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마른 체구와 짧은 단발머리, 지나치리만큼 강렬한 눈빛. 그 눈빛은 때로는 남의 어설픈 생각 따위를 미리 제압하려는 듯, 때로는 활활 불타오르는 내면의 불길이 잠시 제 갈길을 찾아 눈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듯, 긴 속눈썹 아래에서 차갑게 빛났다. 꽉 다문 입술은 그 속에 가지런히 박혀 있는 새하얀 치아를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이 미동도 없이 놓여 있다. 이중 삼중으로 얼굴 곳곳에 잠금장치를 한 듯한 그녀를 나는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아저씨, 슈 바고 있나요?"
"슈 바고요? 손님들이 잘 찾지 않아서 갖다 놓지 않다가 오늘 몇 개 가져다 놓았어요. 그런데 이 손님이 많이 사 가지고 가신다고 해서 얼마나 남을지 알 수가 없네요. 일단 저 앞 선반 두 번째 칸에서 찾아보실래요?"
새벽마다 편의점을 깨끗이 청소하시고, 아침나절이면 늘 티백 녹차 두 봉지를 커다란 머그컵에 담가 놓고, 틈날 때마다 홀짝이던 편의점 주인아저씨가 왼쪽 선반을 가리킨다. 아저씨가 가리킨 선반 쪽을 바라보는데 한 팔 가득 슈 바고를 들고 나오는 그녀를 만난 것이다.
슈 바고! 인도의 커리 중 한 종류이다.
몇 해전 인도로 선교여행을 다녀오면서 슈 바고를 알게 되었다. 한국화 된 카레와는 분명히 다르다. '신감치같이 시면서도 청양고추같이 알싸하고, 그러면서 또한 설탕같이 달짝지근한데 또 소금같이 짠, 그리고 뒷맛은 쓰면서 떫다. 즉 음식의 기본적인 여섯 가지 맛인 단맛, 신맛, 짠맛, 떫은맛, 매운맛, 쓴맛을 모두 합쳐 놓은 신기한 커리이다. 인도의 현지인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별로 즐기지 않는 음식이다.
인도에서의 이틀 동안의 긴 기차여행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인도는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기차 안에서 하루, 이틀 심지어 한 주일을 보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쇠사슬로 내 모든 짐을 꽁꽁 묶고 자물쇠를 단단히 채워야 한다. 아그라에서 타지마할을 보고 갠지스강의 도시인 바라나시로 이동하는 철도 구간은 인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의 구간, 도둑의 구간'으로 악명이 높은 구간이다. 그 구간 동안 우리 일행은 거의 잠을 자지 못 했다. 실제로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은 분명히 여권을 윗옷 주머니에 넣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18명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모든 짐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행방불명. 인도에서 과부를 돕는 사역을 하시는 여자 선교사님이 지나가는 차장(표 검사를 함)을 붙잡고 인도어로 뭐라고 계속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그 남자 차장이 완강히 부인하는 듯하더니만 거의 20분 정도를 이야기한 후에야 슬그머니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여권을 꺼내 돌려주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인도의 새로운 한 면을 봤기 때문이다.
매캐한 공기와 울렁이는 속 때문에 무언가 자극적인 음식이 필요했다. 그때 선교사님이 제안한 음식이 슈 바고! 길거리에서 파는 커리를 나무 잎사귀에 올려 손가락으로 먹기도 하고, 괜찮은 호텔에 앉아 탄두리 치킨, 난, 요구르트와 함께 먹어 보기도 했지만, 이 슈 바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맛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맛의 기본인 6가지 맛이 모두 섞여 있어 사람에 따라 자신의 미각에서 강한 부분의 맛을 더 강렬하게 느끼기 때문에 한 마디로 '이런 맛이다'라고 결론 지을 수가 없는 것이 이 음식 맛의 묘미였다.
나는 슈 바고 두 봉지를 사 와서 스텐 냄비에 넣고 조리를 했다. 마늘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양파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한 이 음식은 오래간만에 나의 인도 여행의 추억을 생각나게 하면서, 또한 나의 미각에 잃어버렸던 맛을 되새겨 주었다.
"우리 반에 얼마 전, 불행한 사고를 당한 가정이 있어요. 남편이 출장 중 차를 몰고 가다가 차가 뒤집혔다고 하네요. 구조대가 와서 충분히 차 밖으로 사람을 구출해 낼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운전자가 사망했데요. 사망원인은 익사사고. 운전자는 안전벨트가 매인 채로 몸이 거꾸로 뒤집혀 있는 상태였나 봐요. 그런데 코 바로 밑에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 웅덩이에 며칠 전 온 비로 빗물이 고여 있었고요. 하필이면 그 웅덩이 물에 운전자의 코가 박혔지 뭐예요.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에요."
나는 아들반 선생님께서 망설이다가 대표 엄마인 나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또한 그 가정의 불행이 마음에 절절히 와닿았다.
"엄마, 내 짝이 오늘에야 학교에 나왔어. 며칠 동안 결석했었거든. 어디 아팠는지 얼굴이 핼쑥하더라. 그런데 머리에 커다란 까만 리본을 하고 왔어."
나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들의 짝, 희영이의 얼굴을 떠 올렸다. '혹시 희영이의 아빠가?' 나의 머릿속의 희뿌연 안개가 갑자기 걷히는 듯했다.
"아들아, 희영이에게 잘해 줘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무슨 일? 나 잘해주고 있어. 엄마가 걱정 안 해도 돼."
아래위 검은 옷차림으로 슈 바고를 한 아름 안고 나오는 그 여자를 슈퍼 앞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자세히 그녀를 주시했다. 희영이와 너무나 닮은 얼굴! 희영이의 엄마임에 틀림이 없다. 슈 바고. 인도에서는 과부들이 먹는 음식이다. 인생의 모든 맛을 가진 이 음식을 먹으면서 인생의 쓴맛, 짠맛, 떫은맛, 신 맛을 다 경험했고, 이제 단맛만을 바라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과부들이 먹는다는 음식이다. 인도에서 과부가 된다는 것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티'라는 풍습이 있어서 남편을 화장할 때 살아있는 아내도 함께 불 속에 뛰어들어야만 그 가족의 종교적인 죄가 없어진다고 하여 인도 사회에서는 공공연하게 과부에게 죽음을 강요한다.
희영이 엄마는 어떻게 슈 바고를 알게 되었을까? 이 음식을 통해 그녀는 얼마큼 위로를 받았을까? 슬픔에 잠긴 얼굴 표정, 무언가 무기력해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이 자꾸만 내 눈에 밟혔다.
나는 아들과 함께 도움 프로젝트 하나를 실행하기로 했다. 매일 희영이에게 맛있는 빵을 전달하는 것이다. 마침 한 달 전에 나는 제빵 학원을 다녀서 다양한 빵을 만들 수가 있었다. 머핀, 마카롱, 코루아상, 소보로, 타르트. 베이글, 브라우니, 바게트, 와플, 도넛, 마늘빵, 크림빵 등등
매일 작은 오븐에서 구워진 빵을 정성껏 포장하면, 아들은 희영이에게 이를 전달했다.
"이게 뭐야?"
"응, 우리 엄마가 요즘 제빵을 배워서 실습하고 있거든. 너에게 주려고 조금 가져왔어."
희영이는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는 것 같더니만 낮은 목소리로 '고마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들의 이 말을 전해 듣고 기분이 좋았다. 이 작은 음식이 희영이의 가정에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빵을 보내기 시작한 지 5일 만에 전화를 받았다.
"저, 원우 어머니시죠? 희영이 엄마입니다. 혹시 오늘 시간 되시면 차 한 잔 하실 수 있으신지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앞에 앉은 희영이 엄마는 역시나 깡마른 몸매에 음침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슈퍼 앞에서 보던 그 얼굴이다.
갠지스강을 갔을 때 한쪽에서는 시체를 화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며 그 물을 먹고 또 그 물을 병에 담고, 다른 한쪽에서는 빨래를 하고 있었다. 온갖 오물이 떠 다니고 온갖 쓰레기 더미가 떠 다니는 인도의 성스러운 강 갠지스. '사티'가 무서운 인도 과부들은 인도 전역에서 갠지스 강까지 걸어와 이곳에서 목욕제계하고 이 강에 빠져 죽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이런 과부들을 모아, 살아갈 수 있도록 편지지와 편지봉투, 인도의 전통의상을 염색하는 일등으로 그들의 자활을 돕고 계셨다.
그런데 희영이 엄마는 지금 '사티'의 불 속으로, 아님 갠지스강 속으로 뛰어들어갈 만큼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매일 희영이를 통해 빵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이렇게 일부러 만나자고 하시다니 "
나는 나의 작은 행동이 이 가정에 도움이 된 것 같아 내심 자아 만족감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네. 너무 감사합니만 이제는 안 보내셔도 됩니다. "
나는 희영이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표정만큼이나 매사에 쌀쌀맞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요즈음 제가 매일 저녁 희영이와 싸운답니다."
"네? 왜요?"
"희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빵이에요. 그런데 희영이에게 소아당뇨가 있답니다. 며칠 전 병원에 입원까지 했었고요. 그동안 억눌러놓았던 빵에 대한 욕구가 원우의 빵 때문에 폭발했어요. 좀 더 먹으려는 희영이와 그 욕구를 절제하려는 나와의 다툼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네요."
희영이 엄마는 첫 순간 봤을 때의 그 활활 불타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한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띠링띠링띠링"
희영이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그 순간 나는 빨리 내 마음을 수습해야만 했다.
"그래요, 알겠어요."
희영이 엄마는 전화를 받은 뒤 잠시 커피숍 주인에게로 갔다.
오전, 조용한 커피숍에 흐르던 클래식 음악이 잠시 끊기고, 앞 천장에 설치된 대형 TV를 주인이 킨다.
"OO음식 연구소의 연구원인 오은경 씨의 슈 바고에 담긴 신비한 맛을 분리하는 작업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대형 스크린에 희영이 엄마의 깡마른 얼굴이 나타나고, 희영이 엄마의 슈 바고에 대한 설명이 연이어 흘러나온다.
"죄송해요. 남편이 빨리 TV를 잠시 보라고 해서. 몇 달 동안 인도의 희귀 음식 슈 바고의 맛을 분리하기 위해 집에서도 끊임없이 작업하느라 ~"
희영이 엄마의 목소리가 증폭기를 통과한 듯 커다랗게 증폭되어 내 귀 속을 후려친다.
그날 희영이 엄마와 헤어진 뒤, 나는 아들반 엄마들 대부분에게 전화를 해야만 했다.
" OO 엄마, 우리 학급에서 사고가 난 집이 희영이네 집이 아니에요. 그 가정을 돕기 위해 보내주신 위로금을 다시 보내드릴게요. 아이고, 정말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