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생각지도 못 한 전공을 정하다.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규모가 큰 학교는 아니었지만, 1등으로 졸업하면서 답사를 맡았다고 한다.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엄마, 나 디자인을 전공하면 안 되나요? 스케치하고 디자인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밥 굶는 소리 하지 마라. 너 디자인하라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 아니다."
"엄마는 그럼 내가 뭘 전공하기를 원하세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직업이 좋다고 생각해. 그런 전공을 좀 찾아보면 어떨까?"
전화로 똑같은 대화를 몇 번이나 나누었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배부른 사람들의 욕구 실현이지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꿈속에서 헛발질을 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내 속에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예술가가 있다. 일제시대에 누구나 알아주는 예술대학을 졸업하셨다. 재능도 있으시고 꿈과 포부도 있으셨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그의 짐이 그를 억눌러 현실과 타협한 인생을 살게 되셨다. 그분의 얼굴의 주름살이 늘어갈수록, 움푹 파인 눈 속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향한 열망 때문에 가끔 놀랄 만큼 이글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한국 미술계의 거장들이 함께 공부한 자신의 대학 동기들이라고 한편으로는 자랑하시면서, 한편으로는 또한 자신도 그런 부류에 속할 사람이었다는 것을 넌지시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러나 그는 일과 후에는 거의 술에 취해 계셨다. 그럴 경우에만 그의 눈은 평온해 보였다. 그는 내가 첫 발령을 받고 간 학교의 미술 선생님이시다. 작은 시골학교여서 학교의 모든 환경정리는 그분이 도맡아 하셔야 했다. 1m 80cm가 되시는 큰 키에 학교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시는 그분의 모습이, 수업하는 동안의 교실 유리창문을 통해 볼 수가 있었다. 학교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분의 예술적 탁월성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날 그 날에 필요한 일들, 즉 게시판 정리, 학교 운동장 조경, 학생들에게 적절한 미술수업이라는 평균적 능력과 성실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 당시 나의 어린 눈에 비친 그분은 날개 꺾인 한 마리의 흑조였다. 세상 풍파에 시달릴대로 시달려 이제 날 수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채, 그러나 가끔은 날아오르는 본능이 깨어나 푸더덕거리며 괴로워하는 초라한 새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술을 한다는 행위는 먹고살 기본이 되어있지 않으면, 본인의 영혼을 힘들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학교의 미술 선생님이 그림 잘 그린다고 나를 칭찬 많이 하셨어."
"원래 미국 사람들은 칭찬을 많이 한단다."
" 엄마, 아니야. 정말 잘한다고 하셨어. 나 미술 전공하면 안 돼?"
"갑자기 공부만 하던 애가 웬 미술이야? 꿈과 현실은 다르단다."
작은 아이와 나의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이 아이가 중학생일 때, 내가 보기에 쓸데없는 일들을 해서 나에게 야단맞은 일들이 꽤 있었다. 멀쩡한 천으로 된 필통 위에 병뚜껑을 다닥다닥 붙여 놓는다던지, 지우개를 이상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거나, 평범한 볼펜의 겉모습을 해괴한 모양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이런 행위들은 나에게는 시간낭비, 노력 낭비, 물자 낭비였다. 작은 아이의 그런 엉뚱한 행동들이 미술시간의 그림과 만들기에도 작동을 한 것 같았다. 한국사람의 눈에는 잘 그린 그림이 훌륭한 그림인데, 미국 사람의 눈에는 신기하고 하나밖에 없는 그림이 훌륭한 그림이라는 사고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아이는 방학 때 한국 와서 계속 디자인을 전공하겠다고 졸라댄다. 아는 사람에게 이러한 고민을 말했다. 마침 그분의 두 아이가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으며, 친척 중에 유명한 화가가 있는 예술적 재능이 있는 집안이었다.
"제가 아는 유명한 학원 선생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에게 이 아이가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 한 번 검사해봄 어떨까요? 제가 부탁드리면 그냥 봐 주실 겁니다."
아이와 함께 강남의 미술학원을 갔다. 아이도 나도 미술학원의 문턱을 넘어 본 지가 정말 오래간 만이었다. 아주 옛날, 내가 대학교에 시간강사로 나갈 때, 작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미술학원에 맡긴 일이 있다. 작은 아이는 미술학원의 문지방을 넘는 순간부터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계속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고, 내가 수업을 마치고 데리러 올 때쯤 되어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멀뚱멀뚱 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곳이 미술학원이었다. 그 후, 작은 아이는 미술학원을 싫어했고 한 번도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 저기 탁자 위에 있는 명태를 한 번 그려 보세요."
학원 선생님이 작은 아이에게 스케치북과 연필을 주셨다.
일순간 작은 아이는 당황한 듯했으나 묵묵히 스케치를 했다.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작은 아이의 스케치를 보고 난 후의 그분의 조언이다. 결국 공은 다시 우리에게로 던져졌다. 미술을 전공하는 것은 당신들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하나의 글이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작은 아이의 생각에는 '메시지를 담은 하나의 디자인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사는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나 물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자신이라면 저 문구를 이렇게 표현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 작은 아이의 소망이었다.
미국에서의 대학 진학은 내신과 SAT, 외국인의 경우에는 TOEFL을 요구한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음) 그리고 미술 계통의 대학들은 포트폴리오, 즉 자신이 평소에 그린 작품들을 제출해야 한다. 작은 아이는 방학 동안 한국에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준비하는지를 몰라, 근처의 미술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그 학원비를 첫 아이가 담당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아놓은 돈을 작은 아이의 학원비로 사용하라고 첫 아이가 내민 것이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 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보다 훨씬 숭고하다.(The beauty that exists in the heart that yearns for something is much more sublime than the beauty that exists in the eyes of the beho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