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아낸다는 것은 아이의 견딜 수 없는 감정, 감각, 생각을 양육자인 엄마가 아이가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되돌려주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아직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아이가 단단한 밥을 먹기 힘든 거처럼, 아이는 압도되는 정서의 음식을 스스로 삼켜 먹기 힘들다. 그래서 대신 엄마가 감당할 수 없는 아이의 정서를 엄마의 마음 그릇에 담아내어 적절히 요리해주어 변형시킨 뒤, 아이가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단단한 밥을 부드럽게 요리하고 잘게 잘라내어 아이가 먹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감당할 수도, 이겨낼 수도 없는 감정에 마주했을 때, 누구나 따스한 시선으로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어주는 이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직 어리고 연약한 우리 아이는 세상의 전부인 부모의 담아내기를 통해 단단한 아이로 자라날 힘을 얻게 된다.
며칠 전부터 회전목마를 타고 싶다는 우리 첫째.
크고 복잡한 놀이동산은 싫고 회전목마만 타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근교의 아울렛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아울렛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렸다.
오는 길 내내 설레 하던 우리 아이가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울상을 짓더니 무섭다며 안아달라고 한다.
'갑자기 왜 무섭지?'
그제야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보였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오며 어두워진 분위기
커다랗고 낯선 주차장에서 간헐적으로 울리는 경적소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들려오는 체온 체크를 하고 들어가라고 하는 반복되는 경고음과 안내멘트
누구보다 시청각에 민감한 우리 아이에겐 갑자기가 아니었나 보다.
일단은 꼭 안아주며 괜찮다고 오랜만이어서 낯선가 보다고 엘리베이터에 타서 올라가면 밝고 예쁜 공간이 나온다고 타이르며 데리고 올라갔다.
실제로 1층에 다다르자 아이들의 웃음소리, 맑고 청명한 하늘, 이국적인 분위기의 밝고 생기 넘치는 공간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제 괜찮겠지 하고 아이 손을 잡고 회전목마를 타러 갔다.
손을 잡고 가고 있는데 아이가 계속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무섭다고 자긴 여기가 싫다고 집에 가자고 얘기하는 아이.
며칠째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회전목마도 타기 싫단다.
저 재밌게 해 주려고 둘째까지 데리고 여기까지 온 건데 속이 상한다.
도대체 뭐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건지
남편도 답답한지 무서운 거 하나 없다고 재밌을 거라고 환기를 시켜보려 하지만 고집을 꺾지 않는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점점 짜증이 밀려오면서
"도대체 뭐가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좀 재밌게 즐기면 안 돼?" 하는 말이 단전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엄마의 이런 반응은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기에. 더 힘들어질 것을 알기에 잠깐 멈춰본다. 그러자 무서운 감정에 휩싸인 아이가 제대로 보인다.
담아내자
우리 아이가 스스로 어찌하지 못하는 무서운 감정을 담아내 주자.
남편에게 유모차 끌고 먼저 가라며 신호를 보내고 잠깐 아이를 멈추어 세웠다.
쪼그려 앉아 아이와 나의 시선을 맞춰본다.
"엄마가 우리 행복이 안아줄게"하며 내 품에 아이를 꼭 안아준다.
다정하고도 천천히 일정한 간격으로 토닥토닥.
입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그러자 아이의 몸에 힘이 빠지면서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제 스스로도 뭐가 이 정도로 무서운지 몰라 삼키지 못하는 아이의 감정을 내 마음에 담아 아이가 먹을 수 있도록 요리해본다.
"우리 행복이가 회전목마 타고 싶어서 기분 좋게 왔는데, 무서웠구나."
- 응 지금도 무서워. 집에 가고 싶어요.
"너무 오랜만에 와서 낯설었지? 게다가 주차장이 어둡기도 하고 큰 소리로 삐삐 거리면서 누군지도 모르는 아줌마 목소리가 계속 들리고. 그래서 무서운 감정이 들었나 보다."
- 맞아요 주차장이 무서웠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무서워요
"그지, 엄마도 아까 차에서 내렸는데 들리는 큰 소리에 깜짝 놀랐거든. 계속 들리니까 무섭기도 하고. 근데 행복아 지금은 좀 다르다? 지금 우리 머리카락 흔들리는 거 느껴져? 살랑살랑 살랑살랑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있네. 행복아 어서 와, 안녕? 하는 거 같은데"
- 응 느껴져요 바람이 불고 있어요.
"눈도 한번 감아볼까? 어디선가 기분 좋은 편안한 음악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 않아?"
- 네 들려요! 그런데 무서워요.
"진짜? 다시 한번 엄마랑 꼭 껴안고 들어 볼까? 엄마는 음악소리가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껴지거든"
- 나도 그런 거 같아요 춤추고 싶어요.
"오 좋다 같이 천천히 춤춰볼까? 흔들흔들. 크크. 그리고 이제 눈을 떠보자. 저기 하늘 보여? 굉장히 밝고 예쁘지?"
- 우와 구름이 너무 예뻐요, 엄마 저기 하트!
"우와 하트 모양이다 진짜! 행복이가 너무 예쁜 구름을 발견했네! 엄마는 이제 편안하고 또 기분이 좋은 감정이 들어. 너는 어때?"
- 나는 기분이 좋고 즐겁고 행복한 감정!
"우리 회전목마 즐겁게 타러 가볼까? 오늘 맛있는 것도 먹고 제일 제일 신나게 노는 거야"
- 좋아요 좋아~~~ 회전목마도 타고 춤도 추고 우리 재밌게 놀자?!
지금 여기를 느껴보면서 내 아이의 무서운 감정을 내가 대신 받아 충분히 공감하고 담아내 주었다.
그리고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양으로 아이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러자 아이의 무서운 감정이 스스로 견딜만할 정도로 작아졌다.
대신 그 자리에 살랑거리는 바람,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음악, 맑고 청명한 하늘이 들어서며 즐거움과 편안함을 준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엄마로부터 충분히 이해받았다고 느낄 것이다.
다음번 역시 비슷한 상황에 지금처럼 압도되어 버릴 수도 있지만,
담아내 주는 엄마와의 수많은 상호작용 속에서 마침내 아이는 따뜻하고 공감적인 시선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담아내고 조절해나가는 법을 배워나갈 것이다.
우리도 무섭고 두려움에 휩싸일 때 담아내 주는 대상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남자(여자)친구에게,
어떤 이는 친구에게,
어떤 이는 부모에게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공포와 두려움을 담아내 주는 대상에게 말한다.
그러면 그 담아내 주는 소중한 대상들은 기꺼이 우리를 대신하여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고, 토닥여준다. 그리고 다시 따뜻한 조언과 충고를 통해, 우리가 이 정도 두려움은 견디어낼 수 있겠다고 받아들일만한 형태로 바꾸어 돌려준다.
나에게 그 대상은 부모이고, 남편이고, 친구이고, 무엇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다.
때로는 나 스스로가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늘 하루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담아내 주는 이들과 함께 감사하며 살아내고 싶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기꺼이 담아내어 함께 해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이를 따뜻하게 잘 담아내 주는 그럼 엄마이고 싶다고 다시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