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시각화
얼굴 좌우에 위치한 두 안구는 '한 초점'을 맞춰 보기 때문에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거리도 보다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시야각은 120º 내외로 그리 넓지 않습니다. 그 마저도 90º를 넘어가면 '보는 것이 아니라 인지하는 수준'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사슴이나 말 같은 채식동물은 눈이 두개골의 양 옆에 위치해서 사람보다 더욱 넓은 좌우 200º 이상의 시야각을 봅니다. 그러나 사람만큼 입체적으로 보지는 못합니다.
'안구가 크고 작음에 따라서도 시야각과 가시거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양이 안구는 사람 눈 보다 작고, 사람의 안구는 고래의 눈 보다 작은데, 안구가 클수록 시야각이 넓고 가시거리는 멉니다. 고양이가 사람을 보면 '사람이 10층 건물'처럼 보이고, 사람이 고양이는 한눈에 볼 수 있어도 고래는 한눈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 신체 크기에 맞춰진 ‘시야 각과 가시거리의 한계'가 있습니다.
'환경에 따른 시력 차이'도 있습니다. 광활한 만주 초원이나 아프리카 광야 지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식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밀집 도시나 밀림에서 거주하는 사람의 시력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사람은 그런 시력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만, 그러나, 단지 안구의 크기가 가진 한계 범위 안에서의 차이이며, 활동에 필요한 정도로 맞춰진 적당한 시력입니다.
그 한계 속에서 눈은 '시선의 저편에 있는 하나의 소실점'을 인식하고, 눈과 소실점 사이에 있는 사물과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가시범위 공간의 크기'도 인지합니다. 때문에 방 안, 복도, 넓은 평지 같은 환경조건에 따라서 관찰 범위는 달라집니다. 방 안에서 사람을 보면, 가까이에서 표정까지 볼 수 있고, 복도에서는 전신을 볼 수 있으며, 넓은 야외지에서는 사람 형상은 봐도 멀어지면 지인이라도 누군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눈은 '시선 방향'을 중심으로 상하 120º 이내, 좌우 180º 이내의 시야각 범위 안에서 '입체와 공간'을 인식하는데, 하나의 초점을 중심으로 둘레를 단계적으로 인식합니다. 좁은 ‘초점범위’ 안에서는 대상의 디테일을 관찰하고, 작은 글씨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범위를 벗어나서 대략 30º 이내 ‘형상범위’ 안에서는 사물의 형상, 색, 움직임까지는 식별하지만, 관찰은 어렵습니다. 그 범위를 넘어, 시야 각 90º 이내 ‘색/움직임 범위’ 안에서는 색과 움직임만 인지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는 짐작만 될 뿐입니다. 곧 사람의 시야각의 90º 넘어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입니다.
또, '상하'보다 '좌우 시야각'이 더 넓은데, 이는 안구가 얼굴의 좌우에 위치하고, 눈꺼풀은 좌우로 길면서 위-아래로 열고 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 눈이 보는 공간은 '위아래가 좁은 타원형'입니다.
그런 특성을 고려하면, '화면 전체를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은 눈이 실제로 보는 이미지가 아닙니다. 눈이 사람의 머리에서 발까지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으려면, 눈이 수 십 개가 있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래서, 보는 그대로 그린다면 초점을 중심으로 외곽으로 벗어나면서 점점 흐리게 그려야 합니다. 하지만 척추, 목, 안구가 각기 움직이면서 초점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대상의 부위별 관찰에 익숙하고, 사실적인 그림마저도 결국은 한 초점으로 보기 때문에 어색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상의 '크기 비례는 언제나 인체가 기준'이 되고, 대상의 위치가 근경에 있는지 아니면, 중경 또는 원경에 있는지에 따라 '크기 비례'를 맞춥니다. 예를 들면, 근경에 사람을 그려 놓고, 원경에는 사람과 같은 크기의 고양이를 그려 놓으면, 그 고양이는 집채만 한 크기로 인식됩니다. 또 코끼리가 멀리 있다면 한눈에 볼 수 있지만, 가까이 있다면 신체의 일부만 보게 되는 것도 같은 '원근의 원리'입니다.
때문에 1, 2, 3점 투시도의 적용도 '거리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밀한 그림은 1점 투시가, 공간 표현에는 3점 투시가 흔히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그런 변화를 기하 원리로 정리한 것이 '면 분할법과 선 원근법’입니다.
'형상의 실체'는 눈이 보는 모양과 다릅니다. 눈은 형상의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항상 전체 형상의 일부만 보고 앞뒤, 좌우의 원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찰을 하면 '실체의 전체 구조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또는, 눈을 감고 만져보면 전체 실루엣을 인식할 수 있는데, 그러나 세부 형상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그 마저도 실체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눈이 보는 일부 형상'과 '인식하는 전체 구조'와 '만져서 인식된 실루엣' 그리고, '그 형상, 구조, 인식에 따라 만든 조형물'은 모두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당연히 '실체와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미술가는 '보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을 닮게 그리거나 만들 수는 있지만, '실체는 형상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유는, '실체'에는 '원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실체가 본질과 같은 것'이라면, 형상의 본질은 3차원 물리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전체의 일부라도 본다는 그것이 '본질이 실존한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원근’은 멀거나 가까운 거리 distance입니다. ‘원근법 perspective’는 거리차이에 있는 변화를 '기하학 관점으로 보는 체계'입니다. '투시 penetrate'는 불투명한 사물의 앞뒤 양옆, 겉과 속, 전체를 반투명으로 뚫어 본다는 개념입니다. 즉 ‘투시 원근법’이란 “투시 실선들이 소실점을 향할 때, '실선들의 기울기와 거리'에 따른 ‘사물의 크기 변화'를 보고, '겉과 속’의 구조를 본다”라는 '관찰 방법'입니다.
그 관찰을 기하구조로 살펴보면, 그 핵심에 '관찰자의 시선'이 있습니다. 그 시선이 대상을 향하고, 그 선상에 '초점'이 맺힙니다. 그리고 시선의 저편에 '1점 투시, 공간 소실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눈은 항상 ‘1점 투시로 입체와 공간을 보고', '1점 투시 소실점을 중심으로 다른 소실점들의 방향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1점, 2점, 3점 과 4점, 5점 투시도의 구분은 '눈이 보는 사물이 몇 개의 소실점을 가지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원근법 ‘Perspective’와 차원 ‘Dimension’이라는 단어를 구별해 봅니다.
'원근법 Perspective'에는, ‘본다 view'와 ‘관점[시점] perspective' 개념이 구분됩니다. '본다 라는 것은 '관찰자의 단순 시각 행위'이며, ‘관점이나 시점’은 ‘대상의 겉과 속을 입체적으로 조망[관찰]한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어휘로는 ‘point of view’가 있습니다.]
즉, see -단순히 뭔가를 볼때의 경우와 look -의식적으로 바라보는 경우, 그리고 watch -집중해서 보는 경우의 차이를 적용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원근법'이란 ‘사물의 입체 구조와 거리에 따를 크기 변화를 관찰하는 체계’입니다.
경우를 보면, 3점 투시도 'Three point Perspective’는 '사물의 겉과 속, 입체 구조 전체를 세 소실점에 의한 원근'에 따라 관찰합니다.
그 관찰 요소에 '소실점을 향하는 실선 기울기'가 있고, '거리차이에 따라 변하는 크기 비례'가 있습니다.
'차원 Dimension'은 '운동 가능한 범위'를 구분하는데, '점의 범위를 0차원', '선이 진행하는 방향은 1차원', '면이 차지하는 평면적은 2차원', '입체적 운동이 가능한 공간은 3차원'입니다. 그래서, 3차원 three-dimension은 0차원, 1차원, 2차원을 모두 포함합니다.
간혹, 3-dimension의 '3이 세 소실점'이라고 믿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차원개념은 '눈이 사물을 보는 시점[perspective, point of view] 개념이 아닌 공간 개념'입니다.
또 한편, ‘dimension’은 ‘차원’이라는 뜻과 함께 ‘크기, 규모’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곧, '크기-규모의 차이에 따라서도 차원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너무 작아서 볼 수 없는 세계를 미시세계’, 너무 커서 보지 못하는 세계를 거시세계’, 그리고 '관찰자가 볼 수 있는 환경인 가시세계’를 나누는 차원 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