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by 김해경

주 4회씩 필리핀 선생님인 세실과 하는 영어회화 시간에 "만약 복권이 당첨된다면?(If you win the lottery ticket?)이라고 나에게 묻는다. 나의 대답은 "I have never bought the lottery ticket.(사 본 적이 없어요.)이다.


고단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희망, 소망이라는 줄, 즉 그것이 비록 썩은 줄이라도 붙잡기를 원한다.

"5,000원짜리 복권 한 장이 나를 일주일 내내 행복하게 해 줍니다. 나는 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꾸며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상상하며 일주일을 보냅니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SNS에 나와 있는 어느 뉴스를 보니 복권 당첨이 조작되어서 큰 혼란과 분노, 허탈감이 사람들이 가졌던 희망의 자리에서 대신 휘몰아치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한 분이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학교에서 받는 월급의 3/4을 줄 테니 집에서 그냥 남편 돌보면서 살림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마침 남편이 '관상동맥 우회술'이라는 큰 수술을 받은 직후여서, 이는 나를 위한 제안이 아니라 남편을 걱정해서 하는 제안이다. 그분도 큰돈을 가진 분은 아니나,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분이어서, 며칠을 고민한 끝에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왜 기분이 나빴을까?(그분은 너무 솔직하셔서 말을 꾸미지 못하신다. '여러 가지 일로 너무 힘들 것 같으니 학교를 그만두고 좀 쉬는 것이 어때?'라고 나를 위하는 말로 제안했으면 어땠을까? 마치 내가 남편의 부속물인 것 같이 들린 것은 나의 잘못된 피해의식일까?)


그분은 내가 고맙다로 할 줄 알았는데 나의 시무룩한 표정과 반응에 조금 실망하시는 것 같았다.

그분의 생각으로는 첫째, 내가 학교에서 정교사도 아니고, 학교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 하나 그만둔다고 학교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둘째, 남편 잘 돌보고 두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이 인생에서 더 중요하다. 셋째, 학교일로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이런 반발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첫째,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학생들에게 나름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올해 맡은 1학년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둘째, 시간에 쫓기더라도 남편 밥은 잘해주고 있다.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남편 밥 잘해주려고 한식조리 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절대 밥 굶기지 않는다. 셋째, 돈이 전부가 아니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이런 만족감이 있을 때, 나는 남편에게도 더 잘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분도 같이 기도했다.


일주일 후 결국 나는 나의 의견을 그분에게 말했고, 그분은 그 돈을 기도하다가 생각난 다른 분에게 드리기로 작정하셨다. 아마 나보다 그 다른 분에게 그 돈이 더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받을 때, 어떤 의미에서는 복권 당첨과 같은 제안을 받을 때, 나는 돈에 별로 감각이 없는 것 같다. 시집간 두 딸은 전화할 때 간혹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아빠. 노후 준비하셔야 해요."라고. 어떤 의미에서는 부모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신다(시편 48:14)"라고 대답한다.


돈이면 다 될 것같이 움직이고 있는 세상을 바라본다. '돈이면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게 되고, 돈이면 나는 건강해지고, 돈이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돈이면 나는 행복할 수 있다'라고 세상은 우리를 세뇌시키며 돈을 숭상하게 만든다. 물론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백화점이나 마트의 잘 진열된 물건들은 우리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봐, 너 돈이 있으면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어느 날 집 가까이 있는 북적대는 마트를 갔는데,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되는 남자아이가 아주 슬픈 표정으로 아빠와 함께 텅 빈 카트를 끌고 가고 있었다. 그 아이의 표정에서 나는 이런 마음을 읽었다.

"아빠, 이곳에는 이렇게도 멋진 물건들이 많은데, 우린 돈이 없어요. 사고 싶은 물건을 못 사잖아요."

나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에게 가서 "너 뭐가 갖고 싶니?"라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사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그 아이에게 외쳤다.

"미안해.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어른들이 만들어 주지 못해서.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돈보다 이 세상에는 귀한 것이 더 많이 있단다."


지금 나의 중학교 1학년들도 최고의 가치가 돈인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돈이 그 사람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아이들은 아직 다른 저울추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돈보다 나에게는 무엇이 더 중요할까?


그 분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리고 마음의 평강과 기쁨, 영육 간의 강건함(육체는 건강해도 영혼이 병든 사람이 너무 많다), 자녀와의 사랑의 관계, 다른 사람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과 섬김.


무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는 잠시 이 세상에 살다가 갈, 티끌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또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이다.


이 세상에 허락된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제 육신적으로 살 날이 산 날보다 더 조금 남은 인생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니라(잠언 25:11)"와 같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위로할 자 위로하고, 격려할 자 격려하고, 책망할 자 책망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나로 인해 누군가가 생명(삶의 활기, 기쁨, 소망)을 얻을 수 있기를.


그냥 왔다가 내 배만 불리고, 덧붙인다면 기껏해야 자녀의 배까지 불리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서든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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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노후준비보다 이제 사후준비를 더 잘하는 자가 되기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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