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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Nov 16. 2021

아이는 엄마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란다.

공감_ 미러링 기법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나에 대한 감각과 느낌은 태어나 가장 처음 만나고 상호작용하는 사람, 주로 엄마와 아빠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엄마가 언어뿐 아니라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는 모든 메시지는 아기에게 "내가 누군지"에 대한 느낌을 형성하게 한다. 아기는 엄마라는 거울이 지속적으로 비춰주는 모습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진정한 "나"를 형성해 나간다.



 엄마의 따스한 눈빛을 받으며 아이는 아는 것 하나 없는 이 낯선 땅에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작고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는 엄마의 시선을 받으며 아이는 자라난다. 엄마가 그냥 거울처럼 아이의 말, 표정, 모습, 행동을 바라보고 비춰줄 뿐인데, 이속에서 아이는 자기 존재 자체로 인정받음을 느끼고 성장해나간다. 나를 바라보고 웃어주는 엄마를 보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아이는 엄마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의 상을 보고 자란다.

도널드 위니컷




 상담에서도 미러링(mirroring), 거울 반응하기 기법이 있다. 이 기법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따뜻한 관점으로 바라봐 주면서 내담자의 감정, 행동, 태도 등 모든 것을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내담자는 자신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한다. 특히 어린 시절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대부분의 시간,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진 내담자일수록 자신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만약에 어린 시절 엄마가 "넌 정말 쓸모가 없어"라는 걸 계속해서 거울처럼 비춰주었다면, 아이는 상대가 누구든지 자신을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눈치를 보게 된다. 내가 괜찮게 했던 행동도 쓸모없다는 거울로 비춰진 자신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이때, 상담자는 거울이 되어 내담자를 다르게 비춰준다. 따뜻한 시선으로 내담자의 좋고, 힘 있고, 괜찮은 모습도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비춰주는 것이다.

"쏘쏘가 이런 행동을 했구나."

"이런 마음이었었구나."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어?"

 따뜻한 시선으로 비춰주는 상담자의 거울은 내담자의 마음을 자라게 해 준다. 내가 괜찮다고 느껴지게 해 주고, 이 어려운 세상도 살만하겠다고 생각하게 해 준다. 내담자는 자신을 따스하게 비춰주는 상담자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그렇게 성장해 나간다.

 우리는 비춰주는 대상 없이 나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기 어렵다. 관계 맺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구가 있는 우리들에게, 나에 대한 인식은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시작되며 지속되기 때문이다.




우리 딸은 단골 소아과에서 아주 유명하다. 신생아 때부터 진료받으러 의사 선생님 앞에 앉으면 어찌나 크게 우는지.. 진료실에서는 초인적인 힘이 나오나 보다. 어찌나 몸부림을 치는지 나를 포함해 간호사 선생님이 두 분이 함께 잡아야 겨우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간신히 진료를 보고 나면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딸아이가 아팠다 그러면 약은 고사하고 진료부터... 참 힘들었다.

 이번 감기에 걸리기 전에 아주 건강했던 우리 딸은 7-8개월 만에 소아과를 가게 되었다. 가는 내내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복댕이를 안고 행복이를 잘 잡을 수 있을까.. 이제 컸는데.. 간호사 선생님들 세 분이 총출동해야 되려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에게도 아픈 거 하나 없을 거라며 계속 말을 건넸다. 들은 척도 안 하고 티비에서 나오는 만화를 보는 딸아이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드디어 진료시간이 됐다. 침을 꼴깍 삼키고 아이와 진료실로 들어섰다. 이제 키도 컸으니 혼자 앉을 수 있다는 아이. 그렇게 시작된 진료. 행복이 이름을 보고 들어오셔서 대기하시던 간호사 선생님도, 복댕이를 안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나도, 진료를 보시는 의사 선생님도 모두 눈이 똥그래졌다.


 울거나 소리 지르긴커녕 아주 담담하게 진료를 받는 아이를 보며 정말 깜짝 놀랐다. 마지막 콧구멍을 빨아들일 땐 조금 힘들어하긴 했지만 잘 견뎠다. 진료가 끝나자 모두가 손뼉을 쳤다. 원장님도 행복이가 정말 많이 자랐다며 사탕도 세 개나 주셨다.


진료실 밖을 나오면서도 어찌나 기특하던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행복아! 진짜 엄마가 깜짝 놀랐어. 아니 엄마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깜짝 놀란 거 봤지?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진료를 볼 수가 있었어? 혼자 의자에 앉아서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거에 잘 따라서 진료 보던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몰라!"


"사실 좀 무서웠어요. 마지막에 콧구멍 할 땐 좀 아팠어요. 그래도 괜찮았다?"


"무섭고 좀 아팠는데도 참아봤던 거야?"


"네."


"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진짜 더 멋지다. 우리 행복이가 정말 많이 언니가 됐네. 용기도 많이 생기고, 어려워도 참아볼 수도 있고. 엄마는 행복이가 자랑스러워." 



얼마나 기뻤는지 아이가 성장한 모습을 정말 진심으로 있는 힘껏 비춰주었다. 아이의 콧구멍이 커지면서 으스대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집에 가려고 하는데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친구네 가족이 들어왔다. 그 가족도 우리 집처럼 남매 모두가 감기에 걸려 한 명씩 엄마 손을 잡고 소아과에 들어오고 있었다. 평소대로면 우리 딸은 빤히 쳐다만 보다가 집에 갔을 터였다. 그래도 어린이집 친구가 왔으니까 인사는 해야 될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행복아, 인사하고 갈까?"


"네"



응.. 그래, 응?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러더니 내 손을 이끌고 친구 앞에 가서 엄청 작은 소리로 "안녕.." 하며 손을 흔들었다. 물론 그 뒤의 어떤 대화는 없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얼마나 흐뭇하고 적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일 수도 있는 일.



하지만 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엄마라서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딸이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용기를 내봤다는 것을.




이날 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참 기특하고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나는.. 그동안 엄마라는 이름의 내 거울은 우리 아이를 어떻게 비춰주고 있었을까?
나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지?

새삼스럽지만 난 우리 아이를 아주 약하게 보고 있었다. 당연히 또 울 거고, 당연히 또 인사 안 할 거고, 그렇게 엄마 뒤에만 숨어있는 아이. 너무 자연스럽게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언어적으로 이런 부분들을 말한 적은 없었지만 분명, 우리 아이는 나의 이러한 태도와 비언어적인 메시지들을 느꼈을 거 같다. 그것이 이내 미안해졌다.

정말 우리 아이는 내 생각 이상으로 훨씬 강하고, 용기 있고,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보는 아이였다.


내가 비춰주는 모습, 엄마의 거울을 통해 아이는 "자기"에 대한 느낌이 시작될 것이다. 내가 이 아이를 좀 더 강하고, 용기 있고, 노력하는 아이로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형성하게 될 자아 정체성의 시작점이 엄마인 나라는 것이 참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더 막중한 사명감이 생겼다.

아이가 바라볼 최초의 거울인 나.
오늘처럼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말자.
따뜻한 격려의 시선으로 성장의 포인트들을 잘 알아차려주자.
무엇보다 아이의 어떤 모습일지라도 사랑해 주고, 괜찮다고 비춰주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리고.. 돌아보면 내가 엄마가 되어 그래도 이 정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인 나를 꽤나 괜찮다고 비춰주던 고마운 사람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남편, 아이들,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내가 부족해도 참 괜찮은 엄마라고, 김모성이라고 응원하고 격려해 주던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그 어떤 조언이나 충고보다 내 가치를 알아주는 따뜻한 응원과 격려 속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어떤 거울을 갖고 있을까?

나 역시 따뜻하고, 너그럽고, 잘하고 있는 부분들을 잘 비춰주는 그런 거울이 되고 싶다.

눈에 보이는 행동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마음과 의도까지도 깊이 있게 비춰주는 거울,
너무 좌절스러울 때 잘 해냈던 부분들도 함께 비춰주는 거울,
불안이 아닌 믿음의 시선에서 누군가를 바라봐 줄 수 있는 거울.

나도 나를, 아이와 가족들을, 그리고 세상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이만하면 괜찮은 거울이 되고 싶다.


행복아 참 고마워. 네가 이렇게 멋지게 성장해 주고 있어서 엄마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아픈 고비를 넘어설 때마다 아이는 훌쩍 큰다고 하더니, 우리 행복이가 이렇게 자라나고 있네.
엄마도 너의 모든 성장의 과정에 함께하며 엄마로서 잘 자라나 볼게 :)



+ 엄마가 웃으면 따라 웃는 우리 복댕이 & 복댕이가 웃으면 따라 웃는 엄마♡ 우린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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