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가기 전 몇몇 선생님들과 함께 버켓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 꼭 하고 싶은 일)를 작성하여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100세까지 살면서 저의 친정엄마가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준 것처럼, 저도 나중 저의 아이들의 할머니로 그들을 돌보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 사람의 추억 속 친정엄마는 아이들을 잘 보살피며 행복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아름다운 그림으로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맞는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오래 살기를 바란다. 할 수만 있다면 영생하기를 바란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 영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길가메시는 친구인 엔키두가 죽자 너무 슬픈 나머지, 영생의 비밀을 알아내어 죽음 자체를 정복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꼬박 1년 하고도 하루를 돌아다닌 끝에 이승에서 죽지 않는 유일한 사람인 우트나피시팀(Utnapishtim)을 만나 영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즉 '6일 낮과 7일 밤을 깨어 있을 수 있다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실패하게 되고 간청 끝에 또 한 번의 기회를 더 얻게 된다. '바닷속 밑바닥에 있는 마법의 풀을 찾아 먹으면 영생하게 된다'는 것이 또 다른 해답이었다. 길가메시는 이번에는 성공하게 된다.
"집에 도착해서 이 풀을 먹어야겠다. 이제 나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거야."
길가메시는 이렇게 생각하고 집을 향한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되는데, 어느 날 밤, 길가메시가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뱀 한 마리가 향기 좋은 이 풀을 발견하고는 덥석 먹어 버리게 된다. 길가메시는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그때부터 뱀은 허물을 벗게 되고 다시 젊어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생에 대한 인간의 소망은 아주 오랜 세월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단지 소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이라는 전설 속의 약을 찾기 위해 다섯 무리의 탐사단을 만들어 중국 각지의 유명한 산으로 보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 진시황은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했던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지하도시(둘레가 6킬로미터, 높이가 40미터)를 자신의 무덤으로 건설하였고, 신하들에게 매일 그곳에 물과 음식을 갖다 바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생명만은 인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며칠 전 한 분을 만나 우연히 그분의 가정사를 듣게 되었다. 2남 1녀의 가정에서 자랐는데 어느 정도 풍족한 가정이었던 것 같았다. 대부분의 옛날 어르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은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는데도 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자랐다고 한다. 친정부모님에게는 두 아들이 최고였지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접을 많이 받은 오빠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고, 둘째 아들은 혼자 살아계신 엄마에게 전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친정엄마가 99세 때, 그동안 엄마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회개하는 심정으로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본인의 집으로 모셔왔다고 한다. 즉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효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년이면 104세가 되시는 친정엄마는 점점 더 건강해지시고, 67세인 본인은 온몸의 관절이 다 고장이 났으며, 설상가상으로 며칠 전 건강검진에서 집안 내력인 폐암 발생률이 현재 90%에 달하여 빨리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두 다리를 다 고관절 수술을 받으셔서 꼼짝을 못 하시는 엄마 때문에, 자신과 남편이 친정엄마 옆에 항상 붙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이 104세 할머니의 장수는 본인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주는 삶일까? 한두해 모시면 끝이 날 거라고 생각한 이 분의 생각은 현대 의술의 발달을 무시한 단순하고도 어리석은 생각이었을까?
코로나 사태 이전, 일요일마다 노인 요양병원을 방문하여 노인들을 섬긴 경험이 있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항상 문 앞에서 오지도 않는 자녀를 매일 기다리고 계시는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응, 어서 와."
"오늘도 자제분을 기다리고 계시네요?"
"으응. 오늘 와야 하는데."
나는 이렇게도 자녀들을 기다리는 할머니를 보러 오지 않는 그 자녀들이 야속하기도 했고, 또 자녀들의 끈을 놓지 못하는 그 할머니가 안타깝기도 했다. 뵌 지 1년이 지나자 그 할머니는 약간 치매 기운이 있으셔서 이제는 보따리를 들고 문 앞에서 자녀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요양보호사의 말에 의하면 날마다 집에 가야 한다면서 보따리를 싸시고 푸시고를 되풀이하신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이와 같은 세월을 얼마나 더 보내셔야만 할까?
요양병원의 한 할머니는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고 온 자녀들에 의해 생명이 연장되셨다. 언제나처럼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 병실에 들린 나는 목을 뚫고 콧속으로 연결된 콧줄을 한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이제 할머니의 모든 영양섭취는 콧줄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첫날은 나를 알아보시고 몇 마디 말씀을 하셨지만, 날이 지날수록 할머니는 눈을 감고 주무시는 시간이 많아지셨다. 거의 몇 년간을 그렇게 사셨다. 요양보호사님들의 말을 빌리자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인생'이라고 한다. 과연 이러한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오래 사는 것이 진정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까?
2020년이 저물어가는 이 즈음, 나는 아들만 둘 가진 그 선생님의 버켓 리스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초등학생들인 그 선생님의 아들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사회에 어떤 변화가 도래되어 있을까? 발전된 의학의 혜택으로 사람들은 병들지 않고, 또 남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자로 장수할 수 있을까?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말인데, 삶의 먹구름을 걷어낼 강한 햇살을 사람들은 간직하고 있을까?
인생을 위협하는 세 가지를 '욥기'에서 볼 수가 있다. 첫째가 돈 문제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낙심한다. 그러나 회복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두 번째는 자녀 문제이다. 기대한 자녀가 기대 밖으로 나갈 때 우리는 커다란 돌덩어리가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무엇인가에서 다른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세 번째가 건강 문제이다. 이제 내 몸뚱이 하나 외에는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늘 붙어 다니는 육신의 고통과 오늘, 내일 하는 시한부 인생에서 사람들은 절망하게 된다. 삶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지든지 아님 포기하는 마음이 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누구도 인생의 이러한 문제들을 비껴나갈 왕도는 없다. 그러나 하루하루라는, 혹은 한 달, 두 달, 혹은 일 년, 이 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개념에 나는 늘 감사하게 된다. 우리의 인생을 헤집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할지라도 2021년이라는 한 해는, 혹은 1월, 혹은 1,2,3일이라는 날마다 변화되는 이 숫자는 우리의 마음에 또 다른 태양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과 다른 내일, 올해와는 다른 내년을 꿈꾸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마법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하루라는 생명을 연장받은 오늘, 100세까지의 장수를 꿈꾸기보다 오늘 하루를 기쁘고 즐겁게, 보람 있게 산다면, 나머지의 인생도 아름다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
"잘 듣게나. 그저 순간 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네. ~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가지지 않은 것, 할 수 없는 것에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했거든.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성취한 것, 예술적 취향, 유머감각, 지식 습득, 인격이 성숙하는 과정, 감사함의 표현들, 타인을 돕는 만족감, 친구가 주는 기쁨, 가족의 편안함, 사랑의 즐거움 등에 달려 있지.(출처-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 필레머)"
우리의 생명의 길이, 즉 길든지 짧든지 그 죽음의 때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그가 부르실 때에 후회 없이 나아가도록, 나는 오늘 주어진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내기를 꿈꾼다. 12월 마지막 일요일, 오늘 하루가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다가온다. 단지 이 날, 이 순간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 희귀한, 오직 하나뿐인 2020년 12월 28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