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방문객

by 김해경

국토교통부의 2020년 주거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아파트 거주비율은 51.1%이고, 경기도에서는 58%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나는 경기도의 42%에 속한다.


요즘 아파트 방문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간혹 친지의 집을 방문하면서 이를 체험하게 된다. 차를 몰고 갈 경우 가장 먼저 정문에서 제재를 당한다.

"저 몇 동 몇 호를 방문하려고 왔는데요."

그럼 경비아저씨는 인터폰으로 호수를 확인하거나, 아니면 어떤 아파트는 종이로 된 방문증을 내밀면서 본인의 차량번호와 전화번호, 방문 목적을 작성하라고 명한다. 나의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종이 위에 기록된다.


두 번째 관문은 현관 입구에서이다. 몇 동 몇 호를 누르고 그쪽에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방문받는 쪽이 원하지 않으면 "열려라 참깨"가 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분과의 대화이다.


"오늘 김치를 담아서 아들 집에 갖다 주러 갔더니만 문을 열어 주지 않아서 다시 들고 왔어요."

"아이고, 고생하셨네요. 아니 그런데 왜 미리 전화하지 않고 가셨어요?"

"며늘아기가 반찬 가지고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경비아저씨에게라도 맡겨 놓고 오시지 않고, 왜 다시 들고 오셨어요?"

"사람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간에는 보통 집에 있는 시간인데. 문이 열리지 않으니 심한 거절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찌나 낙심이 되던지 경비실에 맡길 마음이 들지 않습디다."

"에고~ 이제 반찬 해서 가져가지 마세요. 요즘 젊은 사람들, 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어요."


나도 간혹 경비아저씨에게 "몇 동 몇 호 집을 방문했는데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이 물건을 문 앞에 놔두고 가고 싶어요. 문 좀 열어 줄 수 있으세요?"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아저씨는 그 사람에게 확인 전화하고, 다시 그 사람이 경비실로 전화해야만 들여보내 줄 수 있다고 한다. 아파트의 현관문도 역시 열리기도 쉽지 않다.


집에서 간혹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난 후, 주고 싶은 사람이 생각날 때, 그리고 그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깜짝 선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예고된 만남을 원하지, 갑작스러운 방문을 원치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를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자신의 하루 일정이 예기치 않게 흐트러지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의 통과는 그 집 현관 앞에서 또다시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다.


이처럼 아파트 방문은 몇 차례의 저지선을 통과해야만 문이 열린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파트를 방문해 그곳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가 세 개의 문을 무사히 통과했음에 안도하고 감격하며, 얼굴을 대면하는 그들이 임금님처럼 귀한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만나 뵙게 되어서 황공무지로소이다'라는 심정이 되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아무 때나,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집과 비교가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옛 속담에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옛날보다는 놀랄 만큼 잘 살게 되었다고들 하지만, 아직도 가난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전보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걸인이 많이 줄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존재하며, 아직도 그들은 내가 있는 곳에 자주 방문한다는 것이다. 내가 거주하는 곳은 아파트도 아닌 단독 건물이고, 건물의 특성상 늘 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은 그분들이 방문하는 날이다. (그분들도 그분들 나름대로의 스케줄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천 원짜리 지폐나 오백 원 짜리 동전을 항상 준비해 놓는다. (요즘 대부분의 상거래가 카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금을 준비하는 일은 의외로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보통 한 사람에게 천 원이나 이천 원을 드린다. 세 사람 내지 네 사람이 연이어 방문을 한다.


오래 전의 일이다. 아시는 분이 서울에서 찾아오셨다. 그런데 마침 그 시간이 그분들이 오시는 시간이었다. 아시는 분은 아파트에 사시기 때문에 이런 방문이 본인에게는 희귀하게 여겨졌고, 또 어느 정도 생활의 여유도 있으신 분으로 그 순간 그분들에 대한 연민의 정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아시는 분은 그분들에게 각각 만원씩을 주셨다. 그분들에게는 대박이 난 날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그다음 주였다. 그분들도 공동체가 있는 모양인지 그다음 주, 우리는 평소 방문 숫자보다 배 이상의 방문객을 받아야만 했다. 아마 곳간이 후한 곳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다.


오늘 오후, 열심히 한 주간 동안 먹을 반찬을 만들고 있는데, 부엌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 할아버지가 문 앞에 서 계셨다. (오늘은 2월 5일 토요일)

"저 좀 도와주세요."

"아니 보통 금요일에 오시는데, 오늘 웬일이세요?"

"아. 네~"

"잠시 기다리세요. 돈 가지고 와서 드릴게요. 지금 반찬을 만드는 중이어서."

"아, 저 돈 말고 밥 한 그릇 주세요."

"네?"

밥 달라는 소리는 너무 오래간만에 듣는 소리여서 나도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다음은 '이 분이 왜 이러시지?' 하는 의심, 그다음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지' 하는 당혹감이 연이어 나의 의식을 훑고 지나갔다.


"아빠, 나는 아빠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알아?"

시집간 첫째 딸이 언젠가 남편에게 한 소리였다.

"언제였는데?" 남편이 웃으면서 첫째 딸을 쳐다본다.

"아빠, 내가 6살 때, 우리 점심 먹는데 거지가 왔잖아. 그때 아빠가 들어오라고 해서 아빠상에서 같이 밥 먹었잖아. 그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어."


첫째 딸은 허름한 차림새의 걸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던 아빠의 모습을 충격적이면서도, 놀랍기도 한 광경으로 각인한 것 같았다. 무서운 사람, 피하고 싶은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아빠가 어린아이의 눈에는 큰 사람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남편도 출타 중인데 어떡하지?' 망설이다가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고' 하는 생각으로

"일단 들어오세요."라고 나는 말한다.

"간단히 주심 됩니다."

"그 간단히가 어려운 거예요. 어떻게 밥을 드리는데 간단히가 되나요?"


국을 데우고 반찬과 고봉밥을 드렸더니 국에 말아서 드신다.

정말 시장하셨던지 밥을 더 달라고 하셨고, 달게 다 잡수시더니만 '고맙다'라고 인사하고 가신다.


얼마 후 남편이 돌아왔다.

"어떤 분이 밥 달라고 해서 드렸어요. 차라리 돈 드리는 편이 나은 것 같아요."

남편은 "잘했어, 잘했어요."라고 말한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 혹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위험 의식은 아예 남편의 머릿속에는 없는 것 같다)


그분을 보내고 나서, 설거지를 하며 오늘의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청소하시는 여사님이 계신다. 나는 그분을 뵐 때마다, 서로의 자라난 환경이 바뀌었다면 저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괜히 그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오늘의 이 특별한 방문객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인생 역경을 겪었을 것이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오늘, 밥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아픈 인생이다. 이 년여의 코로나 상황에서 없는 사람은 점점 더 살기가 힘들어지는 요즘, 밥을 얻어먹던 옛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 추운 겨울날, 따뜻한 잠자리와 일용할 양식이 그분들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설마 저번 만원의 효과처럼, 이분이 계속 오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울컥 올라오기도 하니, 참으로 나의 간사한 마음은 살며시 숨어있다가 언제나 고개를 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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