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운전을 여러 번 했지만, 이번엔 위험했다. 평소 눈길에서도 거침없었다. 어제와 오늘은 몸을 사렸다. 나를 추월해가는 차량이 여럿일 정도였으니까.
빙판길보다 무서운 것은 바람이었다. 대형 트레일러는 그 자체로 거대한 돛이다. 옆으로 돌풍이라도 맞고 휘청거리면 눈길에서 도로 밖으로 떨어지는 건 일도 아니다. 실제로 사고 난 몇 대의 트럭과 승용차를 봤다.
눈폭풍을 지날 때 시야 확보 문제가 어려움을 더 한다. 히터와 팬을 앞 유리로 최대로 가동해도 와이퍼에 엉겨 붙는 얼음은 어쩔 수 없다. 휴게소마다 멈춰 와이퍼에 붙은 얼음을 깼다.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한다.
정말 멈춰야 할 때인지 생각했다. 눈폭풍은 월요일 새벽까지 예보됐다. 이틀을 앉아 기다려야 하나. 정말 위험하다면 도로를 아예 폐쇄했을 것이다. I-90 뉴욕,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구간은 비교적 평탄하다. 천천히 달리면 갈 수 있다.
어제 버팔로를 지나니 눈이 비로 변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 아침 다시 출발하려니 눈이 내리고 바람이 거셌다. 길이 열린 이상 간다. 맑은 날만 운전할 수는 없다. 트럭커는 궂은 날씨에도 다닌다.
리퍼 연료통을 채워야 한다. 절반쯤 남았다. 연료를 가득 채우면 무슨 일이 생겨 발이 묶이더라도 이틀은 버틸 수 있다. 에리(Erie, OH)에서 리퍼 연료를 채웠다. 출발하다 보니 주차할 자리가 있었다. 마음을 바꿔 주차하고 샤워를 했다.
다시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가던 트럭에 브레이크등이 들어오는 것을 봤다. 속도를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멈춘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눈길에 바퀴가 살짝 미끄러지면 차체가 휘청거리려 했다. 핸들과 브레이크를 적절히 조작하며 세웠다. 평소보다 차간 거리를 멀리 유지했기에 사고를 면했다. 나를 따라오던 픽업트럭도 미끄러지며 옆 차선으로 피했다. 양 차선이 다 멈춰 섰다. 이제 겁나는 것은 내 뒤에 오는 차량이다. 눈으로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연쇄 추돌사고로 이어질지 모른다. 얼마 후 흰색 트럭이 비상등을 켜고 내 뒤로 천천히 오는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소식은 빨랐다. 회사에서 I-90 에리 부근 서쪽 방면으로 사고가 나 도로정체가 심하니 피해 가라는 메시지가 왔다. 아까 샤워하지 않고 바로 갔으면 사고를 만나지 않았으려나? 아니면 내가 사고의 주인공이 됐으려나?
아예 시동을 끄고 기다렸다. 예상보다는 일찍 차선이 움직였다. 지나며 보니 잭나이프 된 트럭이 한 차선을 막고 있었다.
같은 고속도로라도 담당 주마다 제설 상태가 다르다. 북동부는 그나마 제설이 원활한 편이다. I-90 펜실베이니아 구간은 짧다. 에리(Erie)에서는 제설 소금이 부족하니 주민들에게 가능한 집에 머물라는 지시가 내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구간에서 사고가 났다.
오하이오로 들어오니 다시 제설 상태가 좋아졌다. 갓길까지 말끔하게 치웠다. 클리블랜드를 지나니 도로가 깨끗했다. 여긴 눈이 별로 안 온 모양이다. 대신 트럭은 소금에 하얗게 절여졌다.
일단 위험은 벗어났다. 70시간을 거의 다 써간다. 내일 들어오는 6시간을 합하면 배달에는 지장 없다. 가는 길에 더는 눈 소식이 없다. 오하이오 마지막 고속도로 플라자에 멈췄다. 지루할 틈이 없던 이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