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골목길은 구불구불 하늘길로 향하듯 위로 치솟아 있어,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이러다가 하늘문을 여는 것 아니야?' 하는 마음이 든다.
수원 행궁동 벽화마을의 골목길은 구비구비 돌 때마다 마주치게 될 새로운 그림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수면 위를 가르는 물제비처럼 발걸음을 통통 뛰게 만든다.
아파트 숲이 들어서면서 골목길이란 단어는 낯설어지고 생소해져, 이제 젊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조차 힘든 존재가 되었지만, 오히려 나이 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골목길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의 관광명소에 등장하는 단어 중 많은 단어가 '골목'이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페골목, 근대골목, 먹자골목, 한약 골목, 테마골목"등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리'라는 단어보다 '골목'이라는 단어가 훨씬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하기 때문인 것 같다.
허허 들판에 세워진 집을 다 허물고 그 터 위에 의젓한 한옥을 짓던 날, 부모님은 기뻐서 친척들을 모아 잔치를 했다. 어린 나의 눈에 새로 세워진 한옥집은 들판에 서 있는 한 채의 궁궐같이 보였다. 그러나 거센 물살에 돌멩이들이 하나 둘 물가로 모여들듯이, 세월의 흐름으로 집들이 한 채, 두 채 세워지면서, 우리 집은 이제 가장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골목집이 되었다.
도로변과 맞닿아 있는 집으로는, 한 곳이 음식점, 다른 한 곳은 가전용품 가게였다. 이들이 우리 골목의 시작점이다. 구불구불한 골목 가장 끝에 있는 우리 집 앞으로 오른쪽으로 세 채의 집이, 왼쪽으로는 네 채의 집이 앞서 있었다. 옛날에는 집 한 칸만 있으면 먹고살 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골목에 둥지를 튼 집들은 모두 다 가구수가 많은 대가구의 집들이었다. 집주인은 구석구석에 방을 만들어 세를 놓았고, 이 월세 수입이 집주인에게는 큰 수입원이 되던 시절이었다.
긴 골목길 안에 쏙 박히게 된 우리 집은 도로변에서 멀다 보니 조용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우리 집 옆 골목길은 위험한 장소로 변했다. 왼쪽 편에 있는 우리 집과 오른쪽 편에 있는 건너집 사이에는 한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공간이 길게 뻗어있었는데, 이곳에 가로등이 없었다.
우리 동네를 벗어나 조금 가다 보면, 그곳에 큰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크고 작은 공장들이 세워져 있고 그 공장에 기생하여 음식점, 술집, 여관, 호텔 등의 건물들이 붙어있었으며, 많은 유동인구 때문인지 그 상가들은 호황을 누렸다.
그런 유동인구가 많아지고부터인지 어느 날부터 우리 집 담벼락을 끼고 있는 골목 끝자락이 우범장소로 변하기 시작했다. 골목이 좁다 보니 패거리들이 들어와 싸울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한, 두 명이 혹은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끌고 들어와 폭력을 가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잠자기 위해 집안 모든 곳의 전등을 끄고 나서 어렴풋이 잠들었을 때, 즉 밤 12시 가까이 될 때면 우리 집 담벼락 옆에서는 때리는 소리, 맞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부모님은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셨던 것 같다. 이 동네에서는 아무도 싸움질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감히 무서워서 부모님은 꼼짝달싹하지 못하신 것 같으셨다. 그러나 여러 번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이제 부모님도 약간은 안타까워하셨지만 점차 무시하신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에서 부모님이 그 전날 밤의 일 때문에 잠을 설치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전날 밤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기 때문에 숙면을 취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 자라고 이 소리에 깨기 시작하면서(중학생 ), 나는 부모님을 닦달하여 경찰서에 신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당시, 경찰 신고는 우리에게 별다른 효과를 가져다 주지 못 했다. 경찰이 와서 그 싸움꾼들을 잡아간 적이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나 저제나 경찰이 그들을 잡아가기를 학수고대하면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이 온 적은 별로 없었고, 맞는 사람은 맞을 만큼 맞았는지 아니면, 때릴 놈이 때릴 만큼 때렸는지, 얼마 후 골목은 다시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여기 청소년들이 이 시각에 아직도 모여 있어요. 이곳으로 빨리 순찰 나와 주세요."
시계는 1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폰으로 경찰서에 전화를 건다.
"네, 알겠습니다. 곧 출동하겠습니다. "
15~20분을 숨죽이고 기다린다. 밖에는 아직도 남녀 청소년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저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뭐 하고 계시나? 아이들이 12시가 넘어도 들어오지 않는데 걱정되지도 않으시나?' 나는 드문드문 들리는 여자아이의 목소리 때문에 더욱 긴장하고, 저 아이를 저렇게 방치하는 부모가 원망스러워 투털댄다.
"따르릉따르릉(나의 촌스러운 폰 컬러링 소리)"
"네" 나는 잔뜩 목소리를 죽이고 전화를 받는다.
"예, 좀 전에 신고하신 분 맞으시죠? 지금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어디 있다고 하셨나요?"
"거기 올라가시다 보면 원두막형 쉼터가 있을 거예요.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여름철이 되면 나는 여러 번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집 옆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어린이 놀이터는 낮에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밤이면 청소년들의 술터로 획가닥 변신을 한다. 어릴 적 우리 집 골목길에서 밤에 들리던 사람의 고통소리가, 이제 철없는 청소년들의 일탈의 소리로 변신하여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시대가 변해서인지 옛날 묵묵부답이던 경찰관이 이제는 재깍재깍 반응을 보이고, 한 발짝 더 나아가 꼭 다시 확인 전화를 한다. 그 20분 정도 동안 나는 잠자기를 보류하고 깨어있어, 그들의 전화에 응답해야 한다. 이것이 신고자의 의무이며 치르야 할 대가이다.
사방이 깜깜하다. 버스를 잘못 탔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를 조금 넘었다. '아직도 다른 버스가 있으려나' 걱정과 두려움이 온 신경을 바짝 죄어온다. 창 밖을 보니 인적은 드물고 온통 들판이 널려져 있다. 아직도 서울에 이런 구석진 곳이 있었나? 강서구 공항동. 친척집에 잠시 들리러 왔다. 서울에서 학과 교수님을 만나고 공항동 간다는 버스를 탔는데, 뭔가 잘못 탄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 '그 교수님,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대학 강단에서 보던 그 교수가 아니잖아. 서울 지리에도 익숙하지 않은 나를 왜 붙잡고 안 놓아준 거야.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 서울 오면 꼭 전화하라고 하시더니만, 별 일도 아니더구먼. 내가 너무 어리숙해 보이나? 나도 참 문제야. 빨리 박차고 나왔어야 했는데. 왜 사람을 붙잡고 쓸데없는 얘기를 늘어놓으시지?'
"이 차, ㅇㅇ가는 버스 맞나요?"
나는 운전기사에게 가서 물어본다.
"네, 아직 몇 정거장 더 가야 합니다. 조금 기다리세요. 그때 알려줄게요."
나는 긴 생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에 가 앉는다. 그때 나를 쳐다보는 기분 나쁜 시선이 있다. 또다시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내가 너무 촌뜨기 티를 내었나?' 다급해진 나는 너무 큰 소리로 운전기사에게 말을 건 것을 후회한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셀폰이 없던 시절이다. 서울의 대학교로 옮겨가신 교수님이(별로 친한 기억이 없었음) 연락을 하셨다. 서울에서 교직을 알아봐 주겠다는 엄청난 제의를 하신 것이다. 서울 와서 한번 만나자는 연락에 나는 황공해졌다. '이 교수님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시고 이런 생각을 다해 주시나' 그래서 올라온 서울.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만나본 교수님은 완전 기대 밖이었다. 중학교를 두 군데 같이 돌아보긴 했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쓸데없는 이야기들. 나중에는 이 교수가 나를 왜 불렀는지 의구심이 마구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와 보는 서울의 친척집. 모든 것이 낯선 곳. 나는 불안했다.
운전기사가 알려준, 깜깜한 골목길에 내렸다. 그런데 그 기분 나쁜 시선을 보내던 그 남자도 같이 내렸다. '하나님'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뒤따라 오는 발자국 소리에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아가씨"
누군가 마주 오며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언니"
나는 눈물을 흘리며 친척 언니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아가씨를 기다렸는데 아직도 안 와서 내가 마중 나왔지요. 여기 김포공항 때문에 아직 개발이 안 되어 시골이에요. 많이 놀랐죠?"
막다른 골목길이다.
"경찰서죠? 저 살려 주세요. 누군가가 저를 따라오고 있어요. 저 지금 나무 뒤에 숨어 있어요."
숨소리를 최대한 억누른다. 내가 있는 장소를 들키면 큰일이다. 그가 지금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다.
그때 다시 전화기가 울린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면 내가 있는 위치를 들키게 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는 땀에 흠뻑 젖어 잠을 깬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의 그 일. 낮과 밤에 새겨진 어둠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요즈음도 나는 간혹 그 날밤의 연장선 속에 서 있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