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라, 자라라, 꽃 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by 가치지기

어느 날 신문을 읽다 '우리는 머지않아 먼지가 되리니'라는 책 제목을 인용한 칼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글은 유독 자연과 계절의 변화, 나이 듦과 죽음에 관심이 많았던 헤르만 헤세의 삶과 사유를 사계절의 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시는 바로 봄을 노래한 「봄의 목소리」였습니다.



“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이들은 안다./ 살아라, 자라라, 꽃 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고 새싹을 틔워라./ 몸을 내맡기고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노인들은 안다./ 노인이여, 땅에 묻히거라,/ 씩씩한 소년에게 그대의 자리를 비워줘라./ 몸을 내맡기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 헤르만 헤세 '봄의 목소리'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마음 한편이 뜨겁게 일렁였습니다. 짧은 시이지만 그 안에는 인생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이 계절의 속삭임으로 녹아 있었습니다.


“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이들은 안다"라는 구절은 생명이 움트는 경이로운 순간을 떠올리게 하였고, “노인이여, 땅에 묻히거라”는 말은 죽음 앞에서도 자연의 순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평온함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시를 통해 저는 삶이란 단순히 ‘사는 것’을 넘어 ‘자라고, 피우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하나의 순환 과정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자연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단어는, 무더운 여름처럼 지치고 고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동감 있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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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 존재의 의미를 자각하며 하루하루에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


삶은 때로 고되고 반복적으로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생명이 주는 기회와 가능성에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축복이며 선물입니다.


매일 눈을 뜨고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적 같은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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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끊임없는 성장을 요구합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이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몸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자라지만, 내면은 의식적으로 돌보지 않으면 성장을 멈추게 됩니다.


몸의 성장이 멈춘 어른은 그때부터 마음의 성장을 시작해야 합니다. 어른의 성장은 곧 마음의 깊이와 통찰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배우고, 실수 속에서 자랍니다.


성장은 때로 아프지만, 그 아픔은 우리를 더 넓고 깊은 사람으로 이끌어 줍니다. 내면의 성장도, 키가 자랄 때 겪는 성장통처럼 아픔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꽃 피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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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 꽃은 재능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으며, 작은 친절이나 나눔일 수도 있습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듯, 우리의 삶도 피어나야만 의미를 갖습니다.


모든 피어나는 꽃은 열매를 꿈꾸며 피어납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 꽃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열매를 맺고, 누군가에게 향기가 되어 다가갈 것입니다.


희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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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절망 속에서도 다시 걸어가게 하는 힘입니다.


아무리 어두운 밤도 새벽을 이기지 못하듯, 희망은 우리를 삶의 다음 장으로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살아갑니다.


희망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일수록 우리가 붙잡아야 할 손은 바로 ‘희망’입니다.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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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입니다.


우리의 온전히 성장한 어른의 모습은 결국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일은 우리를 가장 자연에 가까운 인간답게 만듭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존재를 존재답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은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근원이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불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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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몸을 내맡기고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삶이라는 계절을 충실히 살아낼 때, 죽음조차 두려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귀환이 된다는 지혜를 말해줍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헤세가 또 다른 시에서 말하듯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더 높은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것, 또 한 번 꽃 피우는 존재의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봄은 지나갔지만, 봄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 목소리를 마음 깊이 담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새로이 살아나고, 자라고, 꽃 피우고, 희망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길이며, 우리가 실천하며 묵상해야 할 삶의 지혜입니다.


숨이 차오르는 무더위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지나갈 계절을 알고 있습니다.


생명이 뜨겁게 살아내는 지금 이 순간이, 곧 조용히 물러날 날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위안이 됩니다.


살아 있음의 고단함 속에서도 계절의 지혜를 기억하며, 헤르만 헤세의 가을을 떠올려 봅니다. 지친 마음 위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듯, 삶의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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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바람이 불어오고

머지않아 죽음이 다가와 수확하리라.

머지않아 회색 유령이 와서 웃으면

우리 심장은 얼어붙고

정원도 그 화사함을

생명도 그 빛을 잃으리라.


함께 노래하며 즐거워하자.

머지않아 우리는 먼지가 되리니.


– 헤르만 헤세, 「가을」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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