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색채가 드러나는 것을 나는 보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3번 되풀이된다는 말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우리는 살아가면서 공감받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일들을 부지기수로 만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꼭 공감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잔의 위대한 점은 그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배우기 위해 인생길을 간다는 것이다.


"얘들아, 너희들이 만약 잔의 선생님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할래?"

"전학 가요."

"홈스쿨 할래요."

"학교 안 다닐 거예요."


함께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이런 종류의 대답들을 했다.


"얘들아, 우리도 순간순간 잔의 선생님과 같은 모습을 가질 수가 있어. 공감한다는 것은 꾸준히 마음을 길들이는 거야. 그럴 때 친구의 다름이 그 친구의 개성으로 보일 수가 있어."


P.S. 나는 진리자체가 상대적임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기독교인으로, 기독교적 가치관 위에서 그 다양성을 공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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