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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Oct 13. 2021

육아전쟁.. 이 또한 지나갈 하루이기에 (+버텨주기)

공감_버텨주기 기법


상담에서의 Holding.

안아준다는 뜻도 있지만, 버텨준다는 뜻도 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안아주기를 경험한 아이는 커가며 어려움을 스스로 버틸 수 있게 된다.

버틴다는 것은 상황이 어떠하든 말 그대로 꾹 참고 견디는 거다.

버티는데 이 버팀을 냉정하고 무관심하게 버텨주는 것이 아니라, 안아주듯이 따뜻하고 공감적으로 버텨주는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버텨준다.


내담자가 감당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에 흔들릴 때, 상담자는 버텨준다. 내담자가 경험한 불안, 두려움, 슬픔.. 모든 정서가 있는 그대로 쏟아져 나올 때, 그 감정에 같이 휩싸여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는 든든히 견뎌준다.


인생에서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듯이, 때로는 상담에서도 위기를 마주할 때가 있다. 상담이라 해서 늘 이해받고, 좋고, 행복한 꽃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상담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당히 위기와 고난은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니까.


버티고 견뎌주는 이 모든 상담자의 모습 속에서, 내담자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정감을 경험한다. 이 안정감을 지지대로 삼아 마침내 그 어려운 변화의 과정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간다.







그런데, 어디 육아만큼 버텨내야 하는 일이 또 있을까?



어린아이는 감정이 세련되지 못하다.

자기의 감정을 느끼고 인식하고 그것을 괜찮은 언어로 잘 표현하는 능력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엄마한테 마구 던진다.


불안하면 소리 지르고, 온몸을 뒤틀고, 울고 분다.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려고 하고, 악을 쓰고, 엄마를 째려보기도 한다.

슬프면 세상이 떠나가라 엉엉 울고 통곡한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정말 엄마 귀가 아플 정도로 징징댄다.


어른인 나라면 불안하다고 해서, 화가 난다고 해서, 슬프고 불편하다고 해서 저렇게까지 표현하진 않는데 말이다.


엄마가 상황적으로, 몸도 마음도 여유가 있을 때 아이의 마음을 잘 캐치하고 수용하고 공감해 줄 수는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보통 아이가 저 정도의 강렬한 정서를 경험할 때, 대부분 엄마 역시 몹시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이미 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뭔가 강렬한 파도가 밀려온다. 까딱하면 아이를 향해 욱하고 소리 지르기 일보 직전이다. 공감? 수용? 이건 현실 육아다. 안 된다. 한 번만 더 해봐, 난 분명 설명도 하고 경고도 했어. 나도 이제 못 참아!!!!!!!!!!!!!!


이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내 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제 목소리가 커지며, 아이를 혼낸다. 이때 혼낸다는 것은 훈육이 아니다. 그냥 내가 화가 났고 그 화를 아이에게 내지른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화가 나기보다 엄청나게 불안해지기도 한다.

"어..? 내가 뭐 잘못하고 있나..? 우리 애가 왜 이러지?"

날 것 그대로 표현되는 적나라하고 뾰족하기까지 한 아이의 감정 표현에 정신을 못 차린다. 

우리 애 잘 키우고 싶어서 내가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데, 내 모든 노력이 흔들리면서 불안하다. 





때로는 그냥 상황 그 자체로 너무 힘들 때가 있다.



육아를 하며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나올 만큼 죽을 거 같던 시기가 있었다. 아니,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둘째가 태어난 지 50일쯤 되던 시기였다.

신생아였던 우리 둘째는 지금도 그렇지만 유독 잠에 예민했다. 낮잠은커녕 밤잠도 잘 자지 않고 계속 울어대니 피곤이 쌓여만 갔다. 그래도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에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숨통이 틔었는데... 어느 아침에 우리 첫째에게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할 수 없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첫째를 데리고 소아과로 향했다.목이 상당히 부어있다고 한다. 목감기다.

기침을 계속해대는 아이를 보면서 어제 좀 춥게 재운 건 아닌지 자책감이 들었고,

집에 있는 신생아 아기가 옮으면 어쩔까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열이 나고 아파 징징대고 신경질 내는 첫째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무거운 추를 온몸에 매단 듯 괴로웠다. 이제 나는 혼자 50일 된 신생아와 열나고 기침하는 한껏 예민해진 첫째와 함께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이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


그날 내 하루는 내 예상대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픈 첫째는 밥도 잘 먹지 않고 계속 화를 내고 신경질을 퍼부었으며 낮잠도 자지 않았다.

둘째는 계속 안아달라고 울고불고, 하나가 울면 또 하나가 같이 울고..

나도 출산한 지 50일밖에 안되었는데, 밥은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던 나도 같이 울었다.

내 신세가 처량했다.


셋 다 그렇게 울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버티는 거밖에 없었다.

버티고 버텨서 어떻게든 이 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보내는 것 밖에 없었다.

나의 돌봄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 아이들에게 최소한 의식주를 위한 돌봄밖에 제공할 수가 없었다. 도망가지 않고 내 울타리 안에 보호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첫째가 열이 떨어지고 몸이 회복되는데 걸린 6일.


이 6일 간이 나에겐 60일, 600일, 6000일과 같은 까마득한 시간이었다.

버티고 버티고 이 악물고 버텨내니까,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이 지나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조금 숨통이 트이니 다시금 나로 회복될 수 있었고, 아이들도 좀 더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정말.. 현실 육아의 모든 과정에서 "버텨주기"라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혀 버틸 힘이 없는 이 연약한 아이들을 데리고 그나마 엄마인 내가 버텨내야 하는 순간들이 수도 없이 많으니까... 내가 무너질 수 없으니까. 정말 이 악물고 버티는 거다. 따뜻하게 안아주듯 버텨야 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그냥 소리 안 지르고 버티는 게 다행일 때도 많다. 못 참고 소리를 지를 순 있어도.. 그래도 최소한 도망가지 않고 꾹.. 버틴다. 이 힘든 걸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니까.


그러니 괜찮다.

나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은, 나 스스로 되뇐다.

아이가 나라는, 우리 가정이라는, 그나마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날이 있는데, 그게 어제였고 또 오늘이라고. 그냥 밥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는데 그게 오늘이라고. 뭐.. 내일도 될 수 있지만.. 그건 내일 생각하자고.


괜찮다. 정말 괜찮다. 다 괜찮다.


자책할 필요도 없다.

자기 연민에 빠질 이유도 없다.

그냥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심지어 하나님도 아신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야 지나간다.

그러니 원망이 되면 원망이 되는 대로,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그럼에도 오늘 이 하루를 꿋꿋하게 살아내는 엄마로 충분한 날이 있다고.


나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며 하루를 견뎌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삼일.. 견뎌내다 보면 또 신기하게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지는 날이 온다.





 이 또한 지나간다.


10여 년간의 상담 경험 속 수백 쌍, 아니 그 이상의 부모 자녀 관계를 마주하며 수없이 봐왔다.
아이를 사랑하는 그럭저럭 보통의 평범한 엄마 밑에서, 보통의 평범한 아이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으로 자란다는 것을. 

답도 없고, 막막하고, 이겨내지 못했더라도
때로는 그냥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버텼던 엄마와 아이들은 결국에 대부분 괜찮아졌고, 잘 졸업했고, 건강하게 자라났다. 물론 버티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많이 불안하고 어려웠던 상황에서조차도, 우리는 함께 상담을 했었고 엄마는 절대로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언가 엄청나게 변화된 것도 아니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아주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었고,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계속 밥을 해 먹였고, 자고 쉴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였고, 관심을 주었다.

졸업은 할까 했던 아이가 졸업을 했고, 이대로 가다간 죽을 거 같던 아이가 살아났고, 꿈을 찾고 이뤄가는 이만하면 괜찮은 성인이 되었다. 스승의 날 케이크를 들고 찾아와 웃으며 그 시기를 회상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 또한 지나간다.


정말 분명한 것은 아이는 이 속에서도 자라난다는 거다.
늘 행복하고 잘하는 엄마가 아니라도 때론 힘들고, 아프고, 그럼에도 버텨내는 이 엄마를 보면서도 자신만의 특별한 색과 결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엄마의 좋은 면만 보고 자라나지 않았다.

때로는 나를 공감하지 못했을지라도, 때로는 나를 실망시켰을지라도, 때로는 엄마의 일도 중요해서 나를 좀 방치하고 놔뒀을지라도, 때로는 지나치게 개입해서 힘들었을지라도, 때로는 내 앞에서 본인의 삶의 무게로 인해 엉엉 울었을지라도... 그럼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엄마가 있어서 이 정도로 자라났다.

수많은 세월을 버티고 견뎌온 엄마의 힘을 받아 나 또한 지금 여기서 그렇게 버티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사실 일기를 쓰는 오늘 내 하루도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오늘만 해도..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냥 나로서 버텨야 하는 순간들이 참 많이 있었다. 감정적으로 터지기도 했지만, 도망가지 않았고 아이들과 함께 했다.
순간순간 답도 없고 막막했는데 벌써 육퇴를 했다. 어쨌든 오늘이 또 지나갔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며.. 이 내 거친 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견디고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잘했어, 고생했어. 수고 많았어. 난 네가 엄마로서 이 정도 살아내는 것이 참 자랑스러워. 오늘은... 우리 더 이상 깊은 생각은 하지 말자. 충분히 잘 버텼어


너무 욕심내지 말고.. 그냥 오늘보다 내일 아주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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