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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반짝 Sep 06. 2021

케세라세라, 아무튼 제주

제주에서 딱 일 년 살았습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제주에 살러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큰 산을 넘어야 했다. 그 첫 번째는 현실의 벽인 ‘비용’이었다. 1,000만원이 훌쩍 넘을 연세, 양쪽 집 관리비와 공과금, 남편의 후덜덜할 주말 비행기 삯을 일 년치로 계산해보니, 꽤 번쩍이는 중고차 한 대가 쓱하고 눈앞을 지나갔다. 마음 속에선 현실 자아와 이상 자아가 치열하게 싸워댔다. 먼저 현실 자아가 질세라 튀어나와 앙칼지게 말했다.   

“열심히 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지. 허리띠를 졸라매도 모자랄 판에 제주를 간다고? 쓸데없는 데에 돈과 시간을 낭비할 셈이야?”     


 돈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현대 사회에서 실상 휴식은 배부르고 철없는 짓이었다. 그러고는 역세권 아파트를 소유한 친구를 들이대며, 정신차리라 한다. 나는 소리를 꽥 질렀다. ‘그놈의 유치한 비교! 제발 그만 둬! 난 회복도 하고, 진짜 행복해지고 싶단 말이야’ 그러고 나니, 잠자코 듣고 있던 이상 자아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다독였다.

“넌 원래 이런 낭비를 좋아하잖아. 진짜 행복은 소유보다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줄곧 생각해왔잖아. 다시금 도전해 봐. 제주에 살면, 건강도 진짜 네 모습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아이들에게도 평생 소중한 추억이 될 거야.”       


 그랬다. 나는 빚을 내서라도 배낭을 짊어지고 진짜 나를 만나고 싶어서 떠났었다. 여행은 매번 내 안에 있던 의식과 신앙, 철학, 가치들은 의미 있도록 재구성하여 나를 성장시켰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에게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세상을 넓게 살자며 박사 공부를 권유한 것도 나였다. 정말 사서 고생하는 건 제 주특기였다. 무엇보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궤도를 이탈한다고 해서 주변에서 우려하는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그리고 궤도를 이탈했을 때, 비로소 눈에 보이는 숫자를 무시하고 살아갈 용기와 자신감, 내면의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은 그의 책 ‘굿라이프’에서 행복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소유를 통해 정체성 결핍을 은폐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한다. 행복한 사람은 돈으로 경험을 사서 삶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장식거리보다는 이야깃거리가 우리를 훨씬 더 행복하게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나는 다르게 살기(live) 위해 다른 것을 사기(buy)로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산은 정말 거대했다. 그것은 ‘남편’이었다. 그의 외로움과 가족이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 아빠를 그리워 할 아이들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갈수록 남편이 손님같이 느껴진다는 제주 살이 선배의 말을 듣고 나니, 고민이 더 커졌다. 10년을 찰떡처럼 붙어살던 우리인데, 과연 이 자발적인 기러기 부부 생활이 옳은 걸까? 휴가도 적고, 업무량도 너무 많아 가뜩이나 지쳐있던 그였다.      


 ‘만나서 이틀 후면 다시 이별이라니. 2주 동안 남편 없이 어떻게 이 아이들을 다 건사하지?’ 

 남편 때문에 방학 중에 하는 한달살이를 고려하긴 했지만 그건 ‘배경만 바뀐 육아’가 될 확률이 높았다. 내가 자연에서 충분히 쉬지 않으면 회복도 당연히 어려울 테고 말이다. 제주 살이가 줄 혜택과 남편의 부재라는 명제의 손익계산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5대 5였다. 결론이 안 나니 속만 끓였다. 혼자 있는 낮에는 온통 제주를 꿈꿨다.      


 ‘끝없이 펼쳐질 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 이것들을 온종일 만지며 자유를 만끽할 우리들! 원시림의 피톤치드 속에서 누릴 치유의 산림욕! 제주라서 가능한 다채로운 체험과 볼거리들이 “날 보러 와요.”라고 살살 손짓하면, 선심 쓰듯 골라 누릴 수 있는 일상의 특별함들. 아,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남편을 보면 현실로 꾸역꾸역 돌아왔다. ‘이 모든 걸 아빠 없이 누리는 게 과연 행복할까? 아직 어린 아이들한데 아빠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게다가 난 몸도 성치 않은 걸!’

 하지만 쉬 끝나지 않을 코로나는 제주 살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허무하게 황금 휴직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절박함은 케세라세라(que sera sera, 될 대로 되라지)의 심정이 됐다. 내년에 둘째 아이가 다닐 유치원을 제주 ‘함덕병설유치원’으로 선지망 해버렸다. ‘유치원이 적은 제주도잖아. 게다가 병설 유치원은 경쟁률도 세다던데 설마 붙겠어?’ 하지만 아이는 3:1의 경쟁률을 뚫고 덜컥 선발돼 버렸다. 이렇게 신은 제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인류를 세 부류로 나눈다면, ‘움직일 수 없는 사람,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결국 나는 '움직이기'를 택했다.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편이 결국은 조금은 덜 후회하는 길이란 걸 아니까. 


 “인생!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자.”


아름다운 낭비의 섬, 제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제주 바다
사랑을 키우는 제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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