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바로 옆에 큰 어린이 놀이시설이 있다. 이 놀이시설은 보통 아파트 단지에 있는 얌전한 놀이시설이 아니다. 유격대 훈련을 연상시키는 놀이들, 즉 암벽 타기, 외줄 건너기, 그물 다리 기어서 오르내리기 등등으로 과격한 운동 혹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는 안성맞춤형 놀이터이다. 미끄럼틀도 한 명씩 타는 미끄럼틀이 아니라 5명 정도의 아이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탈 수 있는 널따란 넓이의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다. 밤낮으로 아이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한밤중에는 학원 공부를 마치고 오는 중고등학생들의 스트레스 해소 장소로 변모하여 학생들은 미끄럼틀을 꽝꽝 거리며 오르내린다.
이곳에는 또한 아이들이 잘 노는지를 감시할 수 있는 부모들을 위한 벤치와 흔들 그네가 설치되어 있다. 오늘 나와 남편은 그 흔들 그네에 앉아서 아이들과 그 엄마들을 살펴보았다.
아이들은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그리고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자기 아이들을 주시한다. 얼마 후 아이들은 지쳐서 엄마에게 뛰어오고 엄마들은 준비한 간식을 조금 먹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엄마들이 아이들과 이곳을 많이 찾는 이유는 '넘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이곳에서는 제대로 방출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이 말썽꾸러기. 이곳에서 마음껏 너의 그 장난기를 다 쏟아내고, 제발 집에서는 좀 잠잠하렴."
엄마들의 얼굴에는 그렇게 적혀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날뛰는 아이들 곁에 비둘기 한 마리가 유유자적 아이들의 과자 부스러기를 먹고 있다. 나는 전혀 사람을 겁내지 않는 그 비둘기가 신기해서, 남편과 함께 옆에 가 발로 땅바닥을 쾅쾅 치며 쫓는 시늉을 했다. 비둘기는 '왜 이러세요?' 하는 시선으로 우리를 한번 쳐다보더니만, 계속 부리로 땅을 쫓아댄다.
" 야! 너 우리가 겁나지 않아?"
그때 나는 갑자기 비둘기가 입을 열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비둘기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셀 수 있고 기억력도 굉장히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놓은 시설물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동물이라, 이 놀이터에 붙어 있더니만 아예 말까지 배웠나 보다.
"왜 겁나요? 당신들이 해코지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아는데"
"야, 너 웃긴다. 사람들이 해코지 않는다고 누가 너에게 말하던?"
"먹이를 줬음 줬지, 우리를 죽인 적이 없다고 하던데요?"
"그래? 너 여기서 뭐 하니?"
"아이들이 흘린 찌꺼기를 열심히 청소하고 있죠."
" 너 아주 잘 났구나. 너 이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없네."
"있죠. 왜 없겠어요?"
"사람들이 너를 전혀 해코지 않는데 뭐가 무서워?"
"슬쩍슬쩍 돌아다니는 검정 길고양이 아시죠?"
"응" 나는 겨울이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우리 집 보일러실에도 들락거리는 검정고양이가 생각났다.
" 그 고양이가 간혹 우리를 공격해요. 전에 한 번은 친구 한 명이 거의 잡아먹힐 뻔했다니까요."
"그래? 음, 그건 좀 안 좋은 소식이군. 너 저 개는 겁나지 않아? 저기 아줌마가 끌고 오는 개"
"흥. 전혀요. 오히려 내가 옆에 가면 개들이 움찔하던데요."
"그래?" 나는 개가 아니라 장난감이 되어버린 물체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본다.
"야, 너 옛날, 아주 옛날에는 전쟁 시 승전보를 전하는 통신용으로 많이 활용되었잖아. 너의 머릿속에는 천연 내비게이션이 장착되어 있다고 하더라?"
"아, 우리 선조 얘기군요. 그때 우리들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죠. 물론 아직도 프랑스에는 비둘기 부대가 있다고 하더군요."
"너, 지금도 그 능력을 활용하면 안 돼?"
"어디, 전쟁 난 곳이 있나요?"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 저 엄마 좀 봐. 동생이 잠들었는데도 그 형이 저 미끄럼틀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추운 벤치에 잠든 아이를 안고 있잖아. 너 저 집에 분양되면 안 돼? 너, 벌집 같은 아파트도 능히 찾아갈 수 있지? 너의 그 능력으로 저 큰 아이가 지치면 네가 가서 저 엄마에게 "구구구"라고 연락하면 되지. 어때? 내 아이디어가?"
"음, 좋아요. 별로 어렵지 않은 부탁이네요."
그래서 나는 비둘기 분양단을 모집하려고 한다. 도심에 똥만 싸는 별 존재가치가 없는 비둘기에게 귀한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인건비가 들지도 않고,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집을 잃은 아이도 찾아 줄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게임 중독에 빠지게 하는 요물인 폰을 사 주지 않아도 된다. 비둘기 한 마리를 분양받으면 그 비둘기가 아이들의 행방을 책임진다. 애완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손이 가지 않는다. 먹이만 조금 주고, 냄새나는 똥은 밖의 비둘기 화장실에서 일처리를 하게 훈련을 시킨다. 집안에 깃털이 떨어지는 것을 싫어한다면, 밖에서 자고 출퇴근을 시키면 된다.
나는 며칠 전, 어떤 음식점에서 식사 후 계산을 하려다가, 계산대에 놓인 천 원 짜리 호박엿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천 원을 현금으로 지불해야 엿을 살 수가 있다고 종업원이 말했다. 카드 시대에는 지갑에 단돈 천원이 없을 때도 있다. 이때 비둘기가 있다면, 나는 내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집에 가서, 비둘기를 시켜 돈 천 원을 부리에 물려 음식점에 보낼 수도 있으리라. 심부름꾼으로도 비둘기는 유용하다.
심지어 호신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여성들은 비둘기를 훈련시켜 퇴근시간인 몇 시에 전철역에 마중 나오게 한다. 혹시 괴한이 여성을 습격하려고 하면 이 비둘기가 괴한의 눈언저리나 손을 날카로운 부리로 쪼아 여성을 보호할 수 있다.
어쩌면 이제 사람들은 개를 끌고 산책로를 더 걸리적거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어깨에 비둘기 한 마리씩을 얹고 산책 할런지도 모른다. 토가를 두른 로마시대의 귀족들처럼, 그들은 어깨에 비둘기를 품위 있게 얹고 우아한 발걸음으로 걷다 보니, 스피드 시대의 나무만 보던 삶에서, 숲까지 볼 수 있는 인종으로 변화될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성의 패션도 어깨에 앉힐 다양한 비둘기의 색깔에 맞추어 변화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 예를 들자면 부자들은 자신의 가치를 지금까지는 자동차, 반지, 시계로 가름하도록 했으나, 이제는 어깨 위에 비둘기가 앉는 황금 견장을 그들은 만들지도 모른다. 그 황금 견장은 햇살에 눈부시게 번쩍거려, 1m 멀리서도 눈부신 후광 때문에, 하늘에서 웬 천사가 내려왔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고, 그들은 이를 뼛속까지 철저히 즐길 것이다. 이 즐거움을 확장하기 위해, 부자들은 양쪽 어깨의 황금 견장 위에 두 마리의 비둘기를 얹고, 으스대면서 거리를 걸어갈지도 모른다.
비둘기의 기억력을 이용하여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도 어깨에 비둘기를 얹고 함께 공부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집에 와 복습을 할 때, 특히 산수공부에서 덧셈, 뺄셈을 틀린 경우, 비둘기가 '구구'하면서 아이들의 손등을 가볍게 콕콕 쪼을 수 있다. 아마 시험 때는 비둘기를 학교에 데리고 오지 못 하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비둘기가 눈동자를 좌우로 굴려 자신의 주인인 아이에게 정답을 가르쳐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폰보다 훨씬 더 따뜻한 교감이 사람과 비둘기 간에 이루어지지 않을까?
비둘기 도우미! 이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