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What the hell is wrong with me?
“ 저~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혹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저 지금 수업 들어야 해요~”
“그럼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수업 후에 이야기 좀 합시다.”
“뭐, 그러죠.”
처음 보는 학생이지만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고, 또 적극적이지만 깍듯이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업 후 나눈 그의 대화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는 우리 학교의 공과대학생이다.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워서 지금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 시대만 해도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사람이 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지역의 대학교 연합회 주최로 비전공 학생들의 악기 연주 경연대회가 있는데 첼로를 담당할 학생이 1명 더 필요하다. 팀에 합류해서 같이 연습하고, 함께 경연대회에 참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듣는 순간 지금 이 학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래서 말했다. “저 지금 첼로 배운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또 그런 경연대회 참가할 실력도 안 되지만, 참가할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그날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그다음 날 또 다른 한 회원을 데리고 와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지금 남은 1개월 동안 연습을 같이하자. 그리고 어려운 곡이 아니다. 도와주겠다. 정 안 되면 무대 위에서 활 켜는 시늉만 내도 된다. 내가 들어와야 참가 인원수가 확보된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 당시 우리 학교에는 예술단과 대학이 아직 설립되어 있지 않았고, 악기를 배우는 사람도 흔치 않은 시대였다. 일주일을 매일 찾아와서 졸라대니 나중에는 안타깝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하도 간절히 애원하니 ‘그래, 이들이 이렇게 경연대회에 나가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발전하였다.
그래서 한 달을 매일 같이 연습했다. 어찌 보면 그 기간이 나에게는 실력이 향상된 시간이기도 했지만 한 번도 무대에 서 본 일이 없는 나에게는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항상 남의 부탁에 “NO”라고 매몰차게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이렇게 코가 꿰여서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생각보다 경연대회에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다. 모두 자신만만한 표정들이다. 난 정말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첼로를 배운 지 4개월짜리가 무슨 경연대회라니. 아무리 죽자고 연습했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회원들에게(나까지 합쳐 모두 6명) ‘나 빼고 하면 안 되냐’고 하니 난리 난리다. 아예 참가가 안 되고, 또 다른 첼로 회원이 있으니 그냥 활 켜는 흉내만 내어도 된다고 한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오늘 학교 수업까지 빠지고 온 대회이다. 어쨌든 온 목적을 이루긴 이루어야 한다. 무대 위에 올라가는 순간, '혹 나 때문에 이들의 연주가 엉망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또 앞서 연주한 학생들의 연주 실력에 주눅이 들어, 눈앞의 악보가 정말로 하나도 안 보였다. 그래서 정말 활 켜는 흉내만 냈다. 멀리서는 몰라도 무대 뒤에서 행사 진행을 돕던 학생들은 바로 뒤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찔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물론 상을 타지 못했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회원들은 다 만족한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단지 참가에 의의를 두었었나?
몇 년 전 교육 복지센터에서 붓글씨 강좌를 들었다. 강좌를 신청한 선생님은 모두 11명. 매주 화요일 저녁에 모여 글씨를 썼다. 강사 선생님은 실력이 쟁쟁하신 분인데, 모든 선생님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하기를 원하셨다. 일단 3종류의 붓, 먹, 벼루, 두 종류의 화선지, 서예 교본, 압지 서진 등. 한 학기인 6개월 후, 작품전시회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전시회 시점이 다가오자 모두 낙관 만들기를 원하시는 강사 선생님. 그런데 낙관의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찬성 5, 반대 5. 내가 결정할 차례였다. 나는 'NO'의 마음이었는데, 5:6으로 그분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6:5.
아직도 사용하지 않은 많은 화선지와 딱 한 번 사용한 낙관이 내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이런 일들이 너무 많다. 마트에 가서 카드 영업하는 분에게 잡혀 쓸데없는 카드를 만들지 않나, 길거리에서 아파트 분양 홍보하는 분에게 잡혀 시간을 낭비하고, 보험 하시는 분이 가입하라고 해서 한 보험을 딸들에게 말하니 당장 해지하라고 야단법석을 해서, 1년 2개월 만에 해지함으로 손해금액이 거의 사백만 원에 이르고 (그런데 딸들의 말은 “엄마 그 보험 계속 넣었으면 엄마는 몇 천만 원 손해 났을 거야”라고 한다), 아는 분이 사달라고 하면 아무런 필요가 없어도 사는 나. 도대체 나는 왜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