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동료의 아버님이 갑작스럽게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습니다.
정밀 검사를 해보니 암이 여러 곳으로 퍼져 손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녀와 함께 웃으며 일상을 나누던 아버지가 이렇게 한순간에 위급한 상황에 놓이시다니, 자녀로서 느낄 상실감과 당혹감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평온하게 지나가는 일상 속 시간도 어느 날 갑자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게 주어진 이 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시간을 살아갑니다.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하고, 쉬고,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며 또다시 힘을 내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시간을 ‘관리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관리’는 내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은 ‘내 것’일까요?
직장인에게 시간은 대부분 ‘교환의 대상’입니다.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춰 일을 시작하고, 하루 여덟 시간 혹은 그 이상을 일한 뒤, 그 시간에 대한 대가로 급여를 받습니다. 이 구조는 회사가 근로자를 신뢰하여, 정해진 시간 동안 맡은 바를 성실히 수행하리라는 믿음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무의식중에 ‘내 시간’을 돈과 바꾸는 교환의 대상처럼 여기게 되었습습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돌아보면, 나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그리고 전 생애의 시간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내가 마음대로 연장하거나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명과 시간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날 수를 정하시고, 각자에게 걸맞은 삶의 시간과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도, 내가 살아 숨 쉬며 보내고 있는 이 시간도 내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맡겨진 시간’인 것입니다.
‘맡겨진 시간’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면, 시간은 단순히 내가 쓰는 자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신뢰와 책임이 담긴 위임의 선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다른 시간의 길이를 주셨고, 그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맡기셨습니다. 즉, 우리는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할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로서의 시간 의식을 가진 사람은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사소한 일상조차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우리는 즐거움과 만족을 좇아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게으름과 나태함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내게 맡겨진 것이다"라는 인식을 품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하루를 그저 버티는 삶이 아니라,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됩니다. 그 시간을 나를 신뢰하여 맡겨주신 귀한 선물로 여기고, 어떻게 사용해야 주님께 칭찬받는 인생을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존재가 됩니다.
오늘, 아직 사용되지 않은 시간이 내 손에 맡겨졌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동시에, 나는 이 시간이 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며, 맡겨진 시간을 감사함으로, 또 청지기처럼 충성스럽게 사용하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맡겨진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을 경건하게, 신중하게, 그리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나는 그분이 믿고 맡기신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내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
맡겨진 시간, 그것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내 손에 전해진, 아직 비어 있는 시간의 자루입니다.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는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 귀한 선물을 받은 자로서, 기쁘고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