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기들

by 김해경

내 나이 사십 대 초반의 일이다. 아는 한 사람이 초등학교 동창회를 간다고 마음 설레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한창 일할 사십 대에 옛날 사람들과 과거 속에 빠져든다고? 잘못된 것 아니야? 현실과 미래를 바라봐야지 과거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니,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야? 어쩌면 현실에 문제가 있어서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구로 초등학교 동창회를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아님 초등학교 시절에 무슨 영광이 있었나?'


그런 마인드로 나는 바쁜 세월을 살아왔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추억 속에 머뭇거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우연한 기회로 대학교 동기들과 연결이 되었다. 나는 한 번도 동기들 모임에 나간 적도 없고, 또 앞으로도 서로 만날 일이 별로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너는 너고 나는 나.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고향을 떠나 이곳 타향에 와 세상적으로 번듯하게 성공한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기 때문에

구태여 동기들을 만나 나의 험난하고 거친 세월의 결들을 다시 더듬으며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간혹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남자 대학 동기들은 다 그 지역에서 교육장, 장학사, 교장, 교수 등 교육계에서 나름대로 훌륭한 리더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 같았고, 여자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명예퇴직하여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대학 동기 중 한 사람은 우리가 졸업한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다. 세상적인 의미에서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젊음을 보낸 그 공간을 계속 향유할 수 있다는 것, 방황과 불확실의 시기인 그러나 의욕과 열정만 가득했던, 한쪽으로 기울어진 축에 매달려 흔들대던 시기를 보낸 그 공간에서, 이제 안정과 명예의 평화로운 지면 위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기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 동기는 그곳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능력까지도 갖추고 있다.


다른 한 동기는 교사를 그만두고 전국적인 신문사에서 교육지면을 담당했다. 인터넷으로 공부하는 온라인 매체가 발달하기 전, 신문에 끼워져 오는 학습지를 그 동기가 담당한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그 동기는 실업자가 된 것 같았다.(정확한 경위를 나도 잘 알지 못한다.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다른 동기들이 한 이야기를 통해 대강 짐작할 뿐이다.) 그 후 그는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식물채집을 했다. 식물의 이름과 서식지, 식물의 특성까지 소상히 연구하여 "우리 나무 비교 도감"이라는 책까지 출간하였다. 생물과도 아닌 영어과 출신으로 그런 책을 출간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참으로 '그가 대단한 동기이구나'라고 생각되었다. 그가 보내온(한 대학 동기가 그의 책을 사서 다른 동기들에게 뿌려주었다) 책을 들여다보며 전국을 헤매며 다녔을 그의 땀이 느껴졌다. 함께 졸업한 다른 남자 동기들은 다 교직에서 어엿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정작 본인은 실업자가 되어 당장 돈도 되지 않는 식물과 꽃을 찾아 전국을 헤매며 다닐 때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고, 이런 결과를 이룩한 것에 대해 뭉클한 감동이 일기도 했다.


그 당시 영어과에 입학한 동기들의 면면을 보면 참으로 훌륭한 동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소도시에서 모여든 동기들인데, 그 소도시에서 다들 공부로 1등을 한 사람들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서울대와 사립 상류대를 가지 못 했지만, 나름대로 공부에는 자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한 여자 동기는 명예퇴직 후 남편과 함께 코로나 이전 6개월간을 시베리아에서부터 시작해서 북유럽까지 본인의 차로 세계를 여행했다. 그들이 매일 전해오는 여행일기를 나는 꿀같이 달게 읽었다. 그리고 그들 부부에게 정말 감사했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나는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더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여자 동기는 유명한 화가가 되어 있었다. 명예퇴직 후 그림에 몰두하여, 매년 전시회를 열 정도의 역량을 갖춘 떠오르는 별과 같은 화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영어회화 전문강사'라는 학교에서 가장 낮은 직급에서, 비정규직의 울타리에 갇혀, 정규직의 높은 아성을 올려다보며 부러워하는 초라한 사람이다. (전일제 근무이고, 일은 정규직 영어교사 못지않게 많은 일을 하는데 왜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강사라고 하는지 나는 지금도 의문이다. 코로나 시대 이전 입학식 때 학생들과 학부모 앞에서 교사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교감선생님이 나를 소개할 때 '김 해경 영어회화 전문강사입니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내 직책이니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과 학부모 앞에서 나를 좀 배려해주시면 무엇이 덧나는지 그렇게 소개할 때마다 나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곤 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중에 나에게 와서 "선생님, 왜 선생님을 교감선생님이 이상하게 소개를 하세요?"라고 물을 때마다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가 되고 이런 행사들이 없어져서 나는 솔직히 너무 좋았다.)


나에 비해 모두가 훌륭한 나의 대학 동기들! 그들은 사회적 직임을 잘 감당한 뒤, 몇몇은 교직에서 은퇴하였고, 몇몇은 아직도 현직에 있다. 동기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원을 잘 가꿔 철마다 꽃이 피고 새가 울어 다른 이들을 즐겁게 하는 그런 동기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초등, 중고등 동기회 어느 것 하나 없이 오직 나에게 하나뿐인 대학 동기회! 물론 그들도 긴 세월을 사는 동안 비 맞지 않고 눈보라 속을 헤매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마는 그 모든 역경을 넉넉히 이긴 그들이리라 생각한다.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의 잣대가 아니라 가족처럼 인생의 한순간을 함께 한 그들이기에 나는 그들이 사랑스럽다.


그런데 요즈음 동기 카톡방에 약간의 화산 폭발음과 지진의 진동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각각의 삶을 살다가 이제 다시 함께 모인 대학 동기들. 꿈 많던 젊은 시절 한 공간에서 함께 공부했던 그 소중한 만남 때문에, 이제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는 대학 동기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세월 속에서, 어려울 때 어깨동무해 줄 수 있는 대학 동기들. 그런 동기들의 모습을 나는 오늘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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