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의 황금 궁전, 그 영광과 그림자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아침, 우리는 비엔나 외곽의 쇤브룬 궁전을 향했다. ‘쇤브룬’은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막시밀리안 2세가 왕실 사냥터로 쓰던 땅이었지만, 레오폴트 1세가 증축하고,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여름 궁전으로 완성했다. 멀리서 보아도 황금빛을 머금은 외벽이 햇살을 받아 은은히 빛났다. 입구 기둥 위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상징인 황금 독수리 두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었다. 마당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고, 예전엔 이곳을 귀족들의 마차가 가득 메웠을 장면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곳은 단순한 궁전이 아니라,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을 600년 넘게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무대이다. 이 가문은 작은 영주 집안에서 출발했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후계자 없이 죽자, 선제후들의 선택을 받아 루돌프 1세가 황제가 되었다. 이후 정략 결혼을 통해 영토를 키우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되었다. 합스부르크는 스페인계와 오스트리아계로 나눠 두 곳을 모두 다스렸다. 그러나 근친혼의 부작용으로 유전병이 퍼졌고, 주걱턱으로 말이 불편하고, 씹기 힘들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황제도 많았다.
쇤부른 궁전 내부로 들어갔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스토리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궁전의 문을 열자, 조명이 은은히 켜지고 책장이 한 장씩 넘어가듯 이야기가 펼쳐졌다. 벽이 무너지고 꽃다발이 흩날리는 영상과 함께, 20대의 젊고 영특한 눈망울을 가진 마리아 테레지아가 등장했다. 남자들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여왕이 되어, 왕위에 오르자마자 유럽 열강의 침략을 맞닥뜨린 그녀는 전쟁과 개혁, 육아와 통치를 동시에 감당했다. 화려한 궁전 속에서도 검소하게 살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가족에게 쓴 수많은 편지를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가장 강인한 통치자이자 열여섯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자애로운 여왕이 되었다. 나는 그녀의 삶에서 진짜 위대함은 정복이 아니라 ‘품는 힘’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궁전 안 ‘거울의 방’에 들어섰다. 로코코 양식의 이 방은 과도한 화려함 대신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으로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거울은 프레임마다 금박 장식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고, 거울 사이사이에 하얀 석고 부조가 리듬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은은한 파스텔톤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사이로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천상 세계로 길을 여는 듯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속삭였다.
“이 방에서 어린 모차르트가 여왕 앞에서 연주를 했대.”
“대박이다. 근데 그땐 유튜브가 없어서 조회 수는 못 올렸겠네.”
다솔이가 장난스럽게 대거리를 했다.
쇤브룬 궁전 정원은 무대 설치로 한쪽이 가려져 있어, 무척 아쉬웠다. 이 정원은 완벽한 대칭의 프랑스식 파르테르 양식이다. 햇빛에 부서지는 네프튠 분수, 언덕 위 글로리에테까지 그림처럼 이어져 있다. 심지어 유럽 최고의 동물원으로 꼽히는 ‘티어가르텐’도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와 귀족들이 이곳에서 이국적인 동물들을 구경하며 차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시절 여름날의 오후가 눈앞에 그려졌다. 긴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이 분수 옆 대리석 벤치에 앉아 부채를 흔들며 담소를 나누고, 귀족 아이들이 동물에게 먹이를 줬을 것이다. 거대한 미로 정원을 걸으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이런 궁전에 살면 어떤 기분일까? 온유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숨바꼭질하면 최고겠다. 이렇게 멋진 곳이 우리 집이면 좋죠. 엄마는요?”
“멋지긴 한데… 답답할 것 같아. 화려한 감옥 같달까? 엄마는 지금 우리 집이 더 좋아.”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사는 비극적인 삶의 단상을 여럿 보여준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열다섯에 정략결혼으로 비엔나에 왔다. 단정한 초상화 속 미소와 달리, 그녀의 삶은 두 번의 유산과 반복된 임신, 그리고 스물한 살의 짧은 생으로 끝났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왕인 카를로스 2세의 이야기는 더 비극적이다. 수 세대의 근친혼으로 태어난 그는 먹고 말하고 걷는 것조차 힘들었으며, 두 번의 결혼에도 후계자를 얻지 못했다. 결국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그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눈부신 샹들리에 아래에서 살아간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위 배우였지만, 대본을 바꿀 수 없는 운명을 안고 있었다.
궁전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 미니 트럭에서 프레첼을 샀다. 치즈와 플레인 프레첼을 들고 작은 숲길 담벼락에 나란히 넷이서 앉아 다리를 흔들며 먹었다. 바람이 부드럽게 불었고, 아이들이 내게 다시 물었다.
“엄마는 궁전보다 우리 집이 진짜 더 좋아요?”
나는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황금빛은 아니지만, 집에는 ‘우리’가 있잖아.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웃을 수 있잖아.”
내가 말하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 집에는 정이 있어. 저 큰 궁전에는 없는 거.”
다솔이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우리 집이 더 좋아. 아담하고, 마음대로 나갔다 올 수도 있잖아. 큰 궁전에 살면 멋지긴 해도, 미로 같은 데서 길 잃을 것 같아.”
온유의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행복은 금빛 샹들리에가 아니다. 왕관보다 값진 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오늘이다. 아마 마리아 테레지아가 진짜 지키고 싶었던 것도 이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프레첼 한 조각과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 우리 가족의 ‘쇤브룬 궁전’은 바로 이런 시간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