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 때 느껴지는 만남의 진실"
오래전, 미국에서 자취하던 작은 집의 현관문을 열 때마다 그날의 만남이 진실했는지 아닌지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을 마치고 여유가 있던 날에는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생각을 교류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 때면, 그날의 만남이 제 마음속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명확히 느껴지곤 했습니다.
어떤 날은 마음의 빈 구석이 따뜻하게 채워져 포근함이 밀려왔고, 또 어떤 날은 오히려 더 큰 공허함과 외로움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만남과 교제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그것이 어떻게 진실한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신토불이’라는 말을 곱씹었습니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과 교제하며 느낀 정서적 연결감은 외국에서 만난 이들, 혹은 오래전부터 외국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느껴지는 감정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서적 코드와 공감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저는 단순한 교제를 넘어 깊이 있는 만남을 원했습니다. 마음이 채워지고, 서로의 존재를 통해 위로와 성장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만남을요. 그래서인지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며 느꼈던 그 미묘한 감정들은 당시 저에게 진실한 만남의 기준처럼 여겨졌습니다.
이제, 오래전의 이야기를 접고,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진실한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진실한 만남이란 단순히 시간을 함께 보내거나 취미를 공유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깊이 느끼고 공명하는 만남이 아닐까요?
동양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인연(因緣)’이라 부릅니다. 이는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 속에 깊은 원인이 있다는 믿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사람 간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군자지교(君子之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는 겉치레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된 관계를 뜻합니다.
서양에서도 진실한 만남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그의 저서 '나와 너(I and Thou)'에서 진실한 만남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나와 너’의 관계를 객체화하지 않고, 서로를 고유한 존재로 마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진실한 만남은 상대를 단순히 목적이나 수단으로 보지 않고,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은 진실한 만남의 본질이 진정성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이 아닌, 서로를 마주한 순간의 진정성과 그로부터 비롯된 감정의 울림이 진실한 만남의 핵심이 아닐까요?
돌이켜보면, 진실한 만남이란 결국 제 마음의 빈 공간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저를 돌아보게 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공감을 넘어, 서로의 존재로 인해 제가 성장하고, 서로가 힘이 되어주는 만남이었습니다.
진실한 만남은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유이자, 때로는 버틸 힘을 주는 원천입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나요? 그리고 그 만남이 당신에게 어떤 울림을 주었나요?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찾는 진실한 만남은 아마도 현관문을 열 때 느껴지는 그 따뜻한 감정,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깊은 여운 속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온기와 그날의 대화가 남긴 흔적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요?
진실한 만남, 그것은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