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인생의 큰 장면만을 기억하려 합니다.
승진, 합격, 결혼, 여행과 같은 기념비적인 순간들만이 진정한 기쁨이라 여기며, 그 외의 일상은 그러한 순간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깨닫게 됩니다.
우리 삶을 진정으로 지탱해 주는 것은 오히려 하루하루의 평범하고 소소한 순간들이라는 사실을요.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 속에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요즘, 문득 가을바람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지난 주말, 아버지를 뵈었을 때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오는 게 느껴지더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렇게 더운데 무슨 말씀이세요”라며 웃어넘겼지만,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며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찬물을 틀어도 미지근하게 느껴졌던 수온이, 오늘은 분명히 시원하고 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여전히 더운 날씨 속에서도 오늘 아침 햇살에는 어렴풋이 깃든 가을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막연한 기다림이 아닌, 피부로 전해지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가을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 사실이 반가운 설렘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이처럼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 속에서도, 그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기쁨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계절의 미묘한 변화에 마음을 열 수 있는 나이 듦의 여유, 출근하자마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잔잔한 위로... 이러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도 우리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거창한 성취보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기쁨들이야말로 삶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이러한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무심히 지나쳐 버리곤 합니다. ‘행복은 특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특별한 날에만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초대할 수 있는 일상의 친구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친구를 알아보는 마음의 눈을 잠시 잊고 지낼 뿐입니다.
중년의 시기를 지나며 이제야 비로소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소소한 즐거움을 음미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사의 표현을 넘어서, 삶을 존중하는 태도이자 오늘이라는 시간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을요. 그러한 태도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에 휩쓸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조용히 나 자신에게 설렘의 질문을 건네어 봅니다. “오늘 나를 미소 짓게 할 작은 기쁨의 순간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오늘을 더욱 따뜻하고 기대감 있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렘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소소한 순간들이 조용히 다가와 우리 마음을 두드릴 것입니다.
삶은 거대한 서사시가 아니라, 작고 섬세한 시구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이라는 하루 속에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소하지만 귀한 기쁨의 찰나들을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