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아이들은 종종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다. 그 야단의 강도가 예전에 비해 아주 약해지고 인격적으로 변화되었지만,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인격이 반듯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부득불 잘못하는 경우를 보고 야단을 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경우, 아이들을 볼 때 가장 화나는 부분은, 아이들이 누군가를 험담하고 따돌리는 경우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는 경우, 그리고 거짓말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교육하는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많이 당황스럽다. 명명백백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도 자기 진영이 아니면 엄청난 험담과 상대편 진영을 따돌리는 집단따돌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만 해대는 변명과 말들, 그리고 정직을 이기는 거짓말들!
"당신이 아무리 잘못해도 상관없소! 그냥 우리가 좀 잘 먹고 잘 살게만 해주면 돼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소위 일부 정치인들이 말하는 소, 개, 돼지로, 배불리 먹이는 가축에 불과한 존재로 자신을 생각하는지 심히 의심이 들 정도이다.
과거 연변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너무 순수해요. 옛날 우리나라의 6,70년대를 보는 것 같아요. 그러나 곧 이들도 변화될 거예요. 물질문명이 이곳을 휩쓸게 되면 이 사람들도 그들의 순수함, 정직함을 잃어버리고, 간사하고 완악하며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로 바뀔 것 같아요. 그것이 참 안타까워요!"
물질문명이 주는 수많은 이익도 물론 있었지만, 돈이 최고의 가치수단이 된 지금의 해악은 준 것보다 빼앗긴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내가 지난번에 있었던 고등학교 아이들의 정신세계였다.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 잘 사는 집의 아이들인 그들의 인생 최고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돈이 없다는 것은 지질한 인생이고 잘못된 인생이었다.
또한 아는 한 사람은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흑수저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밑바닥에서 하나, 하나씩 인생을 세워가는 사람인데, 얼마 전 이사를 간다고 한다.
"왜 갑자기 이사를 가세요?"
"큰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요.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서요!"
임대아파트에 사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에는 전혀 아랑곳없고, 오직 겉모습만으로 사람들을 마구 저울질한다.
그러니 거짓말한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되지!"라고 혼내던 나는 "거짓말은 중요하지 않고 네가 거짓말을 하든 안 하든, 나에게는 상관이 없어. 그저 나에게 득을 보여주기만 하면 돼!"라는 인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학교는 그저 돈 잘 버는 기술,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권모술수, 거짓말도 너무나 태연하게 하는 기술,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폭탄 따돌림하는 방법을 오히려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좀 물질의 번영을 못 누려도 정직하고 서로를 돕고 격려하는 아름다운 사회는 오직 교과서에만 존재하고, 교사도 그냥 그런 내용이 교과서에 나와 있기 때문에 설득력 없이 진도만 때우는 그런 교사가 되어야만 하는 것 일가? 현실 세계와 너무나 다른 가치관을 학생들이 실천하도록 하는 이 교육은 헛된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늘 이 아침에 드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읽은 탓인지, 나의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박국 3:17)"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스바냐 3:13)"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예레비야 22:3)"
이 말씀들이 절실히 와닿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