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더 살아갈 이유를 상실했고, 몸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을 나온 후, 그런 정신 상태는 삶의 의욕을 눈에 띄게 상실시켰고, 일주일에 많이 먹어야 세 끼니, 대체로 한 끼 먹으며, 주린 배를 물로 대신 채우면서 이후 3년을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활기차게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내색은 못했지만, 맘 속으로 부러워할 뿐이었습니다. 내게 감당 못할 과중한 기대를 하는 부모님이 안쓰러웠고, 곧 마주할 마지막 날을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눈앞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술 없이는 잠을 못 잤던 탓에, 늦은 밤, 옥상에서 안주도 없이 소주를 병나발 불고 있었습니다. 아주 멀리 보이는 산 뒤에서 비행기 불빛 같아 보이는 게, 쑤욱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불빛의 속도가 비행기의 속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빨랐습니다. 얼핏 봐도 50km가 넘어 보이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단 1초도 길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저렇게 정지해 있을 수 있나? 헬리콥터인가? 이상한데? 헬리콥터 속도도 아니고 비행기보다 빠른데, 저게 뭐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것은 갑자기 중력이고, 물리 법칙이고 다 무시하면서 이리저리 자유곡선을 그리면서 미친 듯이 날아다녔습니다. 한동안 그러더니, 다시 멈춰 섰습니다.
‘죽을 때가 되어가니 이상한 것도 보이는구나. 더 살 기운이나 있으면 정신병원에 입원이라도 해 볼 텐데….’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불빛이 정말 갑자기, 그 먼데서부터 내 머리 위까지 순식간에 날아왔습니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이 서울 역삼역 근방이었는데, 그 불빛이 나타난 곳은 북한산 근방의 어떤 산이었습니다. 의정부쯤 아니었나 싶은데, 거기서 역삼역까지 길게 잡아 2, 3초 만에 날아온 것입니다.
'비행기가 그 만한 속도를 내려면 음속의 몇 배는 되어야 하지 않나? 음속을 돌파할 때 난다는 ‘소닉 붐’ 굉음도 전혀 없어?'
그렇게 너무 조용하게 내 눈앞 상공에 멈춰 섰습니다. 그것의 크기는 거리에서 흔히 보는 3층 건물만큼 컸고, 표면은 발산하지 않는 빛의 일렁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하! 오늘이 드디어 내가 이 땅을 떠나는 날인가 보다. 요즘 저승사자는 UFO를 타고 다니나?’
'혹시 UFO 라면 외계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살펴봤는데, 기계적인 어떤 디자인도 발견할 수 없었고, 외계인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그 빛 덩어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데리러 왔으면, 어서 데려 가소.’
그 속삭임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는, 왔던 곳으로 다시 수욱~ 하고 가버렸습니다.
‘환각을 본다고들 하던데, 이런 환각도 있나? 정신과에 가야겠지만, 돈이 없으니 갈 수도 없고.... 그냥 못 본 걸로 하고 조용히 살다가 조금 남은 기운이 다 빠지면 이 땅을 떠나는 걸로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반 병쯤 남은 소주를 원 샷 했습니다.
당시는, 삼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시 종합학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사 과목의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것을 본 후, 일주일쯤 뒤에 그 선생님이 소름 돋을 소리를 했습니다. 그의 자택이 당시 내가 머물고 있던 고시원 건물 바로 옆에 있었는데, 같은 날 밤에 자기가 UFO를 봤다는 것입니다.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었던 겁니다. 한참을 수업진도는 안 나가고 그 이야기를 하는데, 내 머리는 찌릿거렸고, 온몸에서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삼수 끝에 원하던 대학에 기적적으로 합격했습니다. 실기시험 후, 당연히 떨어졌다고 믿고서 서울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입시미술학원 선생님이 내 집으로 전화해서 합격 소식을 전했습니다. 서울 친구가 아빠 몰래 몰고 나온 차로 급히 서울로 올라갔는데, 이런….
입학 수속을 마치려면 당일 오후 5시까지, 입학금 430만 원을 서울은행에 입금해야 한답니다. 그런 큰돈, 없었습니다. 그때가 1시 무렵이었으니 대략 4시간 안에 마련해야 했습니다. 당장 손 벌릴 곳은 미술학원 밖에 없어서 원장 선생님께 연락하니, 선생님도 갑자기 그 돈을 마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생해서 대학 합격했더니, 돈 때문에 대학도 못 다니게 되었구나. 그래도 대학에 붙기라도 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어차피 곧 죽을 인생인데, 이만한 기쁨 가지고 가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생각하면서 자위하고 있었는데, 어느 키가 심하게 작은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합격하셨어요?’
‘네’
‘축하드려요.’라면서 이런저런 입학 정보들을 알려줬는데, 귀찮은 마음에 ‘돈이 없어서 입학 못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그런데, 가르쳐 주지도 않은 내 이름을 갑자기 언급하면서 ‘혹시, 000님 아니 세요?’ 하는 겁니다. 당혹스러워서 ‘저를 어떻게 아세요?’라고 물으니. ‘입학금 준비되어 있으니 같이 가요.’라는 겁니다. 부산에서 함께 학원 다녔던 00 선배가 이미 입학금을 준비해 뒀고, 어제부터 나를 기다리며 연락이 닿지 않아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녀를 따라 학교 옆, UBF 건물에 갔는데, 그 선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를 찾으러 나가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 삐삐를 쳐서 한 시간쯤 후에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돈 봉투를 꺼내며 빨리 은행 가자고 잡아끌었습니다.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면서, 입금한 후에는 입금 확인서 들고 접수처에 가서 접수를 해야 한답니다. 그 선배와 함께 서울은행 지정계좌로 입금한 후, 은행을 나서면서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딛는데,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3월 초, 봄기운이 완연한 따뜻한 봄날에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습니다. 반팔 티를 입고 있는 행인도 여럿 보였습니다. 그런데, 은행 문을 열면서 동시에 10m 앞이 안 보일 만큼 함박 눈보라가 나를 향해 몰아쳤습니다. 너무 놀란 나는 문을 잡고 서서 얼어버렸는데, 그 선배도 멍하니 한동안 그렇게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 선배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내 어깨를 치며 ‘하나님께서 네 입학을 축하하시나 보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나를 아주 싫어한다고 믿었고, 나도 그 신을 심하게 원망하고 있던' 터라서, 그 말은 순간 혐오감이 들게 했습니다.
그래도 아무튼, 그 선배가 정말 기적적이라고 밖에 표현 못할 선물을 내게 안겨줬고, 대학에 다닐 수 있게 된 흥분도 있고, 또 이상한 일들을 간간히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뭔 가에 홀린 건 아닐까 하는 이상한 기분에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 선배만 아니라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실망들을 많이도 안겨줬습니다. 알거지인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고, 난 그들의 기대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난 곧 죽을 거 같아’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첫 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훈련소 마지막 날에, 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조교의 통솔에 따라, 내무반 건물 옆 그늘에 줄지어 앉아서 철모와 군화를 닦고 있었습니다. 내 맞은편 대략 5m 앞에는 병영 내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하더니, 몇 분만에 금세 그쳤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십자가 위에 작은 쌍무지개가 너무 홀리하게 드리워졌습니다. 어렸을 때도 소나기가 지나간 후 무지개를 간혹 보긴 했지만, 쌍무지개는 처음이었고, 봤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조교나 훈련소 동기들도 모두 그런 쌍무지개는 처음 보는 듯했습니다. 모두들 어리둥절하며 웅성웅성했고, 조교도 입만 쩍 벌리고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손 뻗으면 닿을 듯한 조그마한 쌍무지개는 1백여 명의 청년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나는 ‘정말 신이란 게 있는 것일까? 혹시 그 신이 정말 나를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라며 중얼거렸습니다.
말년 휴가를 받아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대학 동기들을 만나기 위해 교내 어느 건물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여학생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세상에! 저런 미인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고, 동기들과 어울려 놀면서도 그녀의 광채가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복학한 후, 체육대회 예선전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런데 그 자리에 몇 개월 전, 빛나는 광채로 감동을 줬던 그녀가 있었습니다. 팔씨름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겨루고 있었던 그 자리에서 그녀는 모든 여학생들을 이겨버렸습니다. 내가 반한 그녀는, 내 후배였던 겁니다.
입학금을 미리 준비해 뒀던 그 선배 때문에 대학생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내게 일정 한도의 명령권한이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UBF라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그녀의 삶과 열정은 내게 작지 않은 감동을 줬습니다. 그런 감동과 그녀의 명령권에 따라, 그녀가 부르면 UBF에 가서 성경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억지로 하는 거였지만, 관심도 없던 성경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게 하나님의 역사인가?’라는 마음의 동요가 자주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에 기쁨이 있었던 것이 큰 감동이었습니다.
생거지인 나와는 레벨이 다른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와버렸습니다. 그녀가 수련회에 간다면 나도 갔습니다.
겨울방학 때, 부산에 내려가 미술학원 선생님과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어떤 다른 미술학원에 그 선생님과 함께 잠깐 들렀는데, 그 학원에서 배출한 ‘합격자 명단’에 그녀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을 보고는, 또다시 뭔 가에 홀린듯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부산서 미술학원 다닐 때 어쩌면 마주쳤을지도? 서로 몰랐지만, 오래전부터 그녀가 내 근방에 있었을 지도?’
그런 생각이 들면서 요동치는 감정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곧 죽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그냥 찌질한 한 선배일 뿐이었습니다. 모든 여자가 싫어하는 그 자격지심,,,, 맞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자꾸 마주치는 그녀에게 끌리는 맘을 주체하지 못하고, 겁도 없이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먼저 캠퍼스 주변 일대를 샅샅이 살펴서 그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하나님께 맘으로 속삭였습니다.
[내가 곧 죽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만약, 그녀가 내 인연이라면, 지금 내 눈앞에 그녀가 나타나게 해 주세요. 그러면 어쩌면,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생각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발랄한 제스처를 보이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고 하나님을 시험한 건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그래도 내가 하나님에 대한 반감이 오랜 만큼, 쉽게 믿음이라는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약속을 미루는 것이 어기는 것’과 같다면, 당시 내가 한 그 약속을 나는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키지 않은 그 약속은, ‘그럼 그렇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절망을 안겨줬습니다. '버나드 쇼'가 한 말을 나도 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냥저냥 지내던 중에 어느 날, 한 선배가 나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미술 작업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무서우니, 집까지 바래다주길 바란다고….’
'그녀가 내게 전하라고 그 선배를 보낸 것'입니다.
기절할 뻔했습니다. 정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대처도 적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남들처럼 당당한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죽음을 그다지도 오래 곁에 두고 살지 않았더라면, 난 어쩌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와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기쁨이고 황홀이었지만, 그 길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내게는 너무 많은 말들을 담은 표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부담스러웠을 텝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더 이상 바래다주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들었습니다. 천국에서 지옥에 떨어진 좌절이고 절망이었지만, ‘인생에 바랄 것이 무엇이 있나?’ 라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주일 간의 추억만으로도 내 죽음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라며,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했던 '시험'과 '약속 불이행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찌나 그렇게도 어렵던지….
그런데 그 찌질한 인생이 또다시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 아쉬움 때문인지, 또는 보고 싶어서 그랬는지, 없는 돈 어렵사리 모아서 영화표를 구매했고, 그녀에게 전화해서 같이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정말 얼간이나 하는 짓을 어찌나 그리 많이 했던지….
당연히 거절당했고, 아무렇지 않은 듯 표를 다른 친구에게 주려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다는 친구가 있어서 함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