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_2

by Tony C

회심

10대 후반 언제부턴가, ’ 스물일곱 살의 어느 날 죽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 나이 까지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는 아무런 추측도 상상도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점점 그 해가 다가오면서 난, 조금씩 고대하던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뭘 준비해? 준비할 게 뭐 있나? 그냥 간절히 바라던 죽음인데 기쁘게 맞이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보니, 내가 스물여덟 살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아! 만으로 27살인가? ㅋㅋㅋㅋ’

얼마 후, 예수님을 믿게 된 뒤에는, ‘스물일곱 살 무렵에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격 취소될 뻔했던 나를 대학생이 되게 했고, 이후로 5년가량이나 내 무시를 견디고 인내하며 복음을 가르쳐 준 그 선배가 어느 날, 선교사로 떠난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마치 심장에 큰 구멍이 뚫린듯한 공허감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그렇게도 성실하게 가르쳐 준 그 선배를 나는 항상 무시했고, 비웃었는데…. 그녀가 떠난다는 소식은 역시 처음 당해본 충격이었습니다.


‘그래~ 최근 몇 년간 일어난 그 이상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어. 그리고, 그것을 알게 해 준 선배가 떠난다는 소식에 이렇게까지 공포스러워하는 나를 보니,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영영 하나님을 믿을 기회가 없게 될지도 몰라. 이제부터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자.’


그렇게, 그 선배가 떠난 후 에서야, 나 스스로에게 ‘너는 이제부터 크리스천이야!’라고 혼자 선포했습니다.

돌아보면, 그렇게도 자주 많이 내 이름을 불러 주신 하나님께 부끄러운 마음 밖에 없습니다.

그 선배가 떠나기 얼마 전, 내가 정말 충격적이고 이해불가한 경험까지 했음에도, 나는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살 이후로 함께한 우울증'과 '자기 비하'는 어떤 일로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도록 만들었고, 결국 '한 성령의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준 뒤에야 비로소 결단하게 된 겁니다.


선배가 떠나기 얼마 전, 그 선배에게 주입식 성경공부를 하던 중에, 지나가던 한 UBF 목자가 지나가는 말로 ‘요즘, 이사야서 53장을 하루에 50번씩 필사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그 거 나도 한번 해 보면 내 불신앙이 믿음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50번 필사하는데, 5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몇 번 해보고는 ‘20번 필사로 하자’라고 타협했습니다.


그 필사를 위해 QT를 먼저 하는데, 성경 10개 챕터를 읽고, 감상-기도문을 작성하고, 기도와 찬송을 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때문에 20번 필사를 해도 하루에 두세 시간을 넘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두 달간 지속하던 중에, 그해의 부활절이 이르렀을 때, 말로만 듣던 그 '성령체험'을 했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은 예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하시기 700년 전[BC 700]에 그 일에 대해 기록된 내용의 예언입니다. 내 경험 역시 예수님의 수난 절기기간 중에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이었는지? 분명한 기억이 안되지만,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심판받고, 고난당하신 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밤 11시도 넘은 시간에 내 방에서 필사를 한 후 예수님의 수난기를 읽기 시작할 때쯤이었습니다.

그 야심한 시간에 창 밖에서 쇠망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가 계속 있어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어느 순간 내 방 안에서 들려왔습니다. 방 안에 있으면 밖에서 들리고, 고개를 내 밀면 방 안에서 들려서 ‘뭐지?’ 하면서 그냥 좀 이상하게만 생각했고, 곧 섬찟한 느낌이 들어 다시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이제는 펼쳐진 성경에서 울려 퍼지더니 이어서는 내 심장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너무 놀래서 성경 읽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읽고 있던 내용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와 유대 민중들 앞에 끌려 나와 심판받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눈앞에 그 장면이 실제로 펼쳐졌습니다.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었는데, 내가 예수님의 눈으로 그 현장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유대 군중들은 나를 향해 손짓하며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쳐 댔습니다. 분명, 저들의 손짓과 외침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향한 것임을 알긴 했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속삭이듯이 말씀하신 것은, ‘저들이 나의 백성이다.’ 였습니다.

그 백성들의 눈에는 예수님을 향한 혐오와 증오가 있었고 비웃음이 있었습니다.

그 격정적인 감정을 내가 직접 마주하고 느낀 수치심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그 가시들에 내 머리가 찔렸고 피가 얼굴로 흘러내렸습니다. 찔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통증은 없었습니다.

채찍을 맞으시는 장면에서는 채찍 갈퀴가 내 등과 옆구리의 살점을 찢고 뜯어 냈습니다. 통증은 없었지만, 뼈에서 살점이 뜯기는 그 느낌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손에 차가운 못이 박혀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에 울려 퍼진 '쇠망치 소리'가 조금 전에 들은 그 소리였습니다. 그 차가운 못과 날카로운 쇠망치 소리는 비로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게 했습니다.


그때까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죄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20년이 넘는 세월을 우울증과 온갖 자해하는 심리들로 고통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죄인임을 인정하고 나니,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사소한 죄들'과 '나만 아는 죄'와 '공개적으로 질타를 받은 모든 죄들의 기억들'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습니다.

분명, 딱히 남들보다 심한 죄를 지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죄를 판단하실 때, 상대적으로 경중을 재는 것은 아니라고, 절대적으로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심판의 유무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죄 사함은 자기 죄의 자백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것임도 알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눈에서는 눈물이, 코에서는 콧물이, 입에서는 침이, 온몸에서는 땀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통곡을 이은 통곡에 온몸이 돌덩어리처럼 굳어버렸고, 혀도 굳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통곡은 하지만, 목에서는 낮은 신음만 있을 뿐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각인시켜 주신 것은, ‘나는 살아있다.’ 였습니다. 어제 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고, 자기 백성에게 고난당 해 죽으신 그 일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죽어서 자신의 육체를 상실한 영만 남은 것이 아니라, 그분의 육체마저 하나님의 거룩으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원론자들의 말처럼 육체는 속된 것이고, 영은 거룩하다는 주장과 달리, 주님께서는 영과 육이 모두 거룩하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죽고 싶어서 안달이던 나는 그 가르침으로 인해 '사망의 거짓 교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오랜 후에 알게 된 것인데, 사람의 육체와 영이 하나일 때가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둘이 분리된 것은 사람이 아니랍니다. 사람의 주검이 사람이 아니듯, 육체가 없는 영도 역시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렇담, 사람은 뭐고, 영은?, 육체는? 뭐지? 싶은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즉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큰 은혜의 경험을 했음에도, 내 속에 있는 악한 습관과 심한 우울증, 그리고 죄에 대한 불감증에는 딱히 큰 변화나 성장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이후로도 여전히 악한 습관은 어느 때든지 나를 뒤 흔들 때가 있었고, 무책임하게도 내가 상처 준 이를 그냥 버려두고서 염치없게도 주님 앞에 엎드려 죄사함과 구원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죄가 크든 작든,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누구든지 주께 나아오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세상 만민이 다 죄인이며,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그러나 주께 나오는 자는 주께서 절대 결단코 거절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알게 하심이 넘 기쁘고 감사하긴 한데, 그런데, 내게 상처받은 이에게뿐 아니라, 주님께까지 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오히려 더 커져버렸습니다.


또, 한 가지 알게 해 주신 것은, '시간이란 영원 속에 있는 하나의 흐름'이란 것입니다.

시간의 틀 속에 속박되어 있는 삶이 너무 지겹고, 무기력해서 늘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간의 저편 영원을 보게 되면서 내 속에서 이글거리던 분노는 가라앉았고, 세상을 향한 증오도 수그러들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길 줄 아는 안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세상은 죽음과 악행이 공존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지으신, 극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실기실에는 나를 싫어하고 나도 싫어하는 학우들만 남아서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과 섞이기 싫어서 멀치감치 떨어져 그라인더로 쇠파이프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그 불꽃이 신나 통에 튀어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당황한 나는 평소에 그렇게도 꼴 보기 싫었던 그 학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봤습니다.

그들의 눈빛에 담긴 공포와 함께 어린아이 같은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내가 저 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되었구나....'라는 공포가 밀려왔고, 그들은 너무 존귀해 보였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아름다워 보였고, 미워하던 마음은 어느새 간절한 미안함으로 변했습니다.


다행히 순발력 있는 선배, 그러니까 내가 그중에서도 심하게 싫어하던 한 선배가 소화기를 찾아와 한 순간에 불길을 꺼버렸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내 마음이 녹으니, 간절한 미안함이 되었고, 곧이어 형언할 수 없는 감사가 되었는데, 그런데도, 안타깝게도 그들과 화해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고, 서로 불편한 상태는 졸업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후로도 노골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이들이 늘 있었는데, 내가 꾸린 가정에도 있었고, 직장에도 있었으며, 친구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큰 싸움이 되었을 일을 참아주거나, 싸우더라도 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내의 한계가 여전하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행은 늘 친구처럼 내 옆에 있습니다.

keyword
이전 06화고백 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