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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한 조각

by 김해경

머뭇거리다 떠나지 못한 북풍 한 조각이

낮동안 나뭇가지 속에 숨어있다가

새벽녘이면 살며시 창문을 넘어온다


겨울의 북풍처럼 사납지 않고

봄, 가을의 북풍처럼 무심하지 않아


그녀는

우아하게 다가와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감싼다


그녀를 보낸 '행복한 왕자'는 누구일까?

행복한 왕자.jpg


'나 여기 있소'라고 소리로 생색내는 선풍기도 싫고


인간 지식의 발달을 뽐내며

'여름을 잠시 겨울로 바꾸어드립니다'라며

냉동 기운을 자랑하지만

밖으로는

뜨거운 열기를 미친 듯이 뿜어내는 이중인격적인 에어컨도 싫어


나는

여름 내내 창문을 열어놓고

그녀를 기다린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여의치 않은

쪽방촌을 방문하라고


세상살이에 지친 부모 때문에 따듯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울다 지쳐 잠든 아이들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물하라고


염려, 걱정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잠시나마 위로해주라고


행복한 왕자는

그녀가 북쪽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만류한 것일까


아~


나는


이들의 창문밖에

그녀가 숨어있을

나무를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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