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원치 않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다.
작은 아이가 그렇게 떠나기 싫어하는 고등학교에 자퇴서를 내러 갔다. 담임선생님과의 대면은 부자연스러웠다. 1학기가 끝날 때쯤 되니 이 좋다는 학교에도 생각지도 못한 요인들 때문에 자퇴하겠다는 학생들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학교 입장에서는 그만 다니겠다는 학부모가 예쁠 리 없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하는 것 같은데, 왜 자퇴하겠다고 하시나요?"
담임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가 딱딱했다. 어쩌면 담임선생님이 관리자로부터 학생들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는 질책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도저히 경제적으로 감당이 안 되어서 학교를 그만두려고 하는데 어떻게 학부모의 심정은 헤아리지 못하고 그런 퉁명한 질문을 하시는지, 지금 한 마디의 위로가 필요한 상황을 왜 모르시느냐는 야속함이, 그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억울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아, 네~ 자퇴해야 할 것 같아요."
"이유가 무엇이죠?"
차마 돈 때문이라는 말은 하지 못 하고 가만히 있으니, 담임선생님은 자퇴란에 '학교 부적응'이라고 적는다.
나는 작은 아이에게 '학교 부적응자'라는 단어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작은 아이만큼 학교를 좋아하고, 학교를 자랑스러워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고 일반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새로운 영역의 공부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담임선생님이 조금이라도 아신다면 '학교 슈퍼 적응'이라고 적으실 텐데라는 아쉬움에 가는 한숨을 몰아 쉬었다. 학교 부적응자의 딱지를 달게 된 것도 모른 채, 이제 다시는 이 학교에 올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눈물 흘리는 작은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학교 교문을 나섰다. 뒤돌아보니, 저녁 식사 시간의 벨소리에 맞추어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물결이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출렁이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네브래스카 주의 웹스터 카운티(Webster County)에 있는 '레드 클라우드(Red cloud)'의 한 가정으로 가게 되었다. 네브래스카, 이 단어는 뉴욕, 로스앤젤레스와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이 아니다. 미국의 중부 지역으로, 농축산이 중심 산업인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노란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 네브래스카 주에서 '레드 클라우드'란 도시는 주민 1500명 정도가 모여사는 곳으로 대부분의 주민이 백인이다. 작은 아이는 그곳에서 동양인 한 가정, 흑인 한 가정을 본 것이 유일한 유색인종이었다고 한다. 홈스테이 가정에는 작은 아이보다 한 살 아래인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작은 아이의 말에 의하면 미국은 1차 산업이 강하므로, 네브래스카는 부자 주에 속한다고 한다. 집집마다 고기용 냉장고가 따로 있을 정도로 육식을 즐겨서, 주의 재정상태는 건전하나 네브래스카 주민들의 건강상태는 건전하지 못하다고 한다. 작은 아이가 간 홈스테이 가정의 아줌마와 딸도 아주 뚱뚱했다. 그들이 홈스테이를 지원한 이유는 홈스쿨을 하는 딸에게 친구 한 명을 붙이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한다. 작은 아이는 딸과 한 방을 사용했다.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작은 아이는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것이 토요일마다의 전화에서 느껴졌다.
나는 두 딸아이를 방목하다시피 키웠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다 하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양육방식이다. 그래서 두 딸아이는 자유롭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랐다. 그런데 홈스테이 가정의 부모님은 정말 나와 반대의 양육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분들은 거의 10분 단위의 시간표를 짜서 아이들이 시간표대로 움직이기를 원했다. 아마 본인의 딸이 홈스쿨을 하기 때문에 그런 시간 조정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분단위의 시간표를 짜고 그 시간표대로 움직이라고 하니 죽을 맛이었다. 그 가정이 얼마나 계획적인 가정인지, 1년 스케줄을 그해 1월 달에 짜 놓고, 정말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거의 그대로 움직이는 가정이었다. 무계획 주의자에서 철저한 계획 주의자로의 변천은 작은 아이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온 것 같았다.
작은 아이는 막내이다 보니 투정도 부리고 짜증도 내는 응석받이였다. 그런데 그 집에서는 누구도 작은 아이의 응석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일은 책임지고 해내야 하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니, 무거운 짐을 잔뜩 진 망아지 같은 신세가 되었다. 작은 아이는 그 집에서 화장실 청소, 세탁실 청소의 책임을 감당했다.
이 가정은 가족을 중요시 여기는 가정이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에는 모두 다 거실에 앉아 함께 시간 보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혼자의 시간을 가지고 싶고, 또 공부도 하고 싶은데, 늘 거실로 소환을 당하니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또 집에서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컸던 아이라, 남의 집에 살게 되니 뭘 하나 먹는 것 , 뭘 하나 하는 것도 눈치가 보여 매 순간 긴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홈스테이 집의 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감정의 힘듦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아이는 '레드 클라우드'의 공립 고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이 20명 정도 되는 아담한 학교로 선생님과 학생들은 다 친절했다. 작은 아이는 한국에서 공부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지 학교 생활에서는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큰 아이의 활발함에 약간 눌러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작은 아이는 미국 학교 생활에서 오히려 자신감이 높아졌고 자존감까지도 향상된 것 같았다. 홈스테이 생활의 어려움을 학교 생활의 즐거움으로 상쇄시키며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었다.
"엄마, 우리 반 꼴찌 하는 친구도 책을 손에서 놓지를 않아. 차 탈 때에도 항상 책을 손에 들고 다녀."
나는 작은 아이의 이 말을 들으며, 이것이 미국 교육의 힘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미국은 대학의 비싼 등록금 때문에 진학률이 높지 않다.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거의 80%를 육박하는데 미국은 그 반인 40%대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파티를 좀 거창하게 한다. 어떤 학생에게는 이 졸업이 인생의 마지막 졸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우수성은 고등학교 때 까지라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또는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매년 한국 고등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는데, 왜 이들이 노벨상까지 연결되지 않는지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꾸준한 독서교육은 학업 성적을 뛰어넘어 창의적 사고력의 밑바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는 한다. 한국 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모든 힘을 고등학교에서 다 쏟아낸다. 막상 대학에 진학하면 그들은 탈진 상태가 되어서 이제 좀 쉬고 싶고 편안해지고 싶다가, 곧 또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새로운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고등학교 교육까지는 한국에 비해 느슨하다. 작은 아이가 다닌 학교는 3개월 단위로 학기가 움직이는데, 매 학기마다 운동 하나는 필수이고 또 악기 하나는 꼭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10개월 뒤 작은 아이가 공립고등학교를 떠나 사립 기독교 기숙사 학교로 옮겼을 때, 그 학교 교장선생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되며 스트레스도 받게 되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3가지 열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운동, 악기,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란다."
이런 보편적 교육철학 때문인지 미국의 거의 모든 학교는 운동과 악기교육을 시킨다. 작은 아이도 그곳에 가서 달리기, 배구, 골프와 클라리넷 악기를 배우게 되었다.
힘든 한국 교육에 잘 적응한 학생은 어떤 나라의 교육에도 잘 적응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우스개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중학교를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대학교를 미국에서, 대학원을 독일에서 한 사람이다.' 아마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시험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한국 학생들의 우수성이 한 지점에서 멈춰 서지 않기를 오늘도 바라는 마음이다.
작은 아이가 방학 동안 잠시 한국을 나오게 되었는데, 나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인천공항에서 작은 아이를 기다렸다. 분명 전광판에는 비행기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이가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어떤 한 학생이 나오는데 우리 아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너무 뚱뚱한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우리 옆으로 오더니 "엄마, 아빠" 한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이 찐 작은 아이. 스트레스에다가 그 집의 식단이 갸늘거리던 코스모스 꽃을 튼튼한 나무 둥치로 바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