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 내가 편하고 좋아하는 것 위주로 고릅니다. 이제는 굳이 어울림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괜히 남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색이 튄다든가, 계절에 맞지 않는다든가,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에 정작 내가 좋아하는 옷은 옷장 속에서만 묵혀두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아내와 외출을 준비하다 보면 서로 묻습니다.
“나 어때?”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괜찮아. 예뻐.”
그 말에 특별한 분석이나 판단은 없습니다.
그저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옷이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가 굳이 평가할 이유도 자격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만족하고 편안하면 그만입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꼭 한 마디 덧붙입니다.
“아무도 자기한테 신경 안 써.”
그 말을 할 때면,
그 말은 아내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어쩐지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내가 나에게 외치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오랜 세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왔을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정작 나는 나를 돌보지 않은 채, 남이 날 어떻게 볼까만 고민했습니다.
편한 운동화를 두고,
출근길에는 일부러 굳은 구두를 골랐습니다.
답답한 그 신발을 신고 수없이 걸었던 시간들.
그 덕에 발가락은 기형처럼 굽고, 굳은살은 뼈처럼 단단해졌습니다. 아프다는 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그냥 참고 또 참으며 걸었습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편안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물론 격식이 필요한 자리는 있습니다.
회사에는 정장 한 벌과 구두 한 켤레쯤은 늘 비치해 두고 다닙니다.
그건 ‘남을 위한 배려’ 일뿐,
‘나를 속박하는 틀’이 되게 하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 외의 모든 시간과 공간은 이제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너무도 모질게 살아온 시간들, 이제는 나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도 괜찮은 나이입니다.
주말에 처가에 다녀오며, 야위어가는 장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안쓰러우면서도, 어쩐지 제 삶의 해도 함께 저물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제 자식들이 저를 걱정합니다.
“아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내가 그렇게 신경 써왔던 그 많은 것들, 그것들은 대부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편한 신발을 신은 채
마음이 시키는 방향으로 조용히 걸어갑니다.
이제야 비로소,
조금은 ‘나로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