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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인스브루크의 하늘은 참 예뻤다

자연과 문명, 마음에 새겨진 찬란한 기억

by 은하수반짝

노르트케테 정상에서 내려와 시내로 걸음을 옮겼다. 인(Inn) 강변을 따라 흘러내리는 우윳빛 물살은 부드럽게 반짝였고, 강 옆으로 늘어선 세모 지붕의 파스텔 건물들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평화롭게 서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서도 고개만 들면 알프스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능선은 위압이 아닌 위엄으로 사람들을 감싸 안았고, 그 품에 사는 이들은 오래전부터 자연과 함께 겸손하게 사는 법을 배워온 듯 보였다.
“엄마, 여기 사람들은 매일 알프스를 보면서 살겠지? 기분이 어떨까?”
온유의 물음에 나는 손을 꼭 잡으며 웃었다.
“땅을 보면 걱정이, 하늘을 보면 꿈이 떠오른다잖니. 이 사람들은 매일 하늘과 산을 함께 보니 마음이 더 밝고 맑을 것 같아.”


아기자기한 상점과 힙한 카페를 지나니 황금 지붕(Goldenes Dachl) 앞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아담해서 놀랐지만 알고보니 그 크기 안에 담긴 황제의 마음이 특별했다. 황금 지붕은 15세기 막시밀리안 1세 황제가 자신의 두 번째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궁전 발코니다. 2,657개의 구리 타일에 금을 입힌 정교한 구조물은 궁정 연회와 기마 대회를 보기 위한 자리였다.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시민들과 웃고 박수 치는 자리였다고 한다. 황제가 사람들과 섞여 함꼐 호흡했을 모습을 떠올리자, 아담한 황금 지붕이 한층 따뜻하게 빛났다.

자유롭고 활기찬 광장의 공기를 만끽하고 싶어 ‘Pizzeria Mamma Mia’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아보였다. 각자 피자를 한 판씩 두고 맥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먹는 이탈리아 피자는 어떤 맛일까?’ 기대하며 주문한 Mamma Mia는 살라미와 훈제 햄이 어우러져 짭조름하고 깊은 풍미가 입안을 휘감았다. 또 Capricciosa는 부드러운 치즈와 고소한 햄 위에 아티초크가 더해져 은은한 향과 독특한 맛을 선사했다. 같은 유럽이라서일까, 한입 한입이 유난히 더 맛있었다. 피자 한 조각과 음악, 광장을 스치는 사람들의 웃음까지 곁들이니 우리는 마치 작은 축제 속에 초대된 손님 같았다.


배를 채운 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하우프트플라츠 광장은 인스브루크의 심장처럼 상점과 노천카페, 거리 공연이 한데 어우러져 리듬을 타고 있었다. 다솔은 오랫동안 눈여겨보던 모차르트 초콜릿을 손에 들고 행복해했고, 온유는 뚜껑 달린 작은 맥주컵을 기념품으로 거머쥐었다. 맑은 하늘 아래 파스텔빛 건물들은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 진열장처럼 눈을 즐겁게 했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연신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마리아 테레지아 개선문 앞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문은 원래 아들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지만, 공사 도중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일부에는 그의 죽음을 기리는 조각도 함께 새겨졌다고 한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는 문이네…”

“그래, 삶은 늘 그렇지. 기쁨만도 슬픔만도 아닌, 두 가지가 다리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거야.”


고개만 들어도 보이는 알스프의 능선들도 같은 이야기를 건넸다. 인간은 문명을 쌓으며 하늘로 치솟으려 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그런 우리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잠시 머무는 존재임을, 욕망을 향해 더 높이만 오르려 하지 말고 현재를 긍정하며 사랑하는 이와 눈을 맞추라고 말이다. 속도의 시대, 조급함과 성공 신화에 휩싸인 지금이지만 정말 가치 있는 열매는 사랑, 믿음, 성숙처럼 몸을 낮추고 묵묵히 견디는 과정 속에서 얻는 열매가 아닐까.


그렇게 인스부르크의 하루는 자연과 문명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산이 가르쳐준 겸손의 의미와 함께 마음 깊숙이 새겨졌다. 저녁녘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도, 산은 여전히 도시의 뒤편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이번 여정 속 수많은 풍경 중에서도, 이 산을 품은 도시 인스부르크를 가장 인상 깊고 사랑스러운 장소로 꼽았다.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면, 그 품 안에서 조금 더 천천히 숨 쉬며 오래 머물고 싶다. 그때쯤이면 아이들도 훌쩍 자라, 우리 가족 모두 현지인들처럼 각자 피자 한 판씩을 앞에 두고 웃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인스부르크는 우리 마음속에, 꼭 다시 가고 싶은 ‘베스트 여행지’라는 이름표를 단 채 반짝이며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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