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님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아들 둘을 가진 분이신데, 큰 아들이 이번에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 축의금을 보내었더니 오늘 점심을 사신다고 해서 만났다. 큰 아들이 4살 때,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혼자서 기도로 두 아들을 키웠다. 성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 그대로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두 아들이 훌륭히 자랐다.
첫아들은 한국에서 대학교를 마친 후, 미국에 일하러 갔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공장인데, 그 일이라는 것이 밤낮이 바뀐 일이어서, 미국에서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람을 채용해 미국으로 데려가는 그 직장에서, 아들은 2년을 성실히 일한 후, 미국에서 다시 신학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마쳤다. 지금은 목회자로 미국에서 교인들을 잘 섬기고 있다. 이 아들이 결혼을 한 것이다. 유학을 가는 것도 아니고, 변변치 않은 직장에 일하러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솔직히 우리는 걱정을 좀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미국 땅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게 된 그 아들이 우리는 정말 대견하고 기특했다.
둘째 아들은 소위 SKY 대학교에서 생명공학과 박사이다. 이번에 코로나 진단키트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고, 앞으로 과학 발전에 기여할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저는 요즈음 큰 깨달음이 있어요"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하시는 그분의 말이다.
" 성경의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잖아요.
하나님을 떠나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힘들게 하시면, 다시 하나님께 돌아왔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이 편안해지면,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치시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다가,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고. 인간이란 존재는 뭔가 조금만 채워져도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하죠. 인간의 교만이죠.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편 22:5)'의 다윗의 고백처럼 '주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시는(시편 9:10)'
그 하나님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결핍이 오히려 축복임을 깨달았어요.
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축복인 거죠. 저는 남편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어서, 늘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워 주셨어요.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분의 삶을 알기에 나는 고개가 저절로 끄떡여졌다.
이분처럼 나의 삶도 끊임없는 결핍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늘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하나님 크기의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났기 때문에, '결핍이 축복'이라는 이분의 말이 나에게도 크게 다가왔다.
이분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셔서, 정말 어려운 환경인데도 다른 사람들을 물질적으로도 많이 도우셨고,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본인의 집에 재우면서, 상담해주시고 위로해 주시곤 하셨다. 이분은 일용할 양식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시면서도 늘 감사하는 삶을 사셨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지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밀란 쿤데라는 사랑하거나 사랑받는 존재가 없을 때 우리는 가벼워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고 하면서, 살아갈 이유를 타인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의 관계가 없다면 존재의 이유도 찾을 수 없으며, 사랑에 의해 삶을 살아갈 존재감과 무게감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강신주 철학자의 해석을 참고함)
오늘 만난 이분은 비록 인간적인 남편의 사랑은 없었지만,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형성했으며,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밀란 쿤데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존재가 무거운 삶을 사시고 계시는 분이다.
나도 이분처럼 무거운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사랑도 일종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어디서 공급받지 못하면(남녀 간의 사랑은 서로에게 에너지를 주기는 하나 영원하지 못해 곧 고갈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고갈되거나, 때로는 고갈된 것도 알지 못 한채 사랑의 그림자를 붙잡고 허덕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의 힘을 날마다 공급받아야, 우리는 가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웃을, 남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그리하여 존재가 무거운, 그러한 삶을 살 수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