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있다.
남편은 왼손잡이인데, 남편이 클 당시의 왼손잡이는 핍박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글씨 쓰는 것과 밥 먹는 것, 즉 수저 사용은 손을 때리면서 가르쳐서 오른손을 사용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은근히 본인의 공로를 내세우시며 자랑하셨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활동에서 남편은 거의 왼손을 사용한다. 왼손으로 가위질을 하거나 왼손으로 바느질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야! 왼손 달인이네"라고 감탄해준다.
첫째 딸은 왼손잡이이다. 이 아이는 모든 활동을 왼손으로 한다. 시어머니는 때려서라도 글씨, 수저 사용은 오른손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여러 번 나에게 요구하셨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편이 왼손으로 뭔가를 뚝닥 뚝닥하는 것이 신기했고, 또 대학에서 내가 만난 원어민들의 대부분이 왼손으로 영어를 쭉쭉 써 가는 것이 우월해 보여서, 구태어 첫째 딸에게 오른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발생하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나의 교육철학은 방임형, 자유형이어서 시골, 산천을 마구 돌아다니며 마음껏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전혀 글자를 가르치지 않았다. 지방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 와서 며칠 되지 않아, 남편의 동료 되시는 분의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나의 두 딸과 똑같은 나이의 두 남자아이가 그 집에 있었다. 그때 첫째 딸은 7살, 둘째 딸은 5살이었다. 즉 첫째 딸은 다음 해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였다. 그날 네 명이 어울려 노는데 그 집의 첫째 아이가 동화책을 가지고 오더니만 나의 두 딸에게 유창하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많이 놀랐고, 첫째 딸도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아니, 이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글을 줄줄 읽나요?"
"여기 아이들은 5,6살부터 다 책을 읽을 줄 알아요"
그 집 엄마는 '무슨 이런 촌뜨기들이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 당장 한글을 가르쳐야 하나?' 하는 마음의 갈등이 순간 있었지만, 나의 관심은 곧 다른 곳으로 집중되었다. 서울에서 사귄 이웃의 한 엄마도 나의 아이들과 똑같은 나이의 딸과 아들을 가진 엄마였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이들이 한글은 이미 다 마스터했는지 글자에는 별 관심이 없고, 문화센터에 열심히 아이들을 보내고 있었다. 피아노, 한자, 수영, 미술 등등이 그 집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과목이었는데, 나에게는 이것 또한 충격이었다. 특히 수영은 내가 처녀 적부터 배우고 싶었으나 배울 마땅한 기관이 그 당시에는 귀해서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서울에는 문화센터의 차가 아파트 단지단지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앉아서 한글을 배우기보다 수영을 배우도록 조치를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에 가면 한글은 다 가르쳐주겠지. 그때 가서 배우면 되지 뭐 구태어 일찍 글자를...'
첫째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글자를 써 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왼손으로 글자를 써다 보니 항상 왼손과 소매 부리가 시꺼멓게 더럽혀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이 아이 평생 글자를 쓸 때마다 왼손과 옷의 끝부분이 엉망이 되어야 한다는 일은 좀 심각한 사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 아이의 습관을 바꾸어야 하나'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러면서 먼저 담임선생님과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아이가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으로 글을 써도록 바꾸어야 하나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냥 그대로 두세요. 요즘 구태어 오른손잡이로 바꾸려는 경향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약간 나이 든 선생님은 그렇게 나에게 조언을 했고, 나는 그 말을 믿고 따랐다. 남편 시대와는 많이 다른 시대적 흐름인 탓도 있었겠지만, 습관을 고치는 일은 힘들고도 성가신 일이라 담임선생님도 나도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작용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첫째 딸은 순수 100%의 왼손잡이로 지금도 생활하고 있다.
영국 런던대 심리학과 교수 크리스 맥매너스는 유전자의 영향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는데, 오른손잡이가 되도록 유도하는 유전자는 있지만 왼손잡이가 되도록 유도하는 유전자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정을 적용하면 부모 모두 오른손잡이일 경우 자녀의 8%는 왼손잡이가 될 확률이 있고, 부모 중 한쪽이 왼손잡이일 때는 19%의 확률로 왼손잡이가 되며, 두 사람 다 왼손잡이일 때에는 30%의 확률로 왼손잡이인 것으로 계산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계산 결과는 왼손잡이 분포 통계와 잘 들어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왼손잡이-나무 위키) 즉 전 세계적으로 성인 전체의 약 10% 정도가 왼손잡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2013년 조사에서 전체 국민들 중 약 5% 정도가 왼손잡이인데, 그중에서 전체 국민의 약 2.5%~3% 정도가 왼손으로 식사를 하고, 1% 정도가 왼손으로 필기를 한다고 한다.
왼손잡이를 영어로 left-hander(lefty), 오른손잡이를 right-hander(righty)라고 한다. 나는 이 단어들을 볼 때마다 항상 궁금했다. right는 '옳은, 정당한, ' 또 명사로는 '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left는 고대 영어 lyft(약하다, 어리석다)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옛날부터 오른손잡이에 대한 인식은 옳고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몽골 부족사회에서는 '저주받은 자'라고 인식되었다. 몽골에서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무기를 잡는 손인 오른손이 비어있음을 보여주며 상대방을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밝혔는데, 왼손잡이는 빈 오른손을 보여주면서 왼손으로 숨겨둔 무기를 꺼내어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못 미더운 사람으로 사회에서 냉대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leave(떠나다)의 과거인 left(떠났다)에 그 의미를 두고 왼손잡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기괴한 일을 많이 저지른다. 그 대표작인 예가 피라미드 쌓기이다. 피라미드는 아직도 현대 과학이 풀 수 없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 도시인 테베 유적지에는 유명한 미로 유적지가 있다. 이 미로 유적지가 left(떠났다)란 단어의 의미를 실제적인 삶에 허용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 테베의 도시에 '라와드'라는 건축설계사가 살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후예답게 그의 건축은 기괴했다. 사막의 땅이어서인지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은 주로 땅 속에 지어졌다. 낮동안에는 서늘하고, 또 모래바람이 불어올 때는 평범한 집 위로 모래를 잔뜩 빨아들여 모래성으로 바뀌었다가, 밤의 추운 기온에는 낮동안에 쌓아 올려진 모래 때문에 난방 걱정이 전혀 필요 없는 따뜻한 집으로 변화되는 구조물이었다. 특히 오아시스 옆에 지어진 건축물은 지하로 그 수원을 끌어들여 땅 속에 개인 수영장을 갖추었고, 하늘을 향해 뚫린 천장을 통해 일광욕까지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구조물이었다. 라와드가 건축한 구조물은 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뻗은 피라미드와 반대로 땅속을 향해 음흉하게 뻗은 구조여서 당대의 사람들에게 '땅속의 마법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어느 날, 상업도시인 테베에서 부자로 소문난 뒤 떼 씨가 라와드에게 한 가지 건축물을 제안했다.
"라와드. 누구도 함부로 찾지 못하는 지하집을 하나 만들어 주시오."
당시 왕과 권력자들은 피라미드로 자신의 사후세계를 준비한다면, 평민들은 감히 지상에 솟은 건축물 대신에 지하로 뻗은 건축물로 자신의 보물창고로, 혹은 사후세계의 무덤으로 준비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무엇에 사용될 집인가요?"
"내 후손을 위해 좀 보관할 물건이 있다네. 그리고 사후에 나의 무덤이 되기도 하지. 단 누구도 감히 찾을 수 없는 구조물이라야 하네."
라와드는 몇 달을 고민한 끝에 누구도 찾지 못하는, 단지 자신과 뒤 떼 씨만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미로 집을 설계했다. 뒤 떼 씨는 평민으로서 큰 부자가 된 경우인데, 얼마 전 뒤 떼 씨의 딸이 파라오의 두 번째 왕비로 간택되는 파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파라오 왕은 이웃 나라들과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돈이 필요했고, 이집트의 대부호인 뒤 떼 씨는 신분상승이 필요해서 서로의 이익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결혼이었다. (뒤 떼 씨는 이제 신분이 상승되어서 피라미드로 자신의 사후를 준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이미 미로 집이 완성된 뒤의 일이었다.)
아니라 다를까, 파라오 왕은 뒤 떼 씨에게 물질적인 후원을 요구했다. 뒤 떼 씨는 자신의 딸이 두 번째 왕비가 된 이 시점에 미로 집 속의 보물들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파라오를 위해 일주일 안으로 많은 재물을 바치겠다고 뒤 떼 씨는 약속했다.
이제 라와드가 늙어 죽어서 이 세상에 없으므로, 미로 집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뒤 떼 씨에게는 큰 안심이 되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그 미로 집을 방문하여 거기에 차곡차곡 쌓아둔 재물들을 조금씩 가지고 나올 생각이었다.
미로 집의 마지막 관문이다. 뒤 떼 씨는 마지막 방의 문을 열기 위해 비밀히 쌓아둔 벽돌 한 장을 빼내고 연이어 있는 한쪽 벽을 힘껏 반대편 방향으로 밀었다.
"어?"
분명 라와드와 함께 왔을 때 움직였던 그 한쪽 벽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 지금 뒤 떼 씨에게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벽에 손바닥 자국이 하나 새겨져 있다. 뒤 떼 씨는 자신의 손바닥을 벽돌 위에 새겨진 손바닥 위에 겹쳐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왼쪽 손바닥이었다. 뒤 떼 씨는 다시 자신의 왼쪽 손바닥을 그 위에 놓았다. 그 손바닥 자국은 뒤 떼 씨의 손바닥보다 조금 작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뒤 떼 씨는 의아했다. 분명히 없던 손바닥 자국이 그곳에 선명히 찍혀 있는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이 생각이 났다. 라와드가 죽기 전에 그를 찾아왔다. 미로 집의 상태가 어떤지, 보완할 곳이 있는지 한번 들어가 보고 오겠다고 그의 허락을 요청했다. 워낙 청렴한 사람으로 소문난 라와드이기 때문에 재물 도둑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라와드는 그날 이 손바닥 자국을 내기 위해 이곳에 왔단 말인가?' 죽은 라와드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약속한 날짜에 재물을 왕에게 바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올지를 너무나 뻔히 알기 때문에, 뒤 떼 씨는 어찌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여러 날 미로 집의 마지막 방을 열기 위해 뒤 떼 씨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할 수 없이 뒤 떼 씨는 파라오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왕 측근의 박사들로부터 조언을 구했다. 박사들을 은밀히 미로 집으로 안내한 그는 박사들로부터 기괴한 해답을 들었다.
"음, 이 손바닥은 분명 왼손잡이의 손바닥 자국이 틀림없소. 벽돌에 찍힌 손바닥의 근육을 살펴보면 왼손잡이가 활발히 사용한 근육 흔적이 분명히 있소. 아마도 이것은 누군가의 왼손잡이의 손바닥 자국이요. 이 자국에 맞는 왼손잡이를 찾아 여기 이 자국에 되면 무슨 해결책이 나올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 그 왼손잡이들은 다 나일강으로 떠났고(left) 지금 우리나라에 왼손잡이가 있기나 한지요?"
뒤 떼 씨도 난감한 문제였다. 왼손잡이들은 잡히는 족족 죽이기 위해 다 나일강으로 떠나야 해서(left) 왼손잡이가 남아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 당시의 이집트 사회에서 왼손잡이는 다 태양신에 대한 이단자로 인식되어 나일강에 빠뜨리는 것이 국가의 규율이었다. 성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이기 때문에 나일강에 빠져 죽임을 당해야 하는 이치와 같은 흐름이 뒤 떼 씨의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재물이 급한 파라오 왕은 할 수 없이 전국에 방을 붙였다.
"주위에 Left-hander(떠난 손)을 찾고 있음. 왕에게 신고하는 Left-hander(떠난 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음"
이집트에는 난리가 났다. 그 불경스러운 "떠난 손"을 살려주겠다는 왕의 어명이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라와드의 아들이 왕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자신을 그 미로의 집으로 인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네가 그 Left-hander(떠난 손)란 말인가?" 왕은 의아하여 그에게 물었다.
"왕이시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저에게 '너를 찾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너의 그 왼손바닥에 물을 묻혀 미로의 집으로 가라'라고 했습니다."
뒤 떼 씨와 왕은 함께 라와드의 아들을 데리고 미로 집으로 내려갔다. 라와드의 아들이 왼손 바닥에 물을 묻혀 그 마지막 방의 손바닥 자국 위에 갖다 대었다. 마치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한쪽 유리구두에 자신의 발을 넣자 꼭 맞는 것 같이, 그 손바닥 자국 위에 라와드의 아들이 자신의 왼쪽 손바닥을 올리자, 한치의 빈틈도 없이 꼭 맞아떨어졌다. 그러자 방향을 가리키는 선명한 화살표가 나타났고, 그 방향으로 벽을 밀자 드디어 마지막 방의 문이 활짝 열렸고, 황금 보화의 휘황찬란한 빛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니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 라와드는 왼손잡이에서 오른손잡이로 교정된 자였다. 그의 부모는 철저하게 그를 훈련시켰다. 라와드의 어린 시절, 옆집의 친구가 왼손잡이인 것이 발각되어 나일강으로 떠나는(leave)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더더욱 조심하고 조심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는 어두컴컴한 땅 속에서 작업하기를 좋아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왼손의 실수를 어둠은 충분히 감추어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건축물은 땅 속을 향해 무한정 뻗어갔고, 그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은 땅 속에서만은 누그러져, 마음의 안정도 오히려 땅 속에서 한없이 뻗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이 교정 훈련이 잘 되지가 않았다. 또 그의 아들은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아버지의 말도 잘 따르지 않았다. 이제 나이 많은 자신이 죽고 나면 아들에게 어떤 운명이 닥칠지 생각만 해도 라와드는 온몸이 오싹거렸다. 그래서 라와드가 취한 마지막 행동이 잠자고 있는 아들의 왼쪽 손바닥 자국을 벽돌에 담는 일이었다. 혹시나 이일로 인해 아들의 생명이 구원될지도 모른다는 일련의 희망을 가지고 행한, 아들에 대한 끝없는 염려와 불타는 사랑의 발로였다.
목숨을 건진 라와드의 아들을 옆에 두고 왕이 시험해보니, 그 건축 재능이 아버지 라와드를 훨씬 능가하는 천재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아들의 예술성과 창의성은 그 이전 어떤 건축가보다도 뛰어났다. 그래서 왕은 전국에 "떠나야 할 자들이 이제는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방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는 왼손잡이들이 이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되는 획기적인 분깃점이 된 것이다.
그 이후 지어진 대부분의 피라미드들은 라와드의 아들에 의해 설계되고 건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떠나야 할 왼손잡이들이 떠나지 않고 그 기능을 줄곧 이어받게 되어서, 현대의 과학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피라미드 건설을 계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방문하게 된다면, 그 왼손잡이들의 위대함을 마음껏 감상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