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저는 어른이 되는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성장의 과정이라고 믿었습니다. 마음이 깊어지고, 지혜가 충만해지며, 삶의 문제들을 능숙하게 해결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을 상상하며 빨리 중년의 멋진 나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런 상상은 단지 어린 마음의 낭만에 불과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키가 자라는 대신, 오히려 줄어드는 것을 느낍니다. 몸의 키뿐만 아니라 마음의 크기도 더 넓어지기보다는, 때때로 옹졸해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욕심과 편견의 껍질이 시야를 가리고, 세상을 더 좁고 제한적으로 보게 만들어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저는 종종 스스로가 작은 틀 안에서 허둥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얼마 전, 식당에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대화 속에는 여전히 강한 정치적 색채와 분노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도 서로 다른 의견을 두고 논쟁을 벌이며, 때로는 "빨갱이"라는 단어까지 오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어지고, 하얀 눈이 눈썹까지 덮이는 나이가 되면, 분노 대신 온화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큰 바위 같은 존재가 되실 거라 믿었기에,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그런 어르신들을 보며 제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또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학교 시절 읽었던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큰 바위를 바라보며 그와 같은 온화한 얼굴, 지혜로운 마음을 갖기를 소망했듯이, 저 역시 그런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따뜻한 미소를 간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분주함과 욕심, 편견과 두려움이 어른답게 자라는 것을 방해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점점 작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 짧고도 긴 인생을 왜 이렇게 어리석게 살아가는지 자문하며, 어떻게 해야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어제는 아들에게 1년 동안 참았던 답답함을 한꺼번에 쏟아놓는 실수를 했습니다.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결국 거짓말이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눈을 부릅뜨고 더 열심히 해야 해"라며 세상을 전쟁터로 표현하고 긴장하며 사는 삶을 강요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라라는 바람은 진심이었지만, 아들을 온전히 믿지 못한 채 세상 욕심을 따라 자녀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 제 자신을 자책하며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중년의 나이에 이렇게 작아져만 있지만, 저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며,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마음속에 품고 앙망합니다. 작은 일상 속에서 감사와 겸손을 배우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과 미소를 전하며, 조금씩이라도 큰 바위 얼굴에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결국 그 얼굴은 단순히 외형이 아니라 마음의 깊이와 태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음과 부족함을 인지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아닐까요?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마음의 키는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자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사실을 믿으며,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온화한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가며 살아가는 날들을 꿈꾸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