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면 분할법 03화

미술사 속의 기하학

인식의 시각화

by Tony C

미술사 속의 기하학


차이가 만든 조화 & 대립

차이의 인식

geomery_world_001.jpg 헥사그램 Hexagram & 메타트론 큐브 Metatron's cube

수학에는 재능이 없어 일찌감치 포기했는데, 기하학은 흥미로웠습니다. 기하학이 형식은 다르지만 '미를 추구하는 동일한 지향점'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평면 도형을 보면 그 도형을 이루는 '길이와 각'이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착시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배우면서 또 다른 영역을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딱히 필요성도 없다는 어린 마음도 있긴 했지만, 재능이나 전문성 같은 것에 매이지 않고 단지 필요에 따라 조금씩 살피곤 했습니다. 차차 '자연미와 예술미 그리고, 그에 연관된 원리들'을 하나 둘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황금비'와 '황금 분할'이 있었습니다. 그 원리가 만든 '원근법'을 볼 때는 머리가 터질 듯 재미있었습니다.

상식보다 좀 더 알고서 돌아보니, '지금 아는 것을 몰랐던 때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단지 '미적 감동을 주는 그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미적 감동에 더해, "미의 원리를 정립해야 '자기 만의 미술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던 겁니다.


그 시기에는, 작업 과정에서 항상 느끼는 어떤 결핍감이 있었는데, '내가 그렸는데,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느끼는 불편함이었습니다. 그런 불만족은 내 미술세계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창조 섭리와 미의 본질’은 보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한 채 '단순 재미'만 쫒았기 때문입니다. 기하학과 미술의 형식이 다른 만큼, 두 영역이 어우러진 조화들을 이해하고 숙련하는데도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런저런 헛수고의 반복에 더해, '미술과 직결된 타 영역들'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넓은 범위 때문에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다른 영역은 '평면-입체 기하학', '물리학과 색채학', '미술사', '철학', '미학', '신학' 같은 분야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곧 얼어버렸고 접근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림은 행위의 산물이라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형식이 다른 영역까지 넘보는 노력이 너무 귀찮고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미의 본질을 알아가는 영역에 내가 있다는 자각" 그리고, '각종 호기심과 결핍감'은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별 수 없이 조금씩이나마 들여다봤습니다. '무지에 대한 자각과 나태'가 서로 충돌하고 있던 시기였고, 때론 이 세상의 속박에서 분리라도 된듯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러시아 구성주의

tatlin's_towert_1919_oo.jpg 블라디미르 타틀린,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 1919

그 과정에서 미술사를 보다가 '기하학과 미술이 만난 장르'가 있었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20C 초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나타난 구성주의[Constructivism]’는 공산주의의 정치적 도구였습니다. 미술의 순수성도 빈약해서 얼마 안 되어 곧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조가 추구한 사상과 시도들은 독일의 바우하우스에도 영향을 끼치고 추상 미술의 토대가 되면서, 미술사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기하학적 단순미'를 극단적으로 강조해 "장식적 요소를 제거하고 '조형성의 본질'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곧 '해체주의, 기계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건축에서는 '참신한 공간 디자인'을 시도했는데, 그 영향력이 이후 '추상 미술'의 토대가 된 것입니다. 관련 인물은 칸딘스키가 있고, 블라디미르 타틀린,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같은 이들입니다.



미술사 속의 기하학

기하학

기하학은 고대 수메르, 바벨론,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의 고대 종교에서 수학, 천문학과 더불어 중요하게 연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철학이 섰던 반석'이었고, '건축에서는 시대를 초월한 필수학문'입니다.

즉, '고대 문명은 '기하학이라는 반석 위에 철학과 건축 문명'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문이 열릴 때는 미술에 '선 원근법'을 선물해서 '회화의 평면 화면에 공간을 그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이후로 '입체-공간을 담아내는 르네상스 화풍'을 토대로 여러 미술사조들이 등장하면서 기하학은 서양 미술사에서도 빠질 수 없는 필수영역이 되었습니다.


그 기하학을 문맥에 맞춰 요약하면, '각기 다른 차원[dimension]을 분리가 아닌 조화로 보는 눈'이고, '세계를 형성한 이치의 '단순성과 다양성을 대립시키지 않고 서로 연결된 '하나의 미학'으로 정립한 것'입니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시작점에 브루넬레스키가 창시하고 마사초가 최초로 그려낸 '선원근법[1점 투시도]'에 그 기하학이 있었고,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거장들의 절정기에 연구된 각종 원근법 시도들에도 있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자연과학과 철학이 신학과 대립해 문화와 사상이라는 조류'를 이끌어가는 중에, 미술계에서는 새로운 시도나 혁신의 자취는 사라지고, 기존 형식의 답습만 남았습니다.

대표적으로 18C, '프랑스의 아카데미'에서는 창의성 개발이 결여되고 장인 양성만 있는 '도제 교육'이 있었고, '작품 소재에 등급을 매기고, 서열화' 하면서 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주어질 기회를 협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에 더해 "선이 중요하냐 색이 중요하냐" 같은 파벌 논쟁으로 혁신의 기회마저 차단했습니다.

결국 틀에 박힌 형식만 남아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논쟁한 '선에는 기하학이 있었고, 색에는 자연과학, 지금으로 말하면 물리학'이 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당시의 미술형식은 '기하학에 자연과학'을 함께 접목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점 선 면, 입체와 공간의 기하학'은 르네상스 전성기를 지나면서 미술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 동시에, 자연과학과 철학을 통해 문화, 인문, 사상영역에까지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그러나, 미술에서는 '원근법 창시'를 능가할 만한 다른 혁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학 기술력에서 자연미를 담아내고 예술미를 능가하는 산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인쇄기를 비롯해 사진기, 영사기, 증기 기관, 전기, 전화 등의 산물들이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우후죽순 개발되었는데, 이는 미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창작'입니다. '창의성이 미술에서 과학 기술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이후 이룩할 '거대문명의 토대가 되려는 기하학이 쏘아 올린 첫 화살'이었던 셈입니다.


기하학의 분열 & 대립

대항해 시대로부터 종교 전쟁과 정복과 혁명의 시대를 지나면서 '매너리즘에 빠져 버린 미술계는 그 한계를 혁신하지 못했고, 도리어 각종 대립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 대립의 시작은 19C 중-후반, 기존의 '아카데미즘[Academism]에 대한 반동으로 리얼리즘[Realism]과 인상주의[Impressionism]가 등장한 것'입니다.

당시 미술사조의 주류였던 아카데미즘은,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규격화된 인체 비율, 숙련된 데생, 원근법의 완벽한 구현'과 같은 자질을 미술학도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작품제작의 테마 역시, '인물화'를 중심으로 역사화, 종교화를 비롯해 신화를 담는 것에 높은 가치'를 뒀고, 따라서 '등급에 의한 차별'도 심했습니다.

그랬던 기존 대세에 대립하며, '자연과학 즉, 물리적 현실의 실제 모습과 순간의 인상을 작품에 담아내는 이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당시, 아카데미즘의 주류 화가는 '윌리엄 부게로[William Bouguereau, 1825-1905]'였는데, 그의 작품은 '정말 완벽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현실에서 미술세계로 분리'해서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때문에 신비로운 미적 감동이 있고, 그 바탕에는 '이상적인 기하학의 추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산업 혁명을 이룬 '혁명사상'이 미술가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면서 여러 화가들이 등장했는데, '구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같은 인물들이 부게로와 동시대를 살면서 대립구도를 만든 것입니다.

쿠르베는 '리얼리즘'으로, 모네는 '인상주의'로 '부게로의 아카데미즘'을 저격했습니다.

부게로는 그의 일생이 유복했지만, 그의 사망 이후 리얼리즘과 인상주의 그리고 추상주의에 이르는 사조들의 난립과 혁명사상의 대세는 그의 작품과 이름을 미술사에서 삭제했습니다.

필자가 부게로의 이름을 처음 듣고 그의 작품에 감동한 것이 1990년대 후반 경이었으니, 그 작품의 대단한 완성도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근 백 년 동안이나 매장되어 있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로 밖에 알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립 이후로 미술계는 '추상주의'가 주류로 자리매김 합니다. 그 영향으로, '아카데미즘과 대립한 쿠르베의 이름과 작품'이 비록 미술사에 기록되었지만, '너무 적나라하게 현실 묘사된 그의 작품은, [부게로의 경우와 큰 차이 없이] 그 가치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인상주의 작품'은 그 작품 소재에 '대중성'이 있기도 하고, '빈센트 반 고흐'의 고단한 인생이 '상품성 있게 잘 포장'되어 그를 중심으로 대중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중요성은 미술사에서 크게 다뤄질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인상주의의 속성을 보면, '기하학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배제하고,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의 속성 곧, 빛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작품에 성공적으로 담아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고리타분해져 버린 기하학을 혁명적으로 재해석했고, 그 위에 자연과학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 과정을 '혁신이 아닌 혁명'이라 표현한 이유는, '기존 사상과 신 사상의 대립'은, 르네상스 때처럼 '미술과 기하학이 만나서 일군 혁신'이 아닌 프랑스혁명과 같은 혁명이 미술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반합[Thesis-antithesis-synthesis]의 기하학

기하학과 건축과 미술이 각기 영역에서 정[These]로 있다가 창작자라는 주체자들이 세 영역을 마스터하면서 합[Synthese]을 일구어 낸 혁신이 르네상스 시기에 창시된 '투시 원근법 -1, 2, 3점 투시도와 공기 원근법' 입니다. 그리고 그 '합'이 '정'이되어 고착되었을 때, 그 정에 혁신적인 합을 일구어 낼 만한 천재들의 시도가 뒤따르지 못했고, 점점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게 되면서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Antiithese]의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곧 리얼리즘과 인상주의 그리고 이어지는 추상주의 사조들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러시아의 구성주의를 대표적으로 기존의 미술 형식에 대립한 대부분의 사조들은 그 지적 기반이 또한 '기하학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입체와 공간을 거부하고, 자연미'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한 '구성주의, 해체주의, 추상주의' 같은 여러 사조들은, '기하학의 단순성', 즉 그들이 '본질'이란 단어로 묘사했고, '자연의 태동을 일군 근본 이치'로써 '점, 선, 면의 단순성' 만을 강조했습니다.

비유하자면, '세계와 자연의 근본 원리를 보는 기하학이라는 눈'에서 '검은 눈동자'만에 중요한 가치를 인정하고, '안구, 각막, 눈꺼풀, 눈물 등, 눈의 구조를 이룬 나머지 전체는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 구조는 각각의 모든 부위가 조직화 되었을 때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을 해체주의적 관념으로는 인정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편, 회화의 경우 '벽이나 캔버스같은 평면 화면'에 그리는 것이라서 '입체나 공간 표현을 제거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타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체물인 조각'이나, '입체물로 공간을 만드는 건축'에서까지 '평면 차원만을 추구한다'는 극단적인 강조를 했고, 예술의 모든 영역으로까지 전개했습니다.

그것은, '극단의 전체주의적 성향'이었습니다. 때문에 '회화적 순수성이 없던 구성주의의 생명력은 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추상주의에서 드러난 순수성은 기존에 없었던 한 장르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극단에 치우쳐 '본질을 기하학적 단순성'으로만 규정한 현대 미술의 개척작들은, 기존의 모든 다양성을 부정하고, '혁신이 필요한 과도기에 혁명적 대립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작게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정치적 상황, 심하면 전쟁까지 이용하면서 기존 경향을 타파하려 했고, '자신들 만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그들만의 성과'는 한 세기를 넘어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달리 보면, '주류였던 미술계의 폐쇄적인 경향'이 분명 그 대립의 실질적인 이유를 제공했지만, 그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즉, 그 근본 이유는 '돈과 명예를 위한 헤게모니 다툼'이 분명해 보입니다. 지금의 독일 땅에 참혹한 역사를 만들었던 '30년 전쟁'의 명분이 '종교의 자유였으나 실질적인 원인은 돈과 권력'이었던 것처럼,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가 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좀 더 '현명한 개혁의 길은 없을까?' 싶어, 그들의 후진된 입장에서 지난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현대 미술의 사조들이 추구하는 "그 미의 본질, 곧 기하학적 단순성은 원근법을 있게 한 다양성과 변화의 본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모든 장르 구분을 떠나 순수 미술에서는 '상식 수준 이상의 기하 원리를 알고 작품에 적용할 때 완성된 작품'에서 '신비한 아름다움'을 보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결과물로 나타난 작품은 대체로 정제된 단순성을 보이지만, 그 단순성에는 심도 깊은 기하원리가 두텁게 깔려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변화의 원리 그리고 근본의 단순성의 총체를 이루는 그 본질은 분리됨 없는 한 덩어리"로 나타나는데, 다 빈치의 모나 리자에도, 몬드리안의 작품에서도 동일한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얽히고설킨 역사를 관조하면서 가진 생각은, ‘미술은 사람 이성을 시각화하면서, 또한 창조 섭리도 보여주는 독특한 영역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작품들을 탄생시킨 것은 ‘황금 비[Golden Ratio, Divine Proportion]와 황금 분할[Golden section]의 원리'인데, 그 원리를 알게 되면서 '안정된 구도와 아름다운 비율 변화'를 보게 되고, 그래서 오래전 그것이 '원근법의 원리'가 된 것입니다.



추상 미술

추상이란?

download.png 피타고라스 본인이 증명한 '피타고라스 정리, c²=a²+b²'
몬드리안, [Composition ll in Red, Blue, andYellow] 1930, 캔버스 유채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an,1872-1944]의 대표작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랑의 구성 ll'와 피타고라스 본인이 증명한 ‘피타고라스 정리의 증명‘을 나란히 보면, 두 구성이 거의 동일합니다. 단지 몬드리안의 작품에서는 대각선이 없고, 색이 있다는 차이뿐입니다. 그는 기하학적 ‘구성[Composition]으로 균형 잡힌 황금 분할을 그의 작품에 담아낸 것'입니다.

즉, 미술과 기하학의 만남에는 '서로 다른 영역이 만나 또 다른 장르를 만들거나, 서로 닮은 모습으로 하나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소통'이 있습니다.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 [Neo-Plasticism] 사상'으로 미술이 ‘탈 자연화 [denaturalize] 즉, 자연으로부터 탈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양성과 변화가 난무하는 자연은 만물 생성의 본질인 점 선 면의 절대적 단순성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미술은 사실적인 자연 재현을 탈피하고 본질의 절대 단순성으로 돌아가는 순수한 추상을 지향해야 한다'라고 본 관점이었습니다.

그의 그러한 견해는 폴 세잔에서 조르주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등의 입체파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신지학에 녹아 있는 신비주의적 종교, 철학, 음악을 배경'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그런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미술의 모든 장르를 제거하고 신조형주의 추상만 남아 미술세계의 유일한 절대 가치'가 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독단이고 불합리한 억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조형주의를 비롯해 미술이라는 거대 필드 위에 다양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각종 이론, 사상, 장르들이 번성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창조의 섭리가 번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전체주의, 공산주의 같은 사상의 시대에,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던 그 시절에, 그런 정치적 사상적 배경과 맥을 같이했던 미술 사조들의 일면에는 좀 더 포용력 있는 '미학'이 필요했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추상의 흐름

20201130193722_hihfhbge.jpg 폴 세잔, [생트 빅투아르 산] 1902~06,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1907년에서 1914년의 짧은 기간 동안 '입체파'는 미술의 단순성을 더욱 진전시켰습니다. '폴 세잔'은 자연물을 '원기둥, 구, 원뿔 같은 입방체들로 재해석'했는데, '소재 관찰을 1점 투시 시점을 벗어나, 여러 시점에서 관찰된 것으로 작품화 하는 것이 형상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그의 시도였습니다. 그 시도를 기하학적으로 보면, '한 대상을 한 번에 다각도에서 볼 때 평면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어 작품 소재를 '평면 기하학 구성으로 재해석하는 분석적 입체주의'로 까지 진전됩니다. 색채 사용도 녹색이나 황토색 등 몇몇 색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면서 '절대 단순성'을 추구했습니다.

화면 캡처 2023-07-25 043138.jpg 피카소, [만돌린과 소녀] 1910

g_braque_1908.jpg 조르주 브라크, [에스타크의 집 House at Estaque]' 1908

'조르주 브라크'는 작품 소재의 '형상 자체를 완전히 해체하면서 극단적인 단순화'를 추구했는데, 그로 인해 작품에서 구체적인 형상은 모두 사라진 '완전한 추상'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는 작품소재가 무엇인지 '연상만 될법한 오브제'를 사용하면서 '콜라주'와 '파피에 콜레[papiers colle]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즉 2차원 평면에 3차원 입체 공간을 표현했던 고전적 경향을 완전히 버리고, 캔버스의 2차원 평면성을 그대로를 살려 '평면 미술의 작품성을 기존과 전혀 다르게 정립'한 것입니다.

그런 파격이 '몬드리안'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의 추상 작품의 성공으로 '추상이 미술세계에서 지배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신지학 & 추상미술

화면 캡처 2023-07-25 043613.jpg 칸딘스키, [흰색 위에] 1923

몬드리안은 신지학 협회를 창립한 '헬레나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가 주장한 세계를 이루는 기하학적 견해를 작품화했습니다.

그녀는 '하늘이 수직선이며 남성적 이미지이고, 땅은 수평선이며 여성적 이미지'로 보았고, '수직과 수평이 교차한 직각이나 십자가를 생명 탄생의 상징'으로 보았습니다. 상징과 실제의 분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독단적 관점일 뿐입니다. 그런 그녀의 견해를 몬드리안이 숭상하며 '추상 미술로 작품화 했고, 큰 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신지학[Theosophy]'은 '지상의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는 시도로 종교, 사상, 철학, 과학, 예술 등 인간 이성의 모든 영역들을 '단 하나의 보편 진리'로 묶어 내려했습니다. 즉 자연 만물과 사람 이성과 사상에 있는 모든 다양성과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런 '전체주의적 단일성'은 그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반동으로 몰아 탄압할 수 있는 '배경사상'이 됩니다. 간단히 말해, 미술이 정치에 이용당한, 이단도 아닌 사이비 입니다.


그런 편협한 사상은, 진리를 향하는 단 하나의 길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인정하는 개신교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켜 온 은밀하고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여러 교리 논쟁과 함께, 이단과 정통의 대립 속에서도 질기게 명맥을 유지해 왔는데, 그것이 문화영역에서 '종교적 학문의 모양새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그런 흐름이 교회 안에서는 '신비주의와 영지주의 색채를 화려한 논리로 포장하면서 원래의 기독교리를 변질'시켰고, 교회 밖으로는 음악 미술 분야에 까지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것입니다.


'칸딘스키'도 그에 매료되어 자신만의 추상 미술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즉 각종 문화영역에서의 영향력을 가지고 민중의 사상을 주도하면서 정치-사회의 혼란을 야기해 모든 것을 통합하려는 그런 시도는 어쩌면, 근본을 잃어버리고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인간 이성이 필연적으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산물'이 분명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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