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가격 사이, 결정의 미학에 대하여
교사라는 직업의 숙명일까. 나는 늘 가장 덥거나, 가장 추운 계절에만 장기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휴직은 나에게 단비 같은 기회였다. 꼭 한 번쯤, 딱 좋은 날씨에 여유 있게 떠나보고 싶었다.
그런 나의 소망을 이뤄준 건, 비행기 티켓 가격 검색을 취미로 삼은 남편이었다. 그의 휴대폰에서는 수시로 '스카이 스캐너' 앱이 화면을 밝혔다. 틈틈이 시차처럼 변하는 항공 가격을 관찰하고, 요일별로 바뀌는 그래프를 분석하던 그는 어느 날 마침내 외쳤다.
“지금이야! 인당 60만 원도 안 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아웃에 유럽의 해가 가장 길다는 6월이라니! 고민할 여지도 없이 그냥 떠나야 했다. 물론, 치솟는 유로화가 심장을 쿡쿡 찔렀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안 올지도 몰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의 교통 허브답게 전 세계 비행기가 몰려든다. 저렴한 유럽 비행기 티켓을 노린다면 프랑크푸르트를 눈여겨 보시라.
여기서 잠깐, 비행기 티켓팅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인문학이 거창한 담론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삶을 더 똑똑하고 아름답게 살아내기 위한 생활의 철학이 인문학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티켓팅의 기술’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생각해보자.
티켓팅에서 검색은 '반복의 예술'이고, 예약은 '타이밍의 철학'이다. 약간의 팁을 전수하자면 대체로 항공권은 출발 4~6개월 전, 그것도 주말이 아닌 화요일 새벽에 가장 착한 가격을 내민다. 검색은 가격이 오르지 않도록 '시크릿 모드'가 좋고 직항보다는 경유 항공이 훨씬 저렴한 편이다. 우린 중국 국적기의 경유 항공을 선택했다. 4시간의 환승 대기 시간은 다소 고역이었지만 유럽의 여름 햇살을 60만 원 이하에 사는 행운이라면 그쯤은 '인문학적 인내'였다.
비행기 티켓팅은 단순한 클릭질이 아니다. 이 결정에도 철학이 필요했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인간은 선택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위기의 순간에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게 되며, 그때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존재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며,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깨어나는 삶을 강조했다. 그는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리에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철학은 일상 속에서 스스로 길을 묻고 선택하며 최적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 비행기 티켓을 결제해야 하는가?”라는 그 물음에 우리는 함께 걷고 배우며 하루종일 얼굴 맞대며 살아보자는 답을 내렸다.
또 각자의 모험을 감수했다.
남편은 15일간의 소중한 연차를 단숨에 날리며 눈치 폭탄을 감내하기로 했고,
아이들은 장기 체험학습이라는 모험을 받아들였다.
나 역시 학원비 대신 여행을 선택했으니 가정 학습 코칭가의 역할을 군말 없이 성실하게 감당하기로 마음을 다져야만 했다.
그러니 그 ‘결제 완료’ 버튼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가족의 결속력을 다지고 더 큰 세상에서 생각을 덜어내고 비우고 또 돌아보겠다는 작고 단단한 용기였다.
클림트의 황금빛 연인을 보며 감탄하고,
카프카의 문장을 따라 존재의 불안을 나누며,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괴테의 고뇌를 읽어내는 여정.
그 모든 순간은 특가 비행기 티켓 하나로 시작되었고 이렇게 아주 사소한 선택에서 큰 변화가 생긴다. 가족은 그 선택 덕분에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게 사는 법을 배웠다. 넓은 세상을 향한 여정은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족의 결속력과 삶의 방향을 바꿨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비행기 티켓팅에도 철학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어른은 물론, 아이들의 인생의 방향까지 바꿀 만큼 위대한
‘결정의 미학’이 거기에도 숨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