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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uge.배우고 공감하며 아이들과 유럽을 걷다

지도로는 찾을 수 없는 배움, 사랑, 그리고 기억의 자리

by 은하수반짝
베를린 돔의 섬세함과 웅장함에 압도당하다

유럽의 어느 골목을 걷고 있으면, 삶이 느려지고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벽돌 틈새에 피어난 장미 한 송이, 오래된 카페 창가에서 흐르는 낡은 재즈 한 곡, 광장을 가로지르는 햇살 속을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 그 모든 풍경이 조용히 속삭입니다.

“이렇게 천천히 살아도 괜찮아.”


그곳에서 저는 잊고 지낸 질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무엇을 배우며 살아야 할까? 그리고 아이에게 진짜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바람 앞에 서 있습니다. 문장을 쓰고, 문제를 풀고, 미래를 예측하는 기계의 손끝이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 이제 정답은 알고리즘이 손쉽게 찾아주는 세상이 됐죠.

하지만 우리네 인생만큼은, 여전히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다시 ‘질문하는 인간’, ‘생각하는 존재’로 돌아가야 합니다.


갈수록 빨라지는 세상에서 우린 오히려 느린 것을 택했습니다.

하나의 발걸음으로 유럽으로 출발!

학원으로 점철된 시간표 대신 자연의 계절과 아이의 호기심에 따라 흐르는 배움을 선택했고,

문제집 권 수 대신 한 권을 풀더라고 여러 번 생각하고 꼼꼼히 풀고 생각하자며 느린 집 공부를 택했습니다.

결국 초3, 초6 아이를 데리고 신도시를 떠나 도서관이 지척에 있는 조용한 농촌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사교육 대신 선택한 길은 책과 체험, 집 공부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세계사의 무대가 된 유럽의 도시들을 걸으며, 벽화 앞에 멈춰 서고, 성당 천장에 시선을 빼앗기고, 예술사와 세계사를 들으며 건축과 문화의 언어를 익혔습니다. 유럽의 예술가들이 남긴 그림과 음악, 시 속에서 인간의 질문과 응답을 만났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사유와 루트비히의 고독

클림트의 황금빛 사랑과 카프카의 불안

밀란 쿤데라의 가벼움과 괴테의 철학까지

그 모든 장면에서 아이들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예술가의 삶과 고독, 사랑과 죽음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습니다. 독서로, 체험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걷는 배움의 길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교육이 되었습니다. 함께 부대끼며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문장 바깥의 풍경을 읽는 문해력과 낯선 세계와 만났을 때 질문하는 힘인 창의력을 길렀습니다.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세계. 그건 바로 '사람' 자체이고 ‘깊은 생각’입니다. 느끼고, 기억하고, 연결하고, 꿈꾸는 존재로서 아이들과 함께 동유럽 구석구석을 걸었습니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멈춰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가슴 아파하며 말이죠. 이 책은 그 길 위에서 건져 올린 작은 조각들을 꿰어 만든, 가족과 인문학,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속도를 줄이고, 시선을 낮추고, 마음을 열면 아이도, 나도, 세상도 다시 배움의 자리로 다가옵니다.

저희처럼

다시 독서로

다시 체험으로 그리고

다시 가족이라는 가장 오래된 공동체로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의 이야기도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프랑크루프트 괴테의 집, 파우스트를 집필한 괴테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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