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Novel)

by 김해경

1. 태양이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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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학교의 교사로 막 다시 돌아온 때였다. 그의 첫인상은 너무 좋았다. 큰 키에 선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 그의 과목이 역사이어서인지 역사 지식에 해박할 뿐만 아니라 현시대를 해석하는 능력도 정확하고 탁월했다. 그래서 현 정부의 잘못을 거리낌 없이 질책하는 그의 모습은 가히 깃발을 휘두르며 나를 따르라는 나폴레옹과 같은 모습이어서 교무실 안의 모든 교사들은 박수를 치며 그를 환호했다. 교무실 안이 일거리로 숨이 막힐 때, 선생님들은 은근히 그가 한 방을 터뜨려주기를 기대하기까지 했다. '선생님, 어제 이런 기사가 났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그를 부추기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열변을 토하곤 했다. 그럼 우리들은 '맞아요, 선생님. 그 사람들 정말 미친 짓을 한 거네요.'라고 하면서 '옳소'를 연발했다. 한바탕 입으로 미친 짓을 한 사람들을 한껏 흉보며 우리들의 스트레스를 다 풀고 난 후, 교무실은 다시 조용해져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각자의 일거리에 몰두하곤 했다. 그는 가히 우리 교무실의 태양이었다. 그가 비취면 교무실 안의 모든 근심, 걱정들이 사라지고 우리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해 낼 수 있는 에너지를 그로부터 받는다고나 할까?

2. 구세주이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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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나에게 있어서 구세주였다. 3학년 두 반 중 한 반은 그가, 한 반은 내가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그는 매사에 나에게 양보를 했다. '아~ 저는 정교사니까 목 떨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혹 내년에 어찌 될지 모르니 선생님반이 우리 반 보다 더 잘하셔야 합니다.' 그는 웃으면서 학급경영의 모든 정보를 나에게 가르쳐 주었고 실제로 우리 학급이 성적에서나 운동에서나 그의 학급보다 항상 좋은 성적을 유지하였다. 때로는 교감선생님의 핀잔에도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두 학급이 완전히 잘하고 있다'라고 큰 소리를 쳤다.


3. 하나의 작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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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당연히 교감으로의 승진 차례가 그였는데, 그가 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얌전하시고 말이 없으신 한 선생님이 그 기회를 받게 된 것이다. 때론 그가 은근슬쩍 교감, 교장선생님을 성토하고 모든 교사들은 너무 좋아 일심동체가 되어 함께 즐거움을 나누었던 그런 기회들을 그 두 분이 알고 계셨단 말인가? 아니면 그가 혹 관리자가 되면 학교를 뒤엎을 그런 성향이 있음을 미리 알고 걱정하여 에둘러 차단한 것일까? 교무실 안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를 걱정하며, 어떤 말로 침울해있는 그를 위로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사실 그의 아내 되는 사람은 초등학교의 교감으로 그보다 먼저 관리자가 되었고, 그는 이번 기회는 분명히 자기 차례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언한 터였다. 원칙적으로 보면 그의 순서가 맞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흐름이 바뀌게 된 것이다.


4. 탁월한 추리력의 소유자이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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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했는데 한 작품을 읽다가 우리들에게 줄거리의 대충을 말해준 후 누가 범인인지를 맞추는 선생님에게 특별상을 수여하겠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작가의 세밀하게 짜 놓은 전략을 어떻게 쉽게 걷어내고 그 해답을 손에 넣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떤 선생님도 맞추지 못하는 그 해답을, 그는 정말 거짓말같이, 거미줄을 걷어내듯이, 작가의 속임수들을 걷어내고, 그 범인을 맞추곤 했다. 그리고 그 이유까지도. 그래서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 책을 사서 함께 읽으면서, 과연 그의 말이 정답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그 비상한 추리력에 다들 놀라워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실제의 삶을 추리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5. 뜻하지 않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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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박탈의 기회가 지나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출근을 했다. 모든 선생님들이 너무 염려가 되어서 도대체 출근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거의 죽을뻔한 사건을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요즘 이 골짜기 지역에 갑자기 물류센터가 들어서면서 도로가 확장되어 4차선이 되었다. 그런데 본인이 3차선을 주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의 차 뒤를 쫓아오던 큰 덤프트럭이 옆 2차선으로 빠지고, 3차선의 자신의 차를 중간에 두고, 4차선에 또 다른 큰 덤프트럭이 달리면서, 중간에 낀 자신은 엄청난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다. 거의 한 10분 정도를 그렇게 달리다가 겨우 1차선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분명 덤프트럭이 2차선을 달린 것은 도로교통법 위반인데, 그 차량번호를 알아두었느냐고 선생님들이 물었을 때에도, 그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억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그는 거의 한 달가량을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6. 은혜를 갚으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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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베풀어준 은혜가 너무 커서 내가 자원해서 그를 아침저녁으로 실어 나르기로 했다. 마침 학교 오는 길에 그를 태우고, 가는 길에 내려주면 되는 일이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도 했고, 또 지루한 출퇴근길에 은근히 그의 유쾌함을 기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옆좌석에 앉은 그는 운전 내내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 즉 앞의 차가 얼찐거리면 그 차가 우리를 일부러 방해하기 위해서 천천히 간다고 했고, 옆 차가 굉장한 속도를 내고 달리면 우리를 위협하기 위해서 라고 했다. 특히 덤프트럭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가시지 않아서인지 덤프트럭만 보여도 '60km'를 외쳤다. 아니 무슨 고속도로에서 '60km'가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처음에는 그 선생님이 나를 웃기려고 농담하는 줄로 생각하고, 이를 웃어넘겼는데, 힐긋 옆으로 돌아본 그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바짝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그는 오가는 길 내내 백미러를 통해 뒤를 주시하는 행동을 계속했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어가는 모양새였다. 고속도로 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일들로 해석했고, 또 그렇게 그럴듯한 설명을 덧붙여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인 것은 교무실 안에서의 그는 옛날의 그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하여 다시 활기의 중심에 선 것이다. 선생님들은 그와 함께 하는 나의 출퇴근길이 엄청 즐거울 거라고 은근히 부러워했는데, 나는 한 달간 그와 함께 차를 타고 오고 가면서, 이젠 내 정신 상태마저도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7. 나 자신이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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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전염이 되어서인지, 옛날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일들을, 모두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들로 해석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저 차는 왜 저렇게 느리게 운전하지, 일부러 나를 방해하기 위해서인가? 저 차가 왜 저렇게 빨리 달려오고 있지, 혹시 내 차와 충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왜 이렇게 도로에 대형차들이 많지? 무슨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한 달간 옆자리에서 뚠 훈수들이 고스란히 나의 머리에 저장되어 나도 모르게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차 안에서의 그와 교무실에서의 완전 다른 그의 모습에 대해 나는 다른 어떤 선생님에게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누구도 나를 믿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난 후, 그가 이제 자신의 차를 운전할 수 있겠다고 했을 때, 나는 내심 너무 기뻤다. 밥이라도 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모든 탐정 영화(007 시리즈 등)에 탐닉하는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인사건이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실제로 알게 모르게 길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은 이런 위장된 교통사고이며, 평범한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사건이지만 그의 눈에는 그 숨겨진 음모가 보인다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와 그의 확신에 찬 얼굴 표정이 더욱더 실감 나게 느껴진 한 달이었다.


8. 학교를 옮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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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배려와는 아무 상관없이 나는 그 이듬해, 집 근처에 있는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교육청에서 나의 자리에 정교사를 발령 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교사로, 아직도 교무실에서 엔도르핀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함께 한 차를 타고 다니면서 경험했던 그를 내가 잘 못 알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9.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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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비 오는 목요일 저녁이었다. 카톡으로 올라온 부고장에 나는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오영필 선생님. 오늘 5시 45분 교통사고로 사망. 대동 장례식장 지하 2층 송실' 급히 옷을 챙겨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대체 무슨 일이 그에게 일어난 것일까? 그의 말대로 그는 살인을 가장한 교통사고로 죽은 것인가, 아님 단순 교통사고인가? 장례식장을 가는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바싹 마르고 안경을 쓴, 그리고 조금 깐깐해 보이는, 사감 선생님 스타일의 부인이 아무 말없이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았다. 나는 옛 동료 선생님을 만나 어떻게 교통사고가 났는지를 물었다. 그 선생님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들은 바를 전해 주었다. 큰 덤프트럭 뒤를 오선생님의 차가 들이박아서 그 자리에서 차는 다 부서지고, 오선생님은 즉사했다고 했다. 본인 과실치사인 것이다. 그러면서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비록 비가 오고 있어서 도로가 미끄러웠지만 왜 본인이 그렇게 질주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는 그가 어떤 살인의 위협을 느꼈기에 그렇게 앞 차를 들이박을 만큼 빨리 달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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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문 온 사람들 중에 이 정부에 반대하여 대놓고 저항하는 단체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오영필 선생님이 교사 이외에 또 그런 활동을 하고 있었는지는 그날 처음 알았다. 오선생님의 의외의 행적에 놀라 제단 위에 놓인 그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추리소설의 범인이 누구인지 맞추는 선생님에게 특별상을 주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그 장난기 어린 얼굴이다. 나는 그에게 해답을 가르쳐 달라고 중얼거렸다. 선생님의 죽음을 제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까요? 선생님의 그 부당한 기회 박탈과 덤프트럭의 위협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인가요? 선생님은 정말 본인이 그렇게 염려하시던 대로 살인의 음모 속에 갇힌 건가요?


나는 그날 밤, 비 오는 거리를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걸은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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